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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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인문학'이거나 '자연과학' 분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과학적 사유와 역사적 사실이 빚어낸 SF 소설이라는 점에서 실로 놀라웠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진실일 듯한...

그래서 외면하고 싶지만 마주해야만 하는 진실 앞에 이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난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과연 인간에게 악은 유전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하루라도 '상실'과 '환멸'을 거치지 않으면 지나가기 힘든 요즘 시대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야기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악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_배우 정동환

악의 유전학



1913년, 러시아 제국 변방의 밤

불빛도, 인기척도 없는 겨울 광장. 6년 전, 거액을 털린 은행은 눈보라 속에서 건재했다.

검고 추운 밤, 은행 지붕 위에 누군가가 서 있다.

무표정한 사내다. 그는 사제 폭탄 대신 자루 가방을 들고 있다. - page 13

6년 전 이곳을 참혹한 현장으로 만들었던, 이젠 단단한 얼굴에 34년짜리 나이테가 새겨져 있는 사내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폭동과 테러, 암살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멀고도 추운 투루한스크로 유배를 떠나기 전 고향의 어머니에게 찾아가게 됩니다.

바느질하던 노파.

야음을 틈탄 아들의 기별에 말없이 문을 열어 사내와 냉기를 함께 들이며 마지막일 듯한 이들의 만남 속에 20년 전 그곳에서 있었던 충격적인 비밀을 들려주게 됩니다.

"시베리아 어디쯤이니?"

"투루한스크 변경주요."

"투루한스크?"

놀란 노파는 반쯤 남은 보드카 잔을 비워 버렸다.

"참나...... 운명이...... "

비밀은 이미 목젖까지 올라왔다.

"왜요? 아시는 데예요?"

사내의 질문에 노파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뭔가를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투루한스크. 시뻘건 오로라가 드리운,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었지."

노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거기에 사셨어요?"

"그래. 아주 예전이지. 툰드라는 일 년 내내 영하 50도였다. 겨우내 오로라에 구걸하면 여름은 적선하듯이 잠깐 들러 줬어. 그 두 달짜리 여름에도 꽃은 피었다. 설화와 붓꽃만이 숲속에......" - page 20 ~ 21

1858년, 니콜라이 황제의 장남인 알렉산드르 2세가 황권을 이어받은 지 4년째.

리센코 후작은 이장에게 말을 건넵니다.

"나는 정확히 1년 뒤에 일행과 돌아오겠소. 그때 이 그림대로 되어 있으면, 마을 사람 모두가 각자 이만한 돈을 가져갈 겁니다." - page 24 ~ 25

젊은 천재 유전학자이니 리센코는 추위를 잘 견디는 '한랭 내성' 유전자를 만들겠다며 위험한 생체 실험을 강행하게 됩니다.

바로 홀로드나야 수도원으로부터 내려가 동쪽 홀로드나야에 250명의 남자아이가, 서쪽 홀로드나야에 250명의 여자아이를 두고 말입니다.

이 수용소와도 같은 곳에 갇힌 500명의 아이들은 갓난 아기였으며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차디찬 얼음 입수와 고문, 나아가 강제 결혼과 출산을 겪게 됩니다.

왜?

그 이유는 바로

그제야 차르는 청년 리센코의 꿰뚫는 시선을 주시했다.

"폐하에게 추위를 타지 않는 러시아 백성들을 만들어 올리고 싶습니다." - page 44

유전학과 진화론에 빠져들었던 리센코는 차디찬 얼음 입수로부터 살아남는 이들의 유전자는 그 자손에게도 물려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의 유전학 이론을 실천에 옮기고자 무자비한 실험을 시작하게 되고 이 연구에는 20년의 기한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실험은 좀처럼 진척이 보이지 않고, 이에 목숨을 건 리센코는 점점 미쳐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기적의 케케'라 불리던 소녀 '케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간간이 목숨을 이어나갑니다.

"정말 잘 자라 주었구나, 케케!"

후작의 대견한 손이 닿는 곳마다 땀구멍이 오므라들고 솜털이 곤두섰다. 서류철을 보던 연구원이 케케의 입수 기도 성적을 읊었다.

"후작님, 평균 나이로 환산하면 최상위권 성적입니다."

