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제린
크리스틴 맹건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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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우정과 사랑, 애정과 집착의 경계를 넘나들며

뜨겁게 질주하는 두 여성의 '로맨스릴러'


특히나 이 작품은 조지 클루니 제작, 스칼릿 조핸슨 주연 영화화 확정이 되었기에 더없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두 여성의 뜨겁고도 아찔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탄제린

 


매주 화요일은 장날이었다.

나 혼자만의 장날이 아니고 도시 전체의 장날이라, 리프산맥의 여인들이 산에서 그 시작을 알리며 과일과 채소를 그득 담은 바구니를 든 채 양옆에 당나귀들을 거느리고 내려왔다. 그에 화답하듯 탕헤르가 살아났다. - page 15


모로코.

앨리스는 이곳에 오게 된 게 아마도 우연, 아니 인연이었을 것입니다.

존 매캘리스터는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그가 몇 주 전에 이야기했다면 망설였을 것이고, 일주일 뒤였다면 그저 웃어넘겼겠지만,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 존의 말들, 그의 약속들, 그의 꿈들을 듣고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난 일은 묻어두고 돌아설 기회가 바로 이 순간임을.

비록 결혼식도 없이 서류에 서명한 게 전부였지만, 그와 함께 모로코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탕헤르로 떠나게 됩니다.


처음에 탕헤르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뜨겁고 먼지 날리는 도시에서 나의 미래를 새로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교묘하게 어긋나게 되고 결국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후덥지근한 방안.

잠시 바람의 기미라도 느끼기 위해 발코니로 나가게 됩니다.

일 분이 지나고 또 일 분이 지난 정적 속에 문득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듭니다.


"정신 차려." 나는 아파트의 아늑함 속으로 돌아서며 속삭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놓고도 등뒤로 창문을 단단히 닫았고,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 - page 22


바닥의 요동이 거세졌고 연락선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최종 목적지인 모로코에 조금씩 가까워지자 뱃속이 출렁거립니다.

내 인생 첫 진짜 아프리카에 발을 딛게 된 그녀, '루시 메이슨'.

배에서 내리면서 수많은 인파들 속에 앨리스의 얼굴을 찾아 훑지만 익숙한 얼굴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호객꾼들을 피해 요리조리 다니다 결국 한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납니다.


"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모기라는 거, 나도 알아요." 그가 가까이 몸을 숙였고 그러자 그의 뜨겁고 축축한 숨결이 내 얼굴에 닿았다. "제 말 들어보세요, 아가씨. 그래도 모기 한 마리를 옆에 두는 게 나아요. 왠지 알아요?" 대답을 기다리듯 그가 말을 멈췄다. "그 모기 한 마리가 다른 모기들을 쫓을 테니까요." - page 26


원치않는 이 남자를 피해 결국 루시는 자신이 이 나라에 오게 된 이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앨리스,"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 말했고, 아주 잠시 그녀의 이름을 음미했다. "나야." - page 34


고작 일 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동안 자신과 앨리스 사이엔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순간 어색한 기운이 맴돕니다.

앨리스의 남편 존이 등장하면서 서로 미묘한 눈치싸움이 시작되게 되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슴 속 무언가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루시가 앨리스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 이유.

왜 그토록 앨리스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지.

앨리스는 점점 숨통이 조여오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 사건을 잊으려고, 덮으려고,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존과 결혼했고, 다른 대륙으로, 톰을 생각나게 하는 곳으로부터 수백 수천 마일 떨어진 곳으로 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까지나 도망만 칠 수는 없다는 것을, 안개가 영원히 나를 지켜주진 않으리라는 것을. 과거의 모든 세세한 고통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더이상 피부에 닿는 물의 열기, 탕헤르의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문득, 다시는 온기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 page 210


아마 '루시'란 여자를 정의하는 단어들은 많았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탄제린'(탕헤르 사람'이라는 의미로, 현지인들이 탕헤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부르는 호칭이며, '귤'이라는 뜻도 있다)도 그랬고 '탐하다'라는 단어의 의미 역시도 그녀를 지칭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역사에 걸쳐 탕헤르의 이름이 바뀐 것 처럼 루시는 탕헤르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앨리스는 루시에게서 벗어나고자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었음에......


아마 루시 스스로는 이렇게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난 너로 인해

그 죄로 인해

기다림을 앓고 있다고 - FT아일랜드의 <사랑앓이> 중에서


하지만 '사랑'이 '집착'이 되어버린다면, 사랑을 위해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둘의 최후는 강렬하고도 거웠던 태양의 짙게 가리워진 그림자와도 같았습니다.


"올 때도 울고, 떠날 때도 운다." - page 355


두 여성의 우정과 사랑, 애정과 집착을 보고나니 참으로 '덧없다'란 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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