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 스물다섯 선박 기관사의 단짠단짠 승선 라이프
전소현.이선우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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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기관사'

저에겐 조금 낯선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스물다섯 선박 기관사의 단짠단짠 승선 라이프.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며...


세상에 발 딛고 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바다와 저마다의 항해가 있는 거니까.


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바다만 보여주면 새근새근 잠들던 아기.

"역시 육지 것들은 모르는 바다의 맛을 아네!"

그런 아기가 자라서 1년 내내 바다 위에서 일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바로 선박 기관사 '전소현'.


이름보다 '전교 1등'이라고 불리던 그녀는 '의대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졸업생 대부분이 의대로 진학하는 상산고에 들어갔지만 성적이 전교 꼴찌에 가까운 점수가 나오게 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떨어진 자존감으로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던 그녀.

의대를 못 가게 된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는데 그때.

아빠가 한 가지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한국해양대학교'


첫째, 소현의 멘탈이 재수의 중압감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 못했다.

둘째, 기약 없는 재수 생활을 뒷받침하기엔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셋째, 한국해양대학교는 본인만 잘하면 졸업 후 취업이 비교적 보장돼 있었다.

넷째, 이과적인 성향과 잘 맞았다.


그리고 이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꿔놓게 됩니다.


뭘 배우는지도 모르고 들어왔지만 선택한 전공 수업들이 신기할 정도로 적성에 잘 맞았고 스트레스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게 된 이 생활에 더없이 만족스러움을 느끼게 된 그녀..


멀리 돌아왔고 그 과정은 지난했지만 결국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무난하게 의대에 진학했다면 몰랐을 세상, 무한한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앞에 서니 가슴이 벅찼다.

이렇게 괜찮은 삶도 있구나. 수능 망쳤다고 인생이 끝은 아니구나. 수능 망쳤다고 인생이 끝은 아니구나. 의대가 SKY를 나오지 않아도 세상에는 꿈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구나!


바다 위에도 길은 있었다. - page 48 ~ 49


솔직히 저도 선박 기관사라는 직업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배 고치는 일이야?"

"기관사면 배 운전은 할 줄 알아?"

"배가 고장 안 나면 뭐 해?"


선박 기관사는 의사와도 같았습니다.

의사가 담당 환자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처방하고 치료법을 연구하듯 기관사도 담당 기계가 아프면 계속 손을 봐주고 기계를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였습니다.

배의 생명과도 같은 '엔진'과 각종 기계를 다루는 선박 기관사.




1년 365일 40도를 넘나드는 선박의 기관실.

기계가 많은 곳이니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 매우 심하게 24시간 지속되는 곳.

24시간 대기조의 생활이고 심각한 기기결함이 생기면 밤새워 일하기도 하고, 기계를 정비한다는 것이 정한 시간 내에 딱 끝나는 일이 아니다 보니 퇴근 시간을 수시로 넘김.

30명 중 29명이 남자인 세상.

그럼에도 그녀는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도 안타까웠던 건 여자라면 한 달에 한 번 피해 갈 수 없는 마법의 날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얼마나 고되면...


"소현아, 생리대는 6개월치 넉넉히 들고 가. 근데 어차피 생리 별로 안 할걸?"


처음 실습 가기 전 선배 언니들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땐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런데 승선이 길어지니 여자 동기들은 하나같이 생리가 거의 끊겼다고 했다. 사람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법인데, 배의 생활이 육지와는 완전히 다르고 일의 강도가 세서 그렇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걱정이 돼서 처음 배 탈 때는 피임약을 먹고 억지로 생리를 하곤 했었다. 다행히 약간 불규칙해진 것 빼고는 크게 이상은 없어서 이제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해도 문제, 안 하면 더 문제인 생리를 배에서는 지혜롭게 안고 가야 한다. 선박 기관사, 특히 여성 선박 기관사의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 page 184 ~ 185


어려서부터 양 어깨에 얹어진 장녀라는 책임감.

힘겨웠던 고교 시절.

생각지도 못했던 해양대 입학.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승선 생활.

