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여행 - 방랑가 마하의
하라다 마하 지음, 최윤영 옮김 / 지금이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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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엔 '떠남의 미학'을 즐기곤 하였습니다.

학기가 끝나면 캐리어에 짐을 싣고 여권에 도장을 찍는 재미도 느끼며 마치 '나 혹시 전생에 방랑자였을까?...'라며 스스로 단정 짓기도 하였었는데...


그것도 잠시.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은...

캐리어는 어느새 창고 저편에 박혀있었고 해외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치지만...

이젠 코로나까지 제 발목을 잡으면서 '여행은 책으로 하는 거지...'라며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책.

이 단어에 끌렸습니다.

'방랑가'

뭔가 정처 없이 떠나는 그녀의 모습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어슬렁어슬렁


그 발걸음에 마음이라도 동행하고 싶어 읽게 되었습니다.


방랑가 마하의 어슬렁여행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대답할 테다.

여행이라고.  - page 9


'여행', 아니 '이동'을 좋아하는 그녀 '하라다 마하'.

사실 '이동집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뜬금없이 남자 후배가 던진 이 말은 저 역시도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하라다 씨는 참치 같아요" - page 11


어째서 '참치'라고 하였을까...라고 궁금하던 찰나.


"멈추면 죽잖아요." - page 11


참치는 살기 위해 끊임없이 헤엄치며 이동을 지속하는 종이라는 것이란 사실로부터 '아하!'라며 저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자타공인 '방랑가 마하'가 됩니다.


그녀의 방랑여행은 정말이지 부정기적이고 돌발적으로 시작됩니다.

오죽하면 남편조차 방에 걸려 있는 달력에 매직으로 갈겨쓴 '이날부터 이날까지 여행' 표시를 보고서야 그녀가 곧 나간다는 사실을 알 정도라고 하니 그녀는 진정한 '방랑가'임에 조심스레 엄지 척을 해 봅니다.


혼자 떠날 때가 많지만 종종 여행 길동무도 있었습니다.

'로드매니저'라 부르는 여행 친구 '오하치야 지린'.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의상도 서로 비슷하게 맞춰-원래 가로줄무늬를 좋아하는 내가 가로줄무늬 바지를 모 염가숍에서 구입하자 지린도 "이거 좋네" 하며 같은 것을 샀다. 이후 상의나 하의에 반드시 가로줄무늬를 넣게 되었다.-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즐기는 여행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여행 이야기는 좌충우돌에 유쾌함이 가미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그녀를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그녀가 '방랑가'가 된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좋아하는 곳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원하는 대로 살거라"


라는 가르침을 전해주신 아버지.

항상 "그럼 다녀올게!"라며 나갔다가 제때 돌아오지 않으시던 아버지.

늘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고 돌아오시면 이런저런 여행담을 들려주시며 가르쳐주신 이 이야기.


이 세상은 여행할 만하다, 좋아하는 곳에 가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나는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자유롭게 하면 된다고. - page 269


그렇게 아버지의 격려로 여행을 나서게 된 그녀.

'방랑가 마하'라는 호칭에서 조금은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도 어디선가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녀.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다음에도 또 들려주길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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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님의 1분 스파르타 - 운이 풀리는 행운 수첩 2억 우주님 시리즈
고이케 히로시 지음, 아베 나오미 그림,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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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우주님'과는 이미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2억 빚을 진 내가 뒤늦게 알게 된 소~오름 돋는 우주의 법칙』

그때 우주님이 일러준 우주의 법칙.


"그래. 우주든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든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철저하게 배우고 실천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극적으로 바뀔 수 있었던 거야!"

 - 『2억 빚을 진 내가 뒤늦게 알게 된 소~오름 돋는 우주의 법칙』, page 242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우주님의 말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캐릭터 때문일까...?!)


이번엔 2억 우주님 시리즈의 '핵심 정리편'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더 기대되었습니다.


이제 당신 차례다!

어떤 인생을 바라는지 주문해라!

의심하지 마라. 우주님이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당신의 소원을 실현시켜줄 것이다.


우주님의 1분 스파르타』 

 


이번 책의 등장인물들.

또다시 만나게 되니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2억이란 거액의 빚을 졌던 '히로시'.

우주님의 인도로 인생이 반전되었던 그가 말한 '우주의 법칙'은 단순하였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우주에 '주문'한 뒤 우주로부터 '힌트'를 얻어 그 힌트에 어울리는 최선의 행동을 하면 된다.

