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술관에 간 화학자 2 - 명화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화학작용 ㅣ 미술관에 간 지식인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5월
평점 :
미술관에 간 ○○○
이 시리즈는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워낙 명성이 자자했었던 점도 있었지만 저마다 자신의 전공 분야의 눈으로 바라본 명화에 대해선 어떤 해석이 있을지 궁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2』
특히나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화가 '엘 그레코'를 비롯하여 '클림트', '뭉크', '반 고흐', '모딜리아' 등 그들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 그레코'와의 인연은 스페인으로의 배낭여행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열심히 돈을 모아서 꿈에 그리던 '스페인'으로의 여행을 떠났을 때 만난 '엘 그레코'의 작품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솔직히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화가에 대해선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만난 순간 그 화가에게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사는 지상계와 천상계 사이의 표현은 마치 여성의 '자궁'을 표현하였다는 점과 조문객들은 당시 톨레도의 세력가들을 그림으로써 그들에게서의 후원을 유도한 점, 화가 자신과 그의 아들을 그림에 숨겨놓았다는 점, 흐릿한 아기 모양이 오르가스 백작의 영혼이라는 점 등은 알고나니 더 신비롭게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몰랐던 사실을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그림이 천상계와 지상계의 색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상계의 색채는 마치 물체가 탈 때 나타나는 불꽃 속에서 희끗희끗 창백하게 빛나는 재처럼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엘 그레코는 하나의 그림에 어떻게 이처럼 상반된 효과를 낼 수 있었을까? 그 열쇠는 바로 '납(Pb)'에 있었다. 물감 중 연백은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데, 그냥 단조로운 흰색이 아니라 창백한 느낌의 독특한 흰색을 띈다. - page 20
이는 과거 여성의 미백 화장품의 원료로도 쓰여 납 중독을 일으키는 원흉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화학적 성분을 이용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었는지 그의 섬세하고도 정교함에 또한번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책 속엔 우리가 알고 있는 명화들이 소개되면서 그 속에 숨겨진 색채 사용, 명암 처리, 역동적인 구성, 뛰어난 빛의 해석 등에 담긴 화학적 이야기가 더해서 명화가 가진 가치를 한껏 높여주곤 하였습니다.
인상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인 <수학의 선이냐, 화학의 색이냐>에선 선과 색이 만나 회화가 탄생되지만 이에 대한 우위 여부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왔었습니다.
'선우위론자'들의 이야기.
회화는 소묘(드로잉) 없이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반면, 색채는 빛에 의해 변해버리는 우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가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완벽한 균형과 조화는 선을 통해서 이뤄졌다. 선이 없다면 당연히 원근법과 대칭법, 이상적 인체 비례 등도 고안할 수 없으며, 이는 수학적 사고와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 page 176
'색우위론자'들의 이야기.
미술의 궁극적 목적이 자연의 모방이라면, 회화의 목적은 색 없이 달성될 수 없다. 소묘는 채색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선이 이성이라면 색은 감성인데, 감성이 결여된 이성만으로는 예술이 성립할 수 없다. 색의 본질과 변화는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회화의 주재료인 물감이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 page 176
그들에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결국 선과 색이 있기에 '회화'가 있음을 잊지 맙시다!"
책의 마지막에는 '모딜리아'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슬픈 화학작용>
그의 작품에선 색채나 명암 등에서의 화학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관련된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
그의 유명한 작품인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
그를 평생 괴롭혔던 병약함과 가난에서도 그의 곁을 지켜준 그녀, 잔느.
잔느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동거를 하지만 그의 오만하고 이기적인 성향으로 인해 결국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못하고 잔느와 아이는 떠나게 됩니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모딜리아는 결국 그리움과 무력감에 피폐해지고 술로 인해 결국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잔느 역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데 그녀의 뱃속엔 임신 8개월 된 둘째 아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잔느의 그림을 보더라도 눈동자를 찾아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아직 당신의 영혼까지 느끼지 못했소. 당신의 영혼을 느끼게 되는 날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소." - page 356
그리고 이어진 잔느의 묘비명과 유언은 안타까운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잔느의 묘비에는 "목숨까지 바친 헌신적인 동반자"라고 새겨져 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줄게요."라고 한다. - page 356
책을 읽고나니 명화를 보는 시선이 한층 넓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은 명화와 화가의 이야기에 중심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다방면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왠지 수학자가 바라본 명화의 이야기가 궁금하였습니다.
수학자가 보았을 때 앞서 이야기했던 <수학의 선이냐, 화학의 색이냐>에선 어떤 의견을 가질지 궁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