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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2년 3월
평점 :
지금도 어느 곳에선 일어나고 있을 비극적 사건들.
가슴이 아프다...
란 말로 표현이 될까...?!
그러다 이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음...
이 또한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픽션이라 믿고 싶지만 논픽션일 것 같기에, 무엇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도 같기에 강렬하고 묵직했던 이 소설.
그래도 읽고 난 뒤 희망의 한 줄기를 보았던 이 소설.
버려진 폐허 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page 365
이 울림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이 사회의 지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은밀하고 방대한 범죄 세계가 있다.
『굿잡』

매일 음성사서함에 쌍년으로 시작해서 망할 년으로 끝나는 안부 인사, 이자를 갚지 않으면 사창가에 팔아 버리겠다거나 통나무장사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협박을 하던 사채업자의 메시지를 들으며 벼랑 끝 삶을 살아가던 '모연희'.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미래클리닝이라는 곳인데, 청소할 사람 찾는대. 생각 있으면 연락해." - page 11
다달이 갚아야 할 빚이 있고 가진 거라곤 주머니 속의 3천 원뿐인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 미래클리닝 다섯 글자가 박힌 문에 들어가니 장교동이란 사장이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요?"
남자가 물었다.
"요새 그런 게 어딨어요."
연희가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아직도 체면 타령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세상이 다 망했는데 체면은 개뿔. 뭔 짓을 하든 돈만 벌면 장땡이지. 안그래요?"
연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꿈이 뭐니?"
담배를 피우던 중년 여자가 대뜸 물었다.
꿈. 흔한 말인데 낯설게 느껴졌다. 어렸을 땐 꿈이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도시를 활보하는 커리어 우먼. 지금은 꿈은커녕, 내일도 없다. - page 14 ~ 15
바로 일이 있었고 이왕 온 거 한 번 해 보고자 선글라스를 낀 중년 여자 '김 여사'와 장교동, 청년 '김성수'와 함께 쓰레기를 치우러 가는데...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될까요?"
교동이 비 내리는 골목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생활 쓰레기가 되죠. 그걸 치우는 게 우리 일이에요. 특수청소하고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살인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거예요. 시체는 치우고 현장에 남아 있는 모든 증거를 인멸하는 거죠."
연희는 멍청하게 교동을 따라온 자신을 탓했다.
"연희 씨가 본 시체는 기술자였어요. 요샛말로 하면 킬러라고 할까. 저 녀석 칼질에 죽어 나간 사람이 한 트럭은 될 겁니다. 우리는 죽어도 싼 놈만 치워요. 여자, 어린애, 무고한 민간인 시체는 건들지 않고."
양심적인 척해 봤자 범죄잖아! - page 25
바로 이 회사는 범죄 현장의 시체 청소업체였던 것이었습니다.
끔찍한 현장을 마주하게 된 연희.
이 일을 계속 해야하는 것일까...
연희는 손아귀에 느껴지는 두툼한 지폐의 감촉에 취해서 돈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제 밀린 방세를 낼 수 있다. 한 끼 정도 따듯한 밥을 사 먹어도 좋겠다. 마음 한편이 훈훈해졌다.
나 지금 좋아하는 거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입안이 씁쓸해졌다. 나머지 소주 반병을 뱃속에 털어 넣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무게 추가 달린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 page 30
결국 연희는 계속해서 일을 하게 되고 돈이 모이면서 생활은 나아지지만 그럴수록 조금씩 범죄세계의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이 아이러니함 속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성수와 영화 보기로 했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납치당한 적도 있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여 막막한 심정으로 자신의 고시원에 돌아왔더니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기 성동경찰섭니다."
경찰이라는 말에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트릴 뻔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저한테 무슨 일로?"
"김성수 씨 때문에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성수가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상대방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돌아가셨습니다." - page 141
갑작스러운 성수의 죽음.
그렇지 않아도 자신과 같이 사회의 비극의 안고 있던 그였기에 더 신경이 쓰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가 죽게 된 것일까...
그 내막을 파헤쳐 보니 범죄 현장보다 더 더럽고도 피비린내보다 더 독한 냄새를 풍기는데...
그녀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연희의 질문에 황 약사가 잠시 입을 다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가로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황 약사는 가로등 불빛이 아니라 지난날을 더듬는 듯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 기회를 잡은 것뿐이에요."
황 약사가 말했다.
연희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까? - page 206
소설 속 비극들-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 여성 혐오 범죄들, 크고 작은 화재와 살인 사건 등-을 이 한 권의 소설로 마주하게 되니 조금은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고 할까.
시간이 흘러도 이렇게 마음이 저린데 피해자들은 어떨지...
그리고 연희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에 쉬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전했던 김 여사의 나지막한 충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살아보니까 세상 사는 게 파도 타는 걸아 비슷하더라. 파도치는 대로 휩쓸리다 보면 지도 모르는 사이에 망망대해로 떠내려가는 거야."
김 여사가 젓가락을 꼿꼿이 세우며 테이블을 탁 내리찍었다.
"나만의 원칙이 있어야 해. 그래야 버틸 수 있어. 좆같은 세상, 파도가 아무리 몰아쳐도." - page 178
그래서인지 연희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에 박수와 응원을, 그리고 그 에너지를 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들.
다시금 곱씹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희에게 외쳐봅니다.
Good J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