그럼에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그녀의 이야기는 풍랑을 만나 흔들리고 불안한 이들에게 용기를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 page 294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그녀의 발걸음에 저도 응원의 박수를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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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 풀빛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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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재활용 분리수거를 할 때 깨끗이 씻고 최대한 분리해서 배출하는데...

이 책을 보자마자 뭔가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럼 난 무엇을 한 것일까...

환경을 위해 작게나마 동참했던 나에게 경종을 울려준 이 책.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읽어봐야 할 책이었습니다.


내가 재활용 수거함에 넣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베트남 농민의 집 마당에 쌓이고 있다

재활용, 친환경 로고가 가리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비닐은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비닐은 분리 배출하였고 왠만해서는 장바구니를 가방에 챙겨다녔습니다.

플라스틱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로 인해, 배달음식으로 인해 생기기에 최대한 깨끗이 씻어서 버리고는 환경을 위해 나도 실천을 하며 살아간다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었는데...

그리고 재활용 수거함에 잘 넣었으니 이젠 재활용되겠지...

했건만!!


내가 버린 쓰레기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될까? 특히 애써서 종류별로 나누어 분리배출까지 한 재활용 쓰레기들은? 쓰레기를 버리면 일단 내 눈앞에서는 사라진다. 하지만 이는 쓰레기 문제의 끝이 아니다. 출발점일 뿐이다. '쓰레기의 길'은 무척이나 길고 복잡하다. _장성익(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작가)




내 손에서, 내 눈에서 떠났지만 그 순간부터 시작된 쓰레기의 길은 '플라스틱 마을'로 불리는 베트남의 민 카이 마을에서부터였습니다.

컨테이너에 담긴 천 톤 분량의 쓰레기가 매일 해체되고 수공업 공장에서 가공되는 이곳.


"이것들이 바로 당신네 나라에서 왔다는 거지!"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나와 대화를 시작한 김에, 플라스틱 필름을 가득 담아 굽은 길 위로 위태롭게 끌고 가던 수레를 옆에 두고는 농다 반, 진담 반으로 내 연구 주제를 '프랑스-베트남 재활용 쓰레기 무역'으로 바꾸라고 제안했다. - page 35 ~ 36


더러운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열악한 시설의 재활용 공장으로 이동해 세척 후 열가소성 폴리머와 섞여 녹는 등의 과정을 거쳐 플라스틱 알갱이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활용 플라스틱은 다시 '깨끗한' 플라스틱 봉투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대부분이 사출이나 팽창 과정을 통해 다시 플라스틱 봉투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렇게 더러운 봉투가 깨끗한 봉지로 바뀌면서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인 것이다. - page 73


플라스틱이 친환경 제품이나 분해가 되는 새로운 제품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남는다는 사실.

이는 결국 


플라스틱이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면 혹자가 '인류세'라 부르는, 즉 지구 생태계의 인간 발자국을 정의하는 미시, 중시, 거시적인 모든 측면에서 그 흔적을 남긴다. 빙하 코어부터 도심 나뭇가지에서 펄럭대는 비닐봉투를 거쳐 대양에 생겨난 플라스틱 섬까지, 플라스틱은 여기저기로 비집고 들어와 지금까지 끄떡없이 보였던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 page 125


그야말로 '플라스틱 좀비'가 아닌가!


'재활용 로고'에 가려진 그 의미가 너무나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겪고 기록한 경험들은 이 순환과는 정반대였다. 전망도 없고 탈출할 곳도 없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 극단적 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쓰레기통의 비닐봉투를 모으는 베트남 여성 농민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있겠는가? - page 130


개미가 끝없이 이동하는 뫼비우스 띠를 표현한 작품과 비슷한 성질을 띠고 있는 이 재활용 로고.

이제는 이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였습니다.


'재활용'이라는 신화 속에 그려진 실체는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와, 속았다!'보다 나의 무지에 또다시 반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재활용보다 '재사용'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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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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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무엇일까...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면서 '가짜뉴스'들이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요즘.

저 역시도 헷갈리곤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진실을 찾아내는 안목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무지해도 당당한

사람들이 판치는 지금

진실을 지키기 위한 철학적 사고법!


