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제린
크리스틴 맹건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문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우정과 사랑, 애정과 집착의 경계를 넘나들며

뜨겁게 질주하는 두 여성의 '로맨스릴러'


특히나 이 작품은 조지 클루니 제작, 스칼릿 조핸슨 주연 영화화 확정이 되었기에 더없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두 여성의 뜨겁고도 아찔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탄제린

 


매주 화요일은 장날이었다.

나 혼자만의 장날이 아니고 도시 전체의 장날이라, 리프산맥의 여인들이 산에서 그 시작을 알리며 과일과 채소를 그득 담은 바구니를 든 채 양옆에 당나귀들을 거느리고 내려왔다. 그에 화답하듯 탕헤르가 살아났다. - page 15


모로코.

앨리스는 이곳에 오게 된 게 아마도 우연, 아니 인연이었을 것입니다.

존 매캘리스터는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그가 몇 주 전에 이야기했다면 망설였을 것이고, 일주일 뒤였다면 그저 웃어넘겼겠지만,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 존의 말들, 그의 약속들, 그의 꿈들을 듣고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난 일은 묻어두고 돌아설 기회가 바로 이 순간임을.

비록 결혼식도 없이 서류에 서명한 게 전부였지만, 그와 함께 모로코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탕헤르로 떠나게 됩니다.


처음에 탕헤르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뜨겁고 먼지 날리는 도시에서 나의 미래를 새로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교묘하게 어긋나게 되고 결국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후덥지근한 방안.

잠시 바람의 기미라도 느끼기 위해 발코니로 나가게 됩니다.

일 분이 지나고 또 일 분이 지난 정적 속에 문득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듭니다.


"정신 차려." 나는 아파트의 아늑함 속으로 돌아서며 속삭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놓고도 등뒤로 창문을 단단히 닫았고,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 - page 22


바닥의 요동이 거세졌고 연락선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최종 목적지인 모로코에 조금씩 가까워지자 뱃속이 출렁거립니다.

내 인생 첫 진짜 아프리카에 발을 딛게 된 그녀, '루시 메이슨'.

배에서 내리면서 수많은 인파들 속에 앨리스의 얼굴을 찾아 훑지만 익숙한 얼굴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호객꾼들을 피해 요리조리 다니다 결국 한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납니다.


"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모기라는 거, 나도 알아요." 그가 가까이 몸을 숙였고 그러자 그의 뜨겁고 축축한 숨결이 내 얼굴에 닿았다. "제 말 들어보세요, 아가씨. 그래도 모기 한 마리를 옆에 두는 게 나아요. 왠지 알아요?" 대답을 기다리듯 그가 말을 멈췄다. "그 모기 한 마리가 다른 모기들을 쫓을 테니까요." - page 26


원치않는 이 남자를 피해 결국 루시는 자신이 이 나라에 오게 된 이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앨리스,"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 말했고, 아주 잠시 그녀의 이름을 음미했다. "나야." - page 34


고작 일 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동안 자신과 앨리스 사이엔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순간 어색한 기운이 맴돕니다.

앨리스의 남편 존이 등장하면서 서로 미묘한 눈치싸움이 시작되게 되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슴 속 무언가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루시가 앨리스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 이유.

왜 그토록 앨리스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지.

앨리스는 점점 숨통이 조여오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 사건을 잊으려고, 덮으려고,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존과 결혼했고, 다른 대륙으로, 톰을 생각나게 하는 곳으로부터 수백 수천 마일 떨어진 곳으로 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까지나 도망만 칠 수는 없다는 것을, 안개가 영원히 나를 지켜주진 않으리라는 것을. 과거의 모든 세세한 고통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더이상 피부에 닿는 물의 열기, 탕헤르의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문득, 다시는 온기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 page 210


아마 '루시'란 여자를 정의하는 단어들은 많았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탄제린'(탕헤르 사람'이라는 의미로, 현지인들이 탕헤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부르는 호칭이며, '귤'이라는 뜻도 있다)도 그랬고 '탐하다'라는 단어의 의미 역시도 그녀를 지칭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역사에 걸쳐 탕헤르의 이름이 바뀐 것 처럼 루시는 탕헤르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앨리스는 루시에게서 벗어나고자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었음에......


아마 루시 스스로는 이렇게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난 너로 인해

그 죄로 인해

기다림을 앓고 있다고 - FT아일랜드의 <사랑앓이> 중에서


하지만 '사랑'이 '집착'이 되어버린다면, 사랑을 위해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둘의 최후는 강렬하고도 거웠던 태양의 짙게 가리워진 그림자와도 같았습니다.