긴 숫자들의 나열 끝에 결론이 나왔다.

"케케는 가장 넓은 방으로 배정하지." - page 147 ~ 148

'획득 형질의 유전' 자신이 맹신하는 라마르크주의에 사로잡혔던 리센코로부터 기적의 케케와 한랭 내성 챔피언 베소 둘 사이의 아이가 그가 주장했던 결과였지만 검증되지 않았던 이론은 리센코에게 바꿀 수 없는 신념이 되고 초조해질수록 불안은 광기로, 실망은 폭력으로 폭발하게 되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아니었고 케케 역시도 목숨을 걸고 이곳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탈출해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실험체 '케케'.

그리고 '케케'의 아들...

사내는 조용히 손을 내려 훌쩍이는 노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의 기적은 저예요. 제가 세상을 뒤집어엎을 거예요."

...

사내가 신문을 펼쳐 케케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분'이 저에게 새 이름을 주셨어요."

글썽이는 눈물 때문에 케케는 신문의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없었다. 그러자 사내는 손가락으로 자신이 쓴 글의 맨 아래쪽을 집었다.

"스탈린. 이오시프 스탈린. 강철의 사나이라는 뜻입니다." - page 245 ~ 247

실험의 마지막 결과물이었던 이 사내.

투루한스크로 유형을 떠나기 전 약 10년 그리고 유형을 떠난 이후 약 40년 동안 '혁명'이라는 이름을 걸고 수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다가 끝내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수천 명을 숙청하며 공포 정치를 펼친 이 사내.

"진짜 악마는 따로 있다."

실존 인물을 토대로 과학적 사유와 역사적 사실이 빚어낸 매력적이었던 이 소설.

그만큼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고 분했었습니다.

유전적 실험을 통해 열성을 제거하고 우성 인자를 키우려 했던 인간 개조 프로젝트.

이 파렴치하고도 비윤리적인 행위 끝에 태어난 독재자.

과연 '획득 형질 유전' 실험이 실패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이 이론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라면...?

이 질문들에 우리는 어떤 잣대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였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전 세계에 만연했던 '우생학'.

여전히 '인간의 우열'에 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는 현실 앞에 이 위험하고도 비윤리적인 사고를 경계해야 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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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11
권오단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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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방학 때 아이와 함께 갔던 곳, 안동.

하지만 찌는 듯한 무더위로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내심 기대를 하고 갔던 터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고...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림이나 유물유적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우리나라 곳곳의 역사와 문화, 그곳에 사는 사람과 땅에 대해 알려주는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그중 11번째인 안동으로의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안동에는 꼰대들만 살았을까?

동화작가이자 역사소설가인 권오단이

'양반가의 집성촌' 정도로만 알고 있던 안동이

왜 우리의 '정신문화의 수도'인지 그 진면목을 보여준다.

'유교'와 '안동'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고

태사묘부터 <미스터 션샤인>의 무대가 된 만휴정까지

안동의 역사와 문화를 감지할 수 있는 25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안동



안동시(10동)와 1읍(풍산읍), 13면(길안면, 남선면, 남후면, 녹전면, 도산면, 북후면, 서후면, 예안면, 와룡면, 일직면, 임동면, 임하면, 풍천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

유교의 본향으로 수많은 인재를 길러내고 국난을 당해서는 의병, 독립투사의 산실이 된 이곳.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었습니다.

오래된 역사만큼 수많은 문화 자원이 있고 거기엔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이곳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고개만 돌려도 곳곳에 이야기들이 가득하였습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인 '하회 마을',

임시정부 시절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을 비롯해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가의 산실 '임청각',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39년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17번의 옥살이를 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항일시인 이육사의 기록이 남아있는 '이육사문학관',

가장 오래된 화엄고찰과 『훈민정음해례본』이 나온 절 '봉정사·광흥사' 등

일일이 채우기에도 벅찰 만큼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된, '정신문화의 수도'의 진면목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 본 곳이 소개되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안동이 낳은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 토담집.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온 그는 살림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고 생계를 위해 궂은일을 하며 자랐습니다.