진실의 조건



거짓뉴스가 무서운 이유.


거짓은 결코 스스로 거짓이라 말하지 않는다. 독재자들은 더 이상 소비에트 시절처럼 엄청나게 많은 정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억지로 주입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가짜 뉴승와 편파적인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를 통해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거짓 정보를 적극 유포하게 만든다. 왜곡된 세계관이 서서히 밀려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머릿속을 잠식한다. - page 10


너무 무섭지 않은가.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탈진실(post-truth)시대에 혼란 끝에 피로에 빠진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의 구분 자체를 포기하고 그저 믿고 싶은 것만 믿기를 부추기는 것이... 옳은가?!

이제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할 때였습니다.


"도대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또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바닥에서부터,

즉 기본적인 철학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저자는 철학을 바탕으로 심리학·사회학·언어학 분야를 넘나들며 사례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을 구별하는 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진실을 지키기 위한 대중·언론·전문가 각각의 소임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행동

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왜 우리는 그처럼 이상한 것을 믿을까?>에서 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슬 들어, 미국 성인의 거의 절반이 유령을 믿고, 26퍼센트는 마녀가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물론 유령과 마녀의 존재를 믿는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초적인 과학적·사회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한 예로, 미국인 중 32퍼센트가 기후 변화가 인간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2012년 당시 공화당원 중 63퍼센트가 여전히 2003년에 미국이 침공했을 당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믿었고 64퍼센트는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재능 있는 사람은 대상이 논리적인지, 모순적인지 판단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주변에서 얻은 정보가 정확한지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특히 전문성이 필요한 지식과 관련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는 인식 노동 분할의 결과다. 신뢰하는 사람에게 정보를 얻었거나, 정치인에게 조종당한다면, 당신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에 타당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인간 지식의 딜레마로 볼 수 있다. 즉, 평범한 수준의 신뢰 성향은 속임수에 쉽게 속도록 만들고, 일관된 회의주의는 세상에 대한 보편적인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 page 121


그럼 왜 타당한 반대 증거가 있음에도 뭔가를 계속해서 믿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 믿음에 대한 반론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우리의 사고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다양한 인지 기제에 의해 더욱 강화됩니다.


진실을 구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네 가지 실천 사항을 내놓았습니다.

비판적 사고

출처 비평

전문가 신뢰

토론과 팩트 체크

이 실천 사항을 중심으로 진실을 구별하는 안목을 기를 것을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신의 입장과는 다른 견해를 보이는 출처를 포함해 (신뢰할 만한) 다양한 유형의 출처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기.

·출처의 신뢰성을 주의 깊게 평가하기.

·주장의 근거에 대해 숙고하는 연습을 하고 다양한 유형의 사고 함정을 피하기.

·우리가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열어두고 우리 자신의 입장에 맞서는 최고의 반론을 고려하기.

·전문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떤 인물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인지 확신할 수 없다면, 학계의 웹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음모론과 곡해에 면역이 되는 경향에 주의하기.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대화에 책임을 지기. 우리는 양극화와 감정 과잉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공통된 출발점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허수아비 논법이나 인신공격과 같은 논쟁 기교는 바람직한 토론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저자가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


우리는 얼마든지 편파적이고 근거 없는 것에 저항하고, 거짓을 솎아내고, 안개 속을 꿰뚫어 보고, 궁극적으로 타당하고 분명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와 제 기능을 하는 지식 시스템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지식은 역사적으로 수차례 이의 제기에 직면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승리를 거뒀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결국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 page 11


우리는 얼마든지 진실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이성적인 동물이기에 진실과 거짓을 구분 자체를 포기하지 말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 관련 지식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함을, 그렇게 진실을 찾아 나아가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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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2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묘하게 진짜인듯 사실을 섞은 거짓뉴스 ㅠㅠ 진짜 예전보다 더 사악해지고 교활해진거 같아요 ㅠㅠ
 
자기만의 산책 - 자연과 세상을 끌어안은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을 위한 걷기의 기록
케리 앤드류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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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 대한 예찬을 하는 이들은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남자였었는데 이번에 이 책은 '여성'의 걷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습니다.