"올 때도 울고, 떠날 때도 운다." - page 355


두 여성의 우정과 사랑, 애정과 집착을 보고나니 참으로 '덧없다'란 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뇌과학 - 이중언어자의 뇌로 보는 언어의 비밀 쓸모있는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을 통솔하는 기관 '뇌'.

복잡한 시스템이 가득한 '뇌'는 연구를 하면할수록 더 놀랍기만 합니다.

특히나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


"나는 아직 나의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뇌'의 숨은 매력이 더 궁금하기만 합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언어 습득의 뇌과학'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 아이를 키우고 입을 떼기 시작한 아이에게 언어를 하나씩 일러주고 있기에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했습니다.


"생후 7개월 아기의 언어 인식 실험부터

80세 치매 노인들의 뇌 활용 실태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언어와 뇌과학" 지식 콘서트


언어의 뇌과학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도 '이중언어'에 해당될 것입니다.

나아가 다중언어의 능력을 지닌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모국어와 세계 공용어인 영어는 필수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에서도 '이중언어 사용'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


단순히 단어와 문법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소리(즉, 음운론적 특징들)와 의사소통 시 맥락에 맞게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법(화용론)을 습득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단어만 안다고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언어의 소리를 익히고 그것의 조합 방법을 알며, 어떤 구문 구조가 맞고 틀린지 대화 상태자에게 어떤 표현을 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 page 21


'언어'를 배운다는 것을 막연하게 어휘, 문법, 듣기, 읽기, 쓰기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심오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울 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어릴 때 배웠으면 금방 배웠을텐데......"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기들도 말의 신호 안의 규칙성, 예를 들어, 한 언어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조합 가능성(이것은 '음소 배열 규칙'이라고 한다)과 억양과 강세의 특징, 소리 목록 등에 매우 민감함을 알게 되었다. 비록 나이에 따라 이런 특징에 반응하는 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단서를 이용해 단어를 골라내고 어휘 또는 심성 사전도 만들 수 있다. - page 28


그렇기에 아이가 어릴 때 다중 언어에 노출되면 보다 쉽게 언어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음을, 엄마인 저에겐 아주 중요한 사실이었습니다.


이중언어를 쓰는 사람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을 사용하여 뇌 표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중언어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의 뇌는 덜 능숙하게 하는 사람보다 더 넓은 뇌 활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에......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제2언어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집단에서 좌측 상측두회의 활성화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숙련도가 낮은 제2언어 처리 과정이 훨씬 더 힘들고, 제2언어 처리에는 더 넓은 뇌 신경망이 필요함을 보여준다는 의미였습니다.

결국 제2언어를 어릴 때부터 배우면 두 언어의 의미 또는 개념 처리 과정이 덜 힘들다는 것을 또다시 보여주었습니다.


그럼 이런 의문이 들곤 합니다.

'이중언어를 어릴 때부터 꼭 배워야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중언어 사용은 우리의 언어 발달과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중언어 경험이 주는 혜택이나 문제에 대해 쓴 글이나 말을 접할 때 신중해야 한다. 적어도, 과학을 그런 목적으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연구 결과물이 말하는 내용은 그들이 말하는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꼭 다시 강조하고 싶은 말이었다. - page 141


책에선 한 가지 결론으로 단정짓기 보다는 여러 실험을 통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열린 결말을 짓고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여러 측면에서 실험과 결과를 바라보며 나름의 생각도 할 수 있어 조금은 어렵거나 따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밌게 읽어내려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뇌'는 복잡미묘했습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분야가 '뇌과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과의 대화
이시형.박상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 건 30대가 되면서였습니다.

20대까진 정신없이 달리다가 31살이 되었을 때.

'결혼'을 하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아이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직장은 그만두게 되고 한동안은 직장에서 오던 압박과 스트레스가 없어서 마냥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탄생은 그야말로 '축복'이었지만 그 뒤에 가려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내 존재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듯한 느낌에 우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보자마자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무엇 때문에 내가 태어났을까요?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까?


로고테라피라는 '의미치료'.

극한의 상황을 이겨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는 없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을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찾아낸다면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나갈 수 있을것이다.

-빅터 프랭클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빅터 프랭클


생명이 있는 모든 사람에겐 충족시켜야 할 '의미'가 있다는 그의 말은 제 어두운 마음 속 한 줄기 빛과도 같이 밝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정신과 의사 이시형과 심리 상담가 박상미의 의미치료!


'보리 한 톨'이 알려준 운명을 이기는 방법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한자리에 심어지고 나면 그게 자신의 숙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식물.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식물의 의미......


