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개만 돌려도 곳곳에 이야기들이 가득하였습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인 '하회 마을',
임시정부 시절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을 비롯해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가의 산실 '임청각',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39년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17번의 옥살이를 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항일시인 이육사의 기록이 남아있는 '이육사문학관',
가장 오래된 화엄고찰과 『훈민정음해례본』이 나온 절 '봉정사·광흥사' 등
일일이 채우기에도 벅찰 만큼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된, '정신문화의 수도'의 진면목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 본 곳이 소개되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안동이 낳은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 토담집.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온 그는 살림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고 생계를 위해 궂은일을 하며 자랐습니다.
19세에 폐병이 걸렸지만 항생제를 제대로 보급 받지 못해서 폐결핵과 늑막염이 걸려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1967년 일직면 조탑동 일직교회 근처의 빌뱅이 언덕에 있는 토담집에 기거하며 성당 종지기로 일하게 됩니다.
너무나 열악했지만 혼자 살면서 아름다운 동화들을 써 내려간 그의 대표작은 바로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
『강아지똥』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통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몽실 언니』는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 쉼 없이 글을 썼던 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
이라며 통장에 있는 돈을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라는 유언장을 썼다. 그리고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듯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어머니가 사시는 그 나라로 갔다. - <권정생 동화나라> 팸플릿에서 발췌
아이들을 데리고 '권정생 동화나라'에 갔었는데...
그의 작품과 유품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생각보다 관리가 너무 소홀해 안타까웠습니다.
부디 다음에 갔을 땐 이름처럼 '동화나라'였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며...
그리고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 촬영지였던 '만휴정'.
"합시다 러브, 나랑같이"
지금도 설레는 이 대사.
그 장소에 가서 또다시 체감하고 왔었는데 사실 이곳은 조선의 청백리로 유명한 보백당 김계행의 정자라 하였습니다.
정원 같은 숲속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3년 후, 76세 되던 해 연산주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吾家無寶物 우리 집엔 보물이 없다
寶物惟淸白 보물이 있다면 오로지 청백한 것이다
자신이 비명에 죽지 않고 노년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 깨끗하게 살아왔기 때문임을 깨달은 그가 만휴정 벽에 이 글을 새겼다 하였습니다.
이 의미를 알고 갔다면 더 이곳이 와닿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안동으로 찾아가 곳곳에 담긴 이야기를 직접 귀담아듣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