우주는 정말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당신의 소원을 실현시켜줄 것이다. - page 6


나 역시도 예전엔 그랬습니다.

우주로부터의 '힌트'라니...

그걸 어떻게 받으라는 건지...

외계인과 교신을 하라는 건가...

조금은 터무니없었던 이야기라 생각했었던 그 시절.

그때도 그랬었는데 이번에도 히로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주의 힌트가 뭔지 모르겠다고?

우연히 손에 들게 된 이 책, 이것도 힌트라고 생각해라.

책을 펼친 부분에 씌어 있는 내용이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 해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이다. - page 6


그렇습니다.

의심 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우주의 힌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내 소원을 실현시켜줄 우주의 힌트가 무엇일지 찾으러 가 보았습니다.


100가지의 우주의 법칙이 있었습니다.

그 법칙이 물리학 법칙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당신이 주인공이니 비겁하게 도망치지 마라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우주에서 최고가 되어라


처럼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지만 막상 실천하지 않는 '자신'을 우선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하루에도 몇 가지 소소한 행복이 있곤 합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다거나 평소에 잘 안되던 일이 잘 될 때.

그땐 '찐 행복'을 느끼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은 또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되면서 좌절하게 되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그렇다. 행복은 어떤 사건에 의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설정을 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 page 147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부정적인 말이나 생각은 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도전하는 용기.

그래야 현실이 바뀌고, 미래가 바뀌며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우주님'께서 '스파르타'로 짧고 강력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이 책은 아침에 눈 뜨고 아무 페이지를 펼쳤을 때 전하는 메시지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우주님이 전하는 하나의 법칙.

그 1분의 투자로도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우주님은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음을.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 책을 잡고 우주님에게 간절히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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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어 필 무렵 - 드라마 속 언어생활
명로진 지음 / 참새책방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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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이 있을까...

<동백꽃 필 무렵>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동백'.

그런 동백이에게 순수하게 다가가 사랑을 하는 '용식'.

이 둘의 사랑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고난과 역경, 좌절 속에서 그럼에도 사랑을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추운 겨울을 꿋꿋이 지키고 비로소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꽃처럼 말입니다.


<동백꽃 필 무렵>을 토대로 드라마 속 언어를 통해 인간성을 되짚어보았다는 이 책.

드라마 속 '그들의 언어'가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되었습니다.


동백어 필 무렵

 


25편의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각 드라마마다 명대사도 떠오르고...

역시나 드라마 제목으로부터 명대사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대사 한 줄이 그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놀라웠습니다.


첫 등장은 <동백꽃 필 무렵>이었습니다.

동백이의 말투.

그냥 무심코 들었었는데 이런 뜻이 담겨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꿋꿋하고 당당히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백어'.

자존감이 낮은 제가 배워야 할 말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드라마도 있었습니다.

역시나 유명한 대사,

"밥 먹을래? 나랑 살래?"

무혁이의 말끝마다 "밥 먹을래?"가 있었는데 이 역시도 사연이 있기에 더 가슴 아리게 들려오는 말이었다는 사실...


호주에서 어렵게 살아온 그에게 배고픔은 인생 최대의 상처였다. 배를 곯는다는 것은 가자아 큰 아픔이어서 밥은 무혁에게 결핍의 상징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한 끼를 때우는 일이요, 배불리 먹는 일이었다. - page 80 ~ 81


마치 우리가 안부 인사로 "밥은 먹었어?"라고 묻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었음에 무혁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또다시 들려오는 듯하였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제 사건을 해결해가던 드라마 <시그널>.

돈 있고 빽 있으면 온갖 더러운 짓을 해도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에게 죗값을 받게 하지 못하는 세상을 한탄하며 무전 너머로 전하던 이재한 형사의 외침.


 


박해영의 이 대사가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란 것이 있음을 선사해주곤 하였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절대 처벌할 수 없을 것 같던 권력을 무너뜨리는 일도, 16년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을 만나는 일도 가능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 page 135


개인적으로 인생 드라마로 손꼽는 작품 중 하나인 <내 이름은 김삼순>.

삼순이와 함께 울고 웃고 했기에 여전히 그리운 '김삼순'.

주눅 들지 않고 진헌에게 찾아가 5천만 원을 대출하고 정말 욕이라도 한바탕해주고 싶을 때 시원하게 욕을 퍼붓는 당당함이 있었지만 그녀에게도 이름 앞에선 무너지곤 하였습니다.

삼순이라는 이름...