여성들에게 걷기란 무엇일지...

낭만주의 시대 엘리자베스 카터부터 현대의 리베카 솔닛, 린다 크래넬까지 여성 문인 10명이 들려주는 걷기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까 합니다.


낯설고 불친절한 세상을 향해,

단단한 발걸음을 내디딘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금 기록한 책!


자기만의 산책



이 책은 지난 300년 동안 걷기가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여성 산책자이자 작가들의 걷기가 남자들과 같은 목적으로 걷지만 그 경험 자체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걷는 여성들에게 '스트리트워커'는 단순히 걷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닌 매춘부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에, 걷는 모습이 여성적이지 않다는 평가에, 여자 혼자 다니는 것으로 위험을 자초해서는 안 되며 많이 걸으면 병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까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약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걸어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자신만의 언어로 글을 쓰면서 그 느낌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책 속엔 열 명의 여성 문인들이 걷기에 관해 쓴 글의 넓이와 깊이와 특징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론 위로였고 때론 휴식이었으며 때론 피난처였던 그들의 '걷기'.

이를 읽으면서 '나에게 걷기란 무엇일까...?' 묻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한 발짝씩 떼던 그 걸음걸음이...

어떤 의미로 나에게 발자국을 남겼을까... 




'도로시 워즈워스'에게서의 '걷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반복해서 걸으며 그 길을 따라 추억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그녀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단기기억상실에 걸렸지만 오빠와 함께 걸었던 기억은 그녀가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이동하면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시 중 하나인 <병상에서 한 생각들>에서 표현했던 그녀의 걷기 의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외로운 방에 죄수는 없다.

나는 초록색 강둑을 봤고,

당신의 예언과 같은 말을 떠올렸네,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자 형제이자 친구인 당신!

움직일 필요도, 기운도

심지어 숨을 들이마실 필요도 없다.

나는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을 생각하고,

그 추억과 함께 거기에 있다.


몸의 한계를 땅을 디디고 걸어 다닌 세월에 대한 기억으로 넘어선 그녀.

다시는 걷지 못했지만 이 시를 통해 산책자로서 느꼈던 삶의 기쁨을 다시 찾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졌습니다.


또 한 명의 여성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

유명한 수필가의 아내였지만 오롯이 서기 위해 고독하게 걸었던 그녀.

그녀에게 걷기는 자신이 완전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 속한다는 느낌을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참담한 이혼으로 강요된 구속에 저항하는 행위이자, 억지로 에든버러에 오게 만든 남편에 대한 저항이자, 자신의 의지에 반해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저항하는 행위였던 '걷기'.

그 힘찼던 발걸음 뒤에 남겨진 닳은 신발과 힘겨웠을 정신적 고통이 조금이나마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걷기는 다양한 목적을 수행해 왔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과 교감하는 수단으로, 인습에 저항하는 행위로, 자아 발견을 위한 것으로, 개인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도 항상 걸었습니다.

물론 여성은 안전과 취약성이란 개념뿐만 아니라 집안일과 육아라는 책임을 포함해서 걸을 수 있는 능력에 다양한 구속을 당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구속이 그들의 걷기에 영향을 미치긴 했어도 그들의 걷기를 막진 못했습니다.

걷는 여성들과 그들의 문학적 창의성은 남성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단단하고 심오하게 묶여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 걸어 나가야 함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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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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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괴'라는 단어에 읽기도 전에 짜증도 나고 찝찝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왜 유괴를, 그리고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기대되었습니다.


기억을 잃어도 뛰어난 두뇌 회전은 그대로

천재 소녀의 어설픈 유괴범 하드 캐리


유괴의 날



2019년 8월 21일 수요일.

어둠이 세상을 집어삼킬 때, 명준은 결심했다. 며칠이나 미뤄왔던 그 결심은, 사방이 이미 절벽이고 되돌아가고 싶어도 왔던 길이 사라져버려, 반드시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 page 15


그에게는 소아백혈병으로 항암 치료를 받는 아픈 딸 '희애'가 있었습니다.