이시형 존재라는 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살려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우주적인 존재예요.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한 번 깨닫고 나면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 page 35


'전 우주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지금 이 순간 순간이,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고 두 저자는 일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고달픈 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책에선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의미가 있어요. 생명이 있는 모든 사람에겐 충족시켜야 할 의미, 실현해야 할 사명이 반드시 주어져 있습니다. 나에게 발견되어 실현되길 기다리고 있는 '의미'가 있어요. - page 98 ~ 99

 


구체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법에 대해 세 가지 항목이 있었습니다.


① 창조가치 :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하로 싶은 공부, 따고 싶은 자격증, 지금 할 수 있는 봉사활동 같은 것들이 창조 가치야. 한번 써보렴.

② 체험가치 :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생각해보면 반드시 있어!

③ 태도가치 :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세상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겠지요. 하지만 저는 공부해서 사회복지학과에 가고 싶어요. 가출 청소년, 성매매 유경험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사회복귀를 돕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 이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쓰면 돼.


이렇게 프랭클은

"자기를 잊고, 자기를 넘어 가치 있는 무언가에 몰두하여 일체화함으로써 얻어지는 정신적 충족감, 이게 참된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고 일러주었습니다.


"당신의 존재, 당신의 인생에는 대단한 의미가 있다. 어떠한 절망에도 희망이 있다. 인생은 잘되게 되어 있다. 다만 그것을 의식만 하면 된다." - page 218


책 속에선 끊임없이 읽는 독자에게

'당신은 의미있습니다.'

'당신은 대단한 존재입니다.'

라고 일러주기에 책을 다 읽고나면 어느새 세뇌를 당한 것마냥 '내 삶도 의미가 있구나!'라며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책을 읽고나니 나태주의 <풀꽃>이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집 <풀꽃> 수록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 시집 <멀리서 빈다> 수록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나태주 시집 <풀꽃 향기 한 줌> 수록


당신은 그 무엇보다 '당신'이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믿고 읽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바로 전 작품에선 '전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들 앞에 섰는데......

이번엔 천국에 있는 '법정'을 배경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이 펼치는 설전이 그려졌습니다.


지난 생을 돌아보고 다음 생을 결정짓는 심판.

천생연분을 몰라본 죄, 재능을 낭비한 죄......

피고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심판


수술실로 옮겨진 '아나톨 피숑'.

마취 후 긴급 수술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외과 의사들의 손놀림은 빨라지는 긴급한 상황.

심전도계 비프음이 들려옵니다.


여자 외과 의사 이게 될 리가 있나. 내가 말했잖아,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빨리 봉합해야지. 여기 터지네. (관이 터지는 소리) 거봐, 내가 뭐랬어! - page 14


어차피 폐암에 기적을 기대하는 건 무리지만......

아재미앙 남자 외과 의사는 자신의 근무 시간을 다 채웠다는 이유로 수술 도중에 휴가로 골프를 치러 가겠다고 나가 버립니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지......


여자 외과 의사 불쌍한 아나톨 피숑. 어쩌다 휴가철 절정인 8월 15일에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을 해가지고...... - page 17


아나톨 옆에 한 여자분이 보입니다.

그는 침대에 앉아 환한 표정으로 몸 여기저기를 만지더니 수술이 성공한 것인냥 최상의 컨디션입니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은 지상이 아닌 천국.

그의 곁에 있던 그녀는 그의 수호천사이자 심판에서 변호를 맡은 '카롤린'이었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들어서게 된 심판 앞에 그는 천국에 남을 수도, 아니면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에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그의 죄명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베르트랑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 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당신에게 특별한 운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아나톨 우리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 아닌가요. - page 128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들이 이곳 천국에선 '죄'에 해당되었습니다.


 


이것이 죄라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도전', '용기', '시도'라는 것이 그리 밝은 미래를 제공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아나톨이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나톨 제 삶이요? 음...... 저는 꽤 좋은 사람이었어요.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아내에게 충실했죠, 그리고 좋은 가장이었어요. 사람들한테 지갑도 잘 열었고요. 일요일마다 미사에 가는 가톨릭 신자였고, 윗사람과 동료에게 인정받는 좋은 직업인이었죠. - page 107


아마도 작가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아니었을까?

'당신은 좋은 사람이었나요?'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며 저 역시도 자꾸만 되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아나톨과도 비슷한 제 모습에 참으로 씁쓸한 여운이 남곤 하였습니다.


지난 생을 돌아보고 다음 생을 결정짓는 심판 앞에,

'당신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읽으면서 자신에겐 어떤 결정이 이루어질지, 그리고 남은 생에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 - 인류의 역사를 이끈 50가지 식물 이야기
스티븐 해리스 지음, 장진영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

우리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데도 우리는 정작 식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양식에서 유전학 실험 연구 모델까지,

식물이 피워낸 인류의 문명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

 


역시나......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저자가 이야기하였습니다.