'희진'이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개명을 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삼순이로 남으면서 마지막 회에 버스 정류장 게시판에서 읊조리던 시.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자의 시처럼 춤추고 사랑하고 일했다. 직진성을 삶의 무기로 삼는 이에게 오늘은 늘 생의 마지막 날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름은 희진이 아니라 삼순이어야 한다. - page 236


그래서 제 기억 속에서도 삼순이로 영원했습니다.


잠시 기억 저편에 있던 드라마들이 다시 표면으로 올라왔었습니다.

반가웠고 다시 만나 새로웠고 그리웠습니다.

아마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바는 이 이야기였습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인간성은 말로 드러난다. 사랑도 말로 하고 미움도 말로 한다. - page 18


당신의 말...

당신을 드러내는 또 하나임을 명심해야 함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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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동네서점
배지영 지음 / 새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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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이라 하면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사실 요즘은 대형 서점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기에, 그리고 대형 서점들은 배송 서비스와 굿즈들로 저 역시도 애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동네서점엔 뭔지 모를 이끌림이 있었습니다.

그 이끌림에 들어가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가게 되고 손엔 책 한 권과 함께 큰 위안을 받은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서점에서

-날짜


를 기록하게 되고 아껴읽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 일부러 동네서점을 찾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동네서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도 역시나 그런 이유였습니다.


책만 있는 서점은 쓸쓸하고 슬프다.

사람들의 눈길과 손길을 받으며 아름다워지는

어느 작은 도시의 동네서점 이야기


환상의 동네서점

 


1987년 군산.

중고등학생들을, 시위에 나온 대학생들, 젊은 직장인들에게 약속 장소로 새로 생겼을 때부터 사랑을 받았던 서점, 녹두서점.

이 서점은 '한길문고'로 이름을 바뀌고도 32년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서점이었습니다.


"한길문고는 상점인가, 상점 이상의 그 무엇인가?" - page 15


2012년 10만 권의 책과 함께 완전히 물에 잠겨버린 한길문고를, 내 친구나 내 이웃에게 닥친 일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능력대로 한길문고에 와서 힘을 보탰습니다.

하루에 100여 명 넘는 자원봉사자들.

한 달 넘게 한길문고에 힘을 보태 결국 다시 문을 열게 되었을 때 이 서점은 서점 그 이상의 의미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한길문고가 문학거점서점으로 선정되었고 상주작가로 '배지영' 작가가 서점에 오가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이들의 낭만적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빛을 받는 물체만이 색깔을 가진다. 서점의 빛은 독자들의 발걸음이 만들어준다. 독자들의 다정한 입소문도 서점의 빛이 되어준다. - page 30


그래서 한길문고는 참으로 따스했습니다.

그 따스함이 글 속에서 묻어 나와 저에게도 그 빛을 선사해주었기에 읽는 내내 빛에 둘러싸인 느낌이었습니다.


<수십 년 만에 꿈을 되찾은 '문학소녀'>의 순심 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교지에 글이 실리던 문학소녀였던 순심씨.

국어국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취업을 나가야 했던 그녀는 차곡차곡 월급을 모아 대학 진학을 꿈꾸지만 이 역시도 답답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이루지 못하고 결국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수십 년 전에 꾸었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용기를 건네준 한길문고.

 


저도 언젠간 순심 씨의 글을 읽을 날을 기다려보겠습니다.


한길문고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 중엔 아마도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도 한몫을 차지할 것 같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자기가 읽을 책을 들고 와 1시간 동안 의자에서 엉덩이를 5초 이상 떼지 않으면서 책을 읽는 대회.

몸을 배배 꼬면서도 결국 1시간을 채우고 상품을 타 가는 아이들은 나중에 이 일을 무용담으로 삼으며 책과의 인연을 다할 것이기에 그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이 대회를 저도 참가해 보고 싶었습니다.


수십 명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각자 신중한 자세로 서가와 문구점 앞에 서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독자들의 숨결을 느끼는 한길문고는 생물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눈길과 손길을 받으면서 서점은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 page 150


'한길문고'를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결국 책과 사람, 책과 문화를 이어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그저 책을 읽었을 뿐인데 저도 잠시나마 한길문고에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꿈을 되찾기도 한 이들,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된 이들을 바라보며 저도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군산에 가게 된다면 '한길문고'를 먼저 찾아가 보겠습니다.

왠지 두 팔을 벌려 안아줄 것 같은 그곳에서 저도 서점이 전해주는 따스한 빛을 받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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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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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박물관이었습니다.