19세에 폐병이 걸렸지만 항생제를 제대로 보급 받지 못해서 폐결핵과 늑막염이 걸려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1967년 일직면 조탑동 일직교회 근처의 빌뱅이 언덕에 있는 토담집에 기거하며 성당 종지기로 일하게 됩니다.

너무나 열악했지만 혼자 살면서 아름다운 동화들을 써 내려간 그의 대표작은 바로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

『강아지똥』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통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몽실 언니』는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 쉼 없이 글을 썼던 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

이라며 통장에 있는 돈을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라는 유언장을 썼다. 그리고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듯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어머니가 사시는 그 나라로 갔다. - <권정생 동화나라> 팸플릿에서 발췌

아이들을 데리고 '권정생 동화나라'에 갔었는데...

그의 작품과 유품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생각보다 관리가 너무 소홀해 안타까웠습니다.

부디 다음에 갔을 땐 이름처럼 '동화나라'였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며...

그리고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 촬영지였던 '만휴정'.

"합시다 러브, 나랑같이"

지금도 설레는 이 대사.

그 장소에 가서 또다시 체감하고 왔었는데 사실 이곳은 조선의 청백리로 유명한 보백당 김계행의 정자라 하였습니다.

정원 같은 숲속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3년 후, 76세 되던 해 연산주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吾家無寶物 우리 집엔 보물이 없다

寶物惟淸白 보물이 있다면 오로지 청백한 것이다

자신이 비명에 죽지 않고 노년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 깨끗하게 살아왔기 때문임을 깨달은 그가 만휴정 벽에 이 글을 새겼다 하였습니다.

이 의미를 알고 갔다면 더 이곳이 와닿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안동으로 찾아가 곳곳에 담긴 이야기를 직접 귀담아듣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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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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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소실점을 추적하는 작가 '박영'.

작가의 작품에 대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익히 들었었지만 막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번 신작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는 폭설과 과거를 소각하는 화염 앞에서,

15년의 시간을 뚫고 나온 예리한 진실 _ 박서련(소설가)

저도 그 진실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이들을 왜 죽여야만 했을까요?

알고 싶다면 오늘 자정, 그곳으로.

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씁쓸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던 '연우'.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선양에서 살인 사건 하나가 접수됐어. 살해 주청 시간은 새벽 3시 전후. 피해자는 에덴 종합병원 원장이야."

"설마 강원도 선양 말씀하시는 겁니까? 거긴 서울에서 족히 네 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곳인데요?"

"그래. 자네가 좀 가줘야겠어." - page 15

과거 파트너로 함께 활약했던 후배 상혁과 함께 도착하게 된 선양 살인 사건 현장인 에덴 병원 정문 앞.

피해자는 에덴 종합병원 차요한 원장은 지역 주민들의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왜 그러시죠?" 심재훈의 질문에 연우가 답했다.

"아까도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피해자 얼굴이 약간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피해자의 얼굴은 평온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처럼 보였다. 사방에 튄 피와는 대조적이었다.

"아, 네. 그건 피해자가 식물인간 상태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연우가 심재훈을 돌아봤다.

"아니, 그럼 범인이 굳이 식물인간인 사람을 공격해서 살해했단 말입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또 뭐가 있나보죠?"

"네. 피해자 차요한 원장 말입니다, 어차피 오늘 오전 9시경에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답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차피 몇 시간만 지나면 죽을 사람을 굳이 살해한 겁니까?" 상혁이 끼어들었다. - page 46 ~ 47

어차피 죽음을 맞을 피해자에게...?!

범인은 반드시 제 손으로 죽이고 싶어 한 '원한 사건'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주변 탐문 수사를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범행 도구가 발견되고 살해 용의자로 유민희 간호사를 추궁하게 됩니다.

한편 변호사 '차도진'에게 편지봉투 한 통을 받게 됩니다.

강원도 선양군 에덴 종합병원

지워버리고 싶었던 이 이름.

15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등져버렸던 고향.

아버지가 병원장으로 있는 이곳으로부터 익명의 누군가가 선양 경찰서에 잡혀 있는 살해 용의자 유민희를 변호하라 적혀있었습니다.

만약 변호를 하지 않는다면 15년 전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밝히겠다는 협박에 결국 선양으로 향하게 됩니다.

선양 경찰서에 도착한 도진.