식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근본이다. 우리가 숨쉬는 이 공기도 식물에서 얻는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식물을 연극의 주인공이 아닌 보조 출연자로 취급한다. - page 9


녹색 식물은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그 존재의 의미를 이제부터라도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가 활용하고 있는 식물 종수는 대략 5만 가지에 달한다고 하였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가 아닐까!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선 50가지 식물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택의 기준은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는 점... 하지만 그는 서구 문명에서 식물의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식물 50종을 고르라고 직장동료 10명에게 물었을 때 그 결과가 자신의 선택과 60퍼센트 일치했다는...)


첫 등장은 '보리'였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인간과 함께 성장한 보리.

보리를 재배하면서 신에게 감사하는 종교 의식이 발달하게 되고 곡물을 무게와 화폐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등 보리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흔히 사람들은 식재료로서 밀보다 보리의 질이 낫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보리는 없어서는 안 될 곡물이다. 2012년, 보리는 전 세계적으로 1억 3천만 톤 이상 생산되면서 세계 4대 곡물 중 하나가 됐다. 생산량의 대부분이 주류와 가축 사료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며, 여섯 줄 보리가 두 줄 보리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당분 함량이 낮아 사료로 만들기에 더 적합하다. 보리는 건조하고 영양분이 빈약하고 염도가 맞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란다는 주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면 밀은 보리에 비해 이런 환경을 잘 견디지 못한다. - page 25 ~ 26


분명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보리는 우리와 수천 년 동안 서구 문명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음을, 우리에게 빵, 맥주와 가축 사료로 서구 문명에 큰 기여를 했고 사람들이 화학 반응을 이해하고 효모를 재배하는 토대가 되었음에 그들의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존재감을 이루고 있는 보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책에서는 보리와 빵밀, 사과, 후추와 같은 우리의 식량을 책임지는 식물을 비롯해 소나무, 참나무, 튤립, 장미와 같은 친밀한 식물에서 왕포아플, 선옹초, 애기장대와 같은 생소한 식물이지만 알고보면 잠재된 가치를 지닌 식물까지 방대하게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만병통치약에서 만병의 근원으로 자리잡게 된 '담배' 이야기.

과거엔 정신병부터 매독까지 그야말로 모든 병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으나, 사실 이 원리는 시간을 오래 끌면서 천천히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유해성을 지닌 담배.


하지만 담배는 나쁜 식물만은 아니다. 니코티아나는 19세기에 식물 교배의 이해와, 20세기와 기본적인 식물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담배는 1982년에 인공적으로 유전 조작된 최초의 식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21세기 초의 유전 조작 작물의 혁신을 가져왔다. 건강을 위협하는 성분에도 한 줄기 빛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흡연의 유독성에 관한 논쟁은 사람들이 역학과 증거에 근거한 의약품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page 192


참으로 아이러니함에 그들이 태우고 남은 연기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스쳐지나갈 뻔한 잡초 '선옹초'.

이 식물은 수확된 곡물에서 종종 선옹초 씨가 발견된다고 하였습니다.


'곡물에 섞인 선옹초 씨 때문에 빵의 색과 맛이 변하고 건강이 상하는 일' - page 342


예쁘지만 성가신 풀이라고 여겼던 선옹초는 20세기 말 유럽 전역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식량 생산과 이윤 창출에 관심 있는 농부에게는 이런 경지잡포의 소명이 반가운 일이지만 환경 운동가에게는 '생물다양성'에 타격을, 나아가 환경의 파괴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식물이라도 가치의 경중을 따져서는 안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세계는 인류가 직면한 환경적인 위협과 인류가 환경에 주는 위협의 규모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환경 안건에 대한 논의는 거부할지언정 환경 걱정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보존은 여전히 정치와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근시안적인 정치와 환경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려는 꿈이 종의 보존에 관한 논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서양인들은 인류가 세입자이며 환경의 집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숙명론과 신의 심판을 논하거나 아득히 떨어진 별과 외계 식민지에 대한 허망한 꿈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미래에 책임을 져야 한다. - page 345


 


식물이 자연의 순리대로 번식하도록 내버려뒀다면 우리는 식물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관찰, 연구함으로써 식물이란 영역이 탄생하게 되고 나아가 다양한 분야와 접목시킴으로써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켜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식물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서로 '공생'하며 이토록 매력적인 식물을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준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보다 다양하고 풍성하게 무한히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게 되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