잊힌 세계의 끝,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릴 생의 보관소


이곳엔 어떤 전시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였습니다.


"사라진 영혼들의 유일한 안식처,

침묵 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침묵 박물관

 


내가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은 작은 여행 가방 하나였다. 내용물은 옷 몇 벌, 손에 익은 필기도구, 면도기 세트, 현미경 그리고 『안네의 일기』와 『박물관학』이라는 책 두 권이 전부였다. - page 5


박물관 기사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온 '나'.

의뢰인은 아무리 보아도 백 살에 가까운 노파였고 한동안 긴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시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침묵 속에서 사람됨을 평가하는 그런 종류의 면접 말이다. 아니면 노파의 기분을 거스르는 행동이라도 한 것일까? 가령 빈손으로 와서 불쾌하다거나 넥타이 취향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 page 10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히다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게 됩니다.


"훌륭한 박물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page 11


나는 대충 주변을 둘러보고 수장품들에 대해 잘만 전시하면 괜찮은 박물관이 될 거라고 이야기한 것뿐인데 노파는 대뜸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만들려는 건 자네 같은 애송이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장대하고, 이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박물관이야. 한번 시작하면 도중에 그만둘 수 없어. 박물관은 계속 증식하지. 확대되기만 할 뿐 축소되진 않아. 요컨대 영원이라는 운명을 짊어진 가련한 존재인 셈이지. 한없이 늘어나는 수장품 앞에서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면 불쌍한 수장품은 두 번 죽게 돼.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남몰래 삭아 없어졌을 텐데, 강제로 사람들 앞에 끌려나와 구경거리가 되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자포자기했을 때쯤 또다시 버려지는 거지. 참혹한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절대로 도중에 그만두면 안 돼. 이것이 세 번째 진리야." - page 13 ~ 14


노파가 세우고자 했던 박물관은 바로 마을에서 사망한 이들과 관련된 물건, 즉 유품들을 전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유품들이 전하는 '침묵'.

그래서 이 박물관이 '침묵 박물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전시를 해 보았지만 유품들을 전시하다니...

어쩌다 노파는 이 유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녀가 열한 살 되던 해 가을.

유능한 베테랑 정원사 -지금 정원사의 증조부-의 갑작스런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처음 죽음을 바라보게 된 그녀.

놀랄 만도 한데 그녀는 정원사의 손에 쥐어진 전지가위에 눈이 가고 순간 그 가위를 자신의 치마 주머니에 넣게 됩니다.


이유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려워. 전지가위를 갖고 싶어서 환장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지. 땅의 정령이 꼬드긴 건지, 내면의 목소리가 시킨 건지...... 아무튼 그때 나는 내가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을 정확하게 해냈어. 그것만은 분명해. - page 51


그렇게 유품을 수집하게 되고 늙은 세상의 안식처가 될 박물관을 세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박물관은 점점 자리를 잡아감과 동시에 마을에선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전이 등장하게 되는데...


소설 속 유품들이 전하는 '침묵'과 전도사의 '침묵 수행'은 소녀와 '나'는 다르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닮아 있었습니다.


"침묵 수행에 들어가면 편지와 일기도 쓸 수 없어요. 하지만 읽는 건 자유예요. 자기 안의 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지 밖에서 들어오는 건 거부하지 않아요. 육체를 버리고 마음속으로 망명한다고 보면 돼요." - page 185


결국 물건은 자신의 것을 표현하기보단 그 주인의 삶을 고스란히 표현하기에 응축된 침묵의 표현이 닮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죽음 뒤에 남겨진 것들에 대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유품은 천국에 가지 않아요. 그 반대죠. 이 세계에 영구히 남기 위해 박물관에 보존되는 거죠. - page 150


그렇다면 유품은 죽음과 그 너머의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인 것일까...


어둠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불안에 떨지 않았다. 우리는 유품에 대한 똑같은 정열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흔들림 없이 굳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품을 수집하고 소중하게 보존하는 한, 혼자 하늘 끝에서 굴러떨어져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칠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age 142


이 소설을 읽고 '죽음'이 한 인간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남겨진 것들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그래서 잊힌 세계의 한켠에서 당신에게 침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켠이 묵직하였습니다.


'침묵 박물관'은 결국 지금의 내가 있는 이곳이었습니다.

나의 손 때가 묻은 물건들.

내가 살아 숨 쉬며 생활하는 공간들.

그리고 '나'라는 존재...

나는 어떤 물건이 남겨질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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