사건의 전말을 모른 채 변호를 하고자 했던 도진은 뜻밖의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연우는 그렇게 묻는 변호사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왜 그러시죠?"

"방금 차요한 원장 살인 사건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차도진 변호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 page 112

연우와 상혁은 경찰이 용의자를 미처 특정하기도 전에 변호 의뢰를 받고 선양에 미리 도착해 있던 도진을 의심하고

도진은 진범이 마지막으로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게 됩니다.

이렇게 연우와 도진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동안, 15년 전 '그날'이 새겨진 기억의 파편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당신은 복수를 위해 친구들도 모두 짓밟았습니다! 당신도 똑같은 괴물이 된 겁니다!" - page 330 ~ 331

15년 전 과연 이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리고 진범은 누구일까...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가며 인물들로부터 추리를 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어느 소설에서 접했을 법한 소재였고 범인을 추리하기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이 스토리를 끌고 가는 작가의 필력이었습니다.

시간과 인물의 교차 서술은 좀 더 몰입감을 주었고 최근에 읽었던 소설 『악의 유전학』의 연장선으로 인간의 욕망, 악에 대한 이야기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악은 끝없이 악을 낳고 있다. 돌고 도는 순환선처럼. - page 348

비뚤어진 욕망과 자기 과신으로 타락하였던 이들.

추악한 진실을 덮다가 결국 파국에 이르렀던 이들.

과연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할 수 있을까... 란 의문을 남긴 채 이 사건을 마무리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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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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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에 K-장르의 매력을 알린 작가 '정보라'.

4년 만의 그녀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오니 자연스레 눈길이 갔습니다.

특히나 이번 소설은 작가가 주로 머물던 호러와 환상의 세계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처음 집필한 '스릴러'라는 점에서 스릴러를 좋아하는 1인으로써는 더 기대될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그녀가 그려나갈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질지...

"고통과 쾌락의 근원은 같은데,

너는 어디로 가려는 거지?"

세상에서 고통이 사라지자,

인간은 그것을 다시 갈망하기 시작했다

고통에 관하여



'NSTRA-14'

중독성이 없고 부작용이 없이 이 진통제의 등장으로 고통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고통이 사라지자, 오히려 고통을 추구하는 신흥 종교 '교단'이 등장은 벌써부터 아이러니함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조그만 고통을 겪고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들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교단이 주는 인정과 치하는 삶의 의미 혹은 그에 가까운 어떤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 삶의 의미. 그 삶이 고통이라도, 거기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오래 지속되면 고통을 견뎌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된다.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더 건강하고 자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을 능력과 자원은 고통을 견디는 데 이미 소모되어 사라진다. - page 31

고통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라는...

이 사이비 종교로부터 신도들은 고립되어 고통을 받았고 고통을 견디는 과정에서 고립되었으며, 그 고통의 끝에서 그들의 삶에는 교단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들은 고통을 줄여주는 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는 없어져야 한다며 테러를 하게 되고 이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듭니다.

이 테러를 일으킨 범인을 형사 '륜'과 파트너가 잡게 되고 그는 바로 '태'였습니다.

'태'는 형인 '한'과 교단의 시설에서 자라게 됩니다.

고통의 무게를 모든 사람들에게 지우려 했던 '태'의 신념은 제약회사를 경영한 '경'의 부모도 이때 목숨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태'의 도움으로 교단에서 떨어져 나와 은거 중이던 '한'을 붙잡지만 어떤 진실도 밝히지 못한 채 풀어주게 되고 '태'도 형은 범인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무수한 증거가 '한'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있었음에 다시 잡히게 됩니다.

토네이도가 들이닥친다며 기후 경보가 울리던 때, 유치장에 갇혀 있던 '한'이 시체로 발견됩니다.

이때 CCTV는 3분 동안 작동을 멈췄었고 그 3분은 전후로 유치장을 드나드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단 한 명, '태'의 담당 정신가 의사 '엽'을 빼고.

유치장에 혼자 남겨진 '태'.

그는 '엽'에 대해 떠올려봅니다.

테러에 관한 질문, 교단을 향한 냉철한 태도, 고통에 관한 특별한 통찰력...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던 '엽'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교단과 제약회사의 싸움에서 그는 무얼 얻고자 했던 것일까?

