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산책 - 자연과 세상을 끌어안은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을 위한 걷기의 기록
케리 앤드류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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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 대한 예찬을 하는 이들은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남자였었는데 이번에 이 책은 '여성'의 걷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습니다.

여성들에게 걷기란 무엇일지...

낭만주의 시대 엘리자베스 카터부터 현대의 리베카 솔닛, 린다 크래넬까지 여성 문인 10명이 들려주는 걷기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까 합니다.


낯설고 불친절한 세상을 향해,

단단한 발걸음을 내디딘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금 기록한 책!


자기만의 산책



이 책은 지난 300년 동안 걷기가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여성 산책자이자 작가들의 걷기가 남자들과 같은 목적으로 걷지만 그 경험 자체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걷는 여성들에게 '스트리트워커'는 단순히 걷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닌 매춘부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에, 걷는 모습이 여성적이지 않다는 평가에, 여자 혼자 다니는 것으로 위험을 자초해서는 안 되며 많이 걸으면 병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까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약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걸어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자신만의 언어로 글을 쓰면서 그 느낌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책 속엔 열 명의 여성 문인들이 걷기에 관해 쓴 글의 넓이와 깊이와 특징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론 위로였고 때론 휴식이었으며 때론 피난처였던 그들의 '걷기'.

이를 읽으면서 '나에게 걷기란 무엇일까...?' 묻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한 발짝씩 떼던 그 걸음걸음이...

어떤 의미로 나에게 발자국을 남겼을까... 




'도로시 워즈워스'에게서의 '걷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반복해서 걸으며 그 길을 따라 추억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그녀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단기기억상실에 걸렸지만 오빠와 함께 걸었던 기억은 그녀가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이동하면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시 중 하나인 <병상에서 한 생각들>에서 표현했던 그녀의 걷기 의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외로운 방에 죄수는 없다.

나는 초록색 강둑을 봤고,

당신의 예언과 같은 말을 떠올렸네,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자 형제이자 친구인 당신!

움직일 필요도, 기운도

심지어 숨을 들이마실 필요도 없다.

나는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을 생각하고,

그 추억과 함께 거기에 있다.


몸의 한계를 땅을 디디고 걸어 다닌 세월에 대한 기억으로 넘어선 그녀.

다시는 걷지 못했지만 이 시를 통해 산책자로서 느꼈던 삶의 기쁨을 다시 찾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졌습니다.


또 한 명의 여성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

유명한 수필가의 아내였지만 오롯이 서기 위해 고독하게 걸었던 그녀.

그녀에게 걷기는 자신이 완전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 속한다는 느낌을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참담한 이혼으로 강요된 구속에 저항하는 행위이자, 억지로 에든버러에 오게 만든 남편에 대한 저항이자, 자신의 의지에 반해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저항하는 행위였던 '걷기'.

그 힘찼던 발걸음 뒤에 남겨진 닳은 신발과 힘겨웠을 정신적 고통이 조금이나마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걷기는 다양한 목적을 수행해 왔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과 교감하는 수단으로, 인습에 저항하는 행위로, 자아 발견을 위한 것으로, 개인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도 항상 걸었습니다.

물론 여성은 안전과 취약성이란 개념뿐만 아니라 집안일과 육아라는 책임을 포함해서 걸을 수 있는 능력에 다양한 구속을 당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구속이 그들의 걷기에 영향을 미치긴 했어도 그들의 걷기를 막진 못했습니다.

걷는 여성들과 그들의 문학적 창의성은 남성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단단하고 심오하게 묶여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 걸어 나가야 함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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