생명 유지 장치로 간신히 목숨은 붙어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아이에게 남은 건 골수 이식뿐.

하지만 밀린 병원비 때문에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기에 몰래 숨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명준'.

3년 전 일언반구 없이 사라졌던 희애 엄마 '혜은'이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그에게 부잣집 딸 '로희'를 유괴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아무리 희애의 수술비를 위한 것이라지만 범죄이기에 안 된다고 거부했지만 로희라는 아이는 가정 내 폭력에 시달리는 가엾은 아이라며 무사히 돌려보낸 후 몰래 신고해주면 아이를 도와주는 셈이라는 혜은의 말에 그만 범행을 실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보세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고 났어? 지금 뭐 하는 거야?

"거, 걱정 마. 어차피 우리가 유괴할 애였어." - page 18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는데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로희.

그리고 명준을 향해 의문스러운 말을 건넵니다.


"아닌데...... 느낌이 확 안 오는데."

"아빠 맞아, 아빠!" - page 24


자신이 아빠라 하고 로희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몸값을 협상하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도저히 상대가 연락을 받지 않아 동태를 살피러 가볼 예정> - page 70


그렇게 로희를 차로 치고, 그대로 싣고 달아났던 그 장소, 로희의 집 앞에 가 보니 어수선했습니다.

아니, 어수선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집 앞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무...... 무슨 일이래요?"

명준이 물어본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답을 듣기 위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짱을 끼고 있던 젊은 여자가 대답하는 것이 보였다.

"살인사건이라는데요. 아까부터 경찰들 들어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 page 73


집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부부.

경찰이 살인범과 유괴범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초조한 명준에게 천재 소녀라 불리던 로희로부터 명준의 어설픈 거짓말이 들통나기 시작하는데...


계획은 틀어졌지만 누군가 명준의 딸 희애의 밀린 병원비와 수술비를 지불해주었고 더 이상 로희를 붙잡을 명목이 없기에 돌려보내려던 찰나,


"애 알레르기 때문에 왔답니다."

상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괴범이 알레르기 때문에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고??"

상윤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범인이 혹시 모자란 놈인가?" - page 160


그렇게 덜미가 잡히면서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로희의 부모를 살해한 자는 누구인지...

그 끝엔 반전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천재 소녀라 불리던 재희.

알고 보니 이 아이는...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고 싶어 했어요. 어떻게든 할아버지의 연구를 완성시키려고 했죠. 피가 다르니까, 더 집착했던 것 같아요. 아줌마를 보나, 우리 아버지를 보나, 인간의 집착이란 참 무서워요. 그죠?" - page 406


이런 인간에게 '부모'라는 자격을 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니 동물로도 불릴 수 없는 쓰레기.

어쩜 이럴 수 있을까! 하고 비난하려고 보니 우리의 뉴스에서도 아이를 학대 심지어 살인까지한 인간들이 있기에 이 불쾌함과 짜증과 답답함이...

하아...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건 그래도 아이인 로희가 혼자가 되어 다시 자신의 집에 남겨졌을 때의 그 울음이, 울부짖음이 미어지게 아팠습니다.


가슴이 울컥하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로희는 자신의 눈에서 왜 이런 것이 나오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손을 들어 젖은 뺨을 만졌다. 그러고는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젖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제야 정말 혼자라는 것이 피부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흑흑......"

시작은 작은 흐느낌이었다. 그것은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는 먼 곳의 허리케인처럼 아이의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울음은 점점 오열로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작은 짐승의 울부짖음이 그 방 안을 맴돌았다.

아이는 혼자였다. 아이에게 남은 것은 작은 손으로 안고 있는 상자 하나뿐이었다. - page 367


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가...

정말 어른인 내가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마냥 어둡지만은 않아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작가가 보여준 그 희망의 빛이 그동안의 어둠을 조금씩 몰아내줄 것을 믿기에 책장을 덮을 때 약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란, '자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되짚어주었던 이 소설.

가정의 달을 맞이하기 전 저도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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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2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 가정의 달 맞춤 책인가요 페넬로페님 ㅎㅎ 저도 찜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