한편 자신의 부모를 죽인 '태'에게 분노를 느끼는 '경'.

하지만 '경'은 오히려 '태'에게 동질감 아닌 그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기는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고통의 탐색에 매몰되면 결국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고통으로 돌아가 결국 다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던져야 할 질문들을 모두 던지고 나면 같은 질문에 더 이상 머무르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경은 그 사실 또한 확실히 깨달았다. 태가 상처 입은 방식은 그녀와 유사했으나 같지 않았다. 회복의 과정과 고통의 기억을 이해하는 그녀의 방식과 태의 방식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그러므로 더 이상 과거를 헤집기 위해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 page 301 ~ 302

고통과 구원, 삶...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소설이었습니다.

이 묵직한 한방에 잠시나마 어지러웠습니다.

이 소설을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것이 아니었을까...?!

고통과 쾌락은 근원은 같은데, 너는 어디로 가려는 거지? - page 63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 page 284 ~ 285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진 고통에 관하여...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작가분이 이 책을 쓰면서 들었다는 노래를, 영상을 보며 남은 책의 여운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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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을 회복하는 연습 - 후회와 미련은 접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두뇌 재훈련 프로젝트
데이먼 자하리아데스 지음, 안솔비 옮김 / 서삼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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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이나 이직 실패, 인간관계 문제, 직장에서의 위기와 갈등, 투자 실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과거에 경험한 실패와 상실은 하루 이틀 또는 한두 달 마음이 아픈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쉽게 극복하기가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과거에 얽매여 트라우마로 남은 일들도 있고...

매일매일이 멘탈이 흔들리곤 합니다.

마냥 흔들릴 수만은 없기에...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끝없는 경기 침체로 역대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는

저니 독자들의 삶을 변화시킨 책

아마존 독자들의 열광적인 극찬은 계속된다!

저도 이 책을 통해 재도약을 꿈꿔봅니다.

"거침없이 나아갈 것인가, 과거에 발목 잡혀 뒤에 남을 것인가"

번번이 나를 고꾸라트리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면 이 책의 실전 트레이닝에 참여하라!

멘탈을 회복하는 연습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고 성과도 좋았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버려지고 나니 멘탈 회복이 안 됩니다."

"친구들도 안 만나고 집에 틀어박혀 2년 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후회만 남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요."

"정말 사랑했던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난 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요. 그런데 제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계속 그 사람이 생각나요."

"몇 번이나 사업을 실패하고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독하게 준비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마음 한켠에서 '이번에도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합니다. 저는 사업을 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인 걸까요? 여기서 멈춰야 할까요?"

여기서 공통점이 보이지 않나요!

바로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도저히 과거의 후회와 미련을 접을 수 없어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짊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사고방식을 왜곡하며, 원하는 것을 향해 힘껏 달려가야 하는 순간에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집착을 버리고 과거를 떠나보낼 수 있을까?

이에 저자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놓아 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무언가에 집착하도록 자신도 모르게 훈련되었기 때문에 사고방식을 아예 다시 재구성하는 수준의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멘탈을 회복시킨다는 것의 의미를 여행을 떠나 기분을 환기시킨다거나,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들을 만나 다시 힘을 얻는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page 8

라며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놓아 버리기'를 최대한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바로 적용 가능한 조언과 실용적인 팁, 실전 트레이닝을 제공하였습니다.



모든 문제는 나의 잘못 때문에 발생했다며 자책하는...

그 부류가 바로 저였습니다.



내면을 무너뜨려 불확실하고 해로운 자기 비난으로부터 끊어내기 위한 스물한 가지 전략은 결국

과거를 향한 집착과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고

나 자신을 용서한 뒤

과감하게 떠나보냄으로써 한 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실천하지 못했던 일을 책을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되니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씩 단계를 밟아나아가면서 간질간질 새살이 돋아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아니기에 조급한 마음으로 읽기보단 두고두고 읽어볼 책이었습니다.

복잡한 세상 속 멘탈을 챙기기 어려웠던 요즘.

이 책이 왜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는지를 저 역시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후회와 미련은 접고 앞으로 나아가기.

이젠 실천할 차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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