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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제린
크리스틴 맹건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이 문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우정과 사랑, 애정과 집착의 경계를 넘나들며
뜨겁게 질주하는 두 여성의 '로맨스릴러'
특히나 이 작품은 조지 클루니 제작, 스칼릿 조핸슨 주연 영화화 확정이 되었기에 더없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두 여성의 뜨겁고도 아찔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탄제린』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903/pimg_7523781182660718.jpg)
매주 화요일은 장날이었다.
나 혼자만의 장날이 아니고 도시 전체의 장날이라, 리프산맥의 여인들이 산에서 그 시작을 알리며 과일과 채소를 그득 담은 바구니를 든 채 양옆에 당나귀들을 거느리고 내려왔다. 그에 화답하듯 탕헤르가 살아났다. - page 15
모로코.
앨리스는 이곳에 오게 된 게 아마도 우연, 아니 인연이었을 것입니다.
존 매캘리스터는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그가 몇 주 전에 이야기했다면 망설였을 것이고, 일주일 뒤였다면 그저 웃어넘겼겠지만,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 존의 말들, 그의 약속들, 그의 꿈들을 듣고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난 일은 묻어두고 돌아설 기회가 바로 이 순간임을.
비록 결혼식도 없이 서류에 서명한 게 전부였지만, 그와 함께 모로코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탕헤르로 떠나게 됩니다.
처음에 탕헤르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뜨겁고 먼지 날리는 도시에서 나의 미래를 새로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교묘하게 어긋나게 되고 결국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후덥지근한 방안.
잠시 바람의 기미라도 느끼기 위해 발코니로 나가게 됩니다.
일 분이 지나고 또 일 분이 지난 정적 속에 문득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듭니다.
"정신 차려." 나는 아파트의 아늑함 속으로 돌아서며 속삭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놓고도 등뒤로 창문을 단단히 닫았고,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 - page 22
바닥의 요동이 거세졌고 연락선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최종 목적지인 모로코에 조금씩 가까워지자 뱃속이 출렁거립니다.
내 인생 첫 진짜 아프리카에 발을 딛게 된 그녀, '루시 메이슨'.
배에서 내리면서 수많은 인파들 속에 앨리스의 얼굴을 찾아 훑지만 익숙한 얼굴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호객꾼들을 피해 요리조리 다니다 결국 한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납니다.
"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모기라는 거, 나도 알아요." 그가 가까이 몸을 숙였고 그러자 그의 뜨겁고 축축한 숨결이 내 얼굴에 닿았다. "제 말 들어보세요, 아가씨. 그래도 모기 한 마리를 옆에 두는 게 나아요. 왠지 알아요?" 대답을 기다리듯 그가 말을 멈췄다. "그 모기 한 마리가 다른 모기들을 쫓을 테니까요." - page 26
원치않는 이 남자를 피해 결국 루시는 자신이 이 나라에 오게 된 이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앨리스,"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 말했고, 아주 잠시 그녀의 이름을 음미했다. "나야." - page 34
고작 일 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동안 자신과 앨리스 사이엔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순간 어색한 기운이 맴돕니다.
앨리스의 남편 존이 등장하면서 서로 미묘한 눈치싸움이 시작되게 되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슴 속 무언가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루시가 앨리스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 이유.
왜 그토록 앨리스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지.
앨리스는 점점 숨통이 조여오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 사건을 잊으려고, 덮으려고,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존과 결혼했고, 다른 대륙으로, 톰을 생각나게 하는 곳으로부터 수백 수천 마일 떨어진 곳으로 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까지나 도망만 칠 수는 없다는 것을, 안개가 영원히 나를 지켜주진 않으리라는 것을. 과거의 모든 세세한 고통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더이상 피부에 닿는 물의 열기, 탕헤르의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문득, 다시는 온기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 page 210
아마 '루시'란 여자를 정의하는 단어들은 많았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탄제린'(탕헤르 사람'이라는 의미로, 현지인들이 탕헤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부르는 호칭이며, '귤'이라는 뜻도 있다)도 그랬고 '탐하다'라는 단어의 의미 역시도 그녀를 지칭하고 있었습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903/pimg_7523781182660717.jpg)
오랜 역사에 걸쳐 탕헤르의 이름이 바뀐 것 처럼 루시는 탕헤르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앨리스는 루시에게서 벗어나고자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었음에......
아마 루시 스스로는 이렇게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난 너로 인해
그 죄로 인해
기다림을 앓고 있다고 - FT아일랜드의 <사랑앓이> 중에서
하지만 '사랑'이 '집착'이 되어버린다면, 사랑을 위해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둘의 최후는 강렬하고도 거웠던 태양의 짙게 가리워진 그림자와도 같았습니다.
"올 때도 울고, 떠날 때도 운다." - page 355
두 여성의 우정과 사랑, 애정과 집착을 보고나니 참으로 '덧없다'란 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