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림 방지 사전 - College or University?
마크 타일러 노블먼 지음, 강미경 옮김, 배영헌 그림 / 보누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보누스'출판사에서 발간된 책들은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상식이지만 몰라도 사는데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 하지만 그냥 지나쳐 긴가민가한 것들을 간단하고 명쾌하게 정리하여 발간된 책 시리즈물들이 많다.

예를 들면 야구를 좋아하는 광팬이라면 알아야 할 야구에 대한 각종 상식을 모아 놓은 그라운드의 바이블 '야구교과서'라든가 100여 개국의 10만 여명의 회원이 속해있는 지능지수 148이상의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의 즐거운 유희, 멘사 퍼즐을 책으로 묶어 놓은 '멘사 퍼즐' 시리즈, 전 세계 인터넷 공간에 떠돌고 있는 수십만 개의 위트들 중 고품격 위트만을 가려 뽑은 모음집 롤프 브레드니히 저 '위트 상식사전'시리즈 등 제대로 알면 유식하다고 인정받지만 몰라도 사는데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콕콕 정곡을 찔러 제대로 알기를 종용하는 그런 책들 말이다.

하지만 이 책들은 자칫하면 따분해보일 수 있지만 따분하게 편집되어있지 않아 개성 있는 일러스트와 사전 같은 판형, 짤막짤막한 내용 전개는 어떤 면으론 2%부족한 듯 보여 뭔가 좀 허한 것 같지만 달리 보면 너무 깊게 파고들어도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어려울 듯해 보이는 상식사전 같은 책들이다.




『헷갈림 방지 사전』 이 책 또한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접하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비교 정리한 것들을 읽고 있노라면 "어? 정말?"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같은 의미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같은 의미가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어 내가 얼마나 엉터리 사전지식을 갖고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책의 목차부터 살펴보면 "어?"하는 감탄사와 얼른 찾아보고픈 욕구를 느끼게 됨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필연적으로 목차부터 펼쳐보시길.

여느 책처럼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읽다보면 자칫 지루해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헷갈림 방지 사전』 이 책을 재밌게 읽고자 한다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이 책은 어른들이 읽어도 흥미를 느낄 수 있지만 아이들과 부모가 퀴즈처럼 응용하며 함께 읽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정좌 자세로 책상위에서 진지하게 이 책을 마주하기란 좀 가볍기 때문이다.

이 책을 가지고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가족 간의 가벼운 토론도 즐거울 것 같고, 신문지상에 소개되어 나오는 '오늘의 명언' 또는 지하철 벽면에 붙어있는 좋은 글귀를 붙여놓은 포스터처럼 가장 한가하게 앉아 있을 만한 공간, 가령 화장실 등 혼자서 짧지만 조용히 홀로 앉아있는 시간 동안 책을 들고 들어가기보다 이 책의 내용 중 어떤 것들을 택해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놓으면 조용히 읽으면서 혼자만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시간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헷갈림 방지 사전』는 짧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폭넓은 상식과 창의적인 생각을 얻을 수도 있고 그냥 대충 읽다가 구석에 처박아 놓을 수도 있는 양면성이 큰 책 같다는 느낌이다.




출판 기획자의 친절한 의견도 듣고 싶어진다. 이 책의 기획의도를.

단순한 지식나열인지, 어떤 다른 깊은 뜻이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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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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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자.

나에게 남자라는 존재는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지금은 그렇다.

아버지같이 넓고 커다란 가슴을 가졌지만 때론 그들도 아이같고, 여자같은 성향도 나타나지만 그래도 어떤 울림이 느껴지는 남자. 뭐 그런 존재로 남아있다.




어릴 때의 남자란 존재는 뭐랄까..

같은 인간으로서의 단지 성이 다른 남자라는 존재가 아닌 인간과 이성을 따로 분리한 호르몬의 작용에 의해 보이는 나와는 다른 종의 남성이었다. 그러다보니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엄청난 고정관념이 있었다.

즉 남자란 무엇이든 강해야 하고 힘도 세고 뭐든지 잘 해야 하는 어릴 때 영화의 6백만불의 사나이같은 존재였다. 6백만불 사나이는 어디서든 나타나는 슈퍼맨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나에겐 남자란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해줄 슈퍼맨 같은 존재였기에 남자들을 인간 남자로 받아들이기에 엄청 힘들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에서 만난 남자란 존재는 사회적 위치, 상황 등을 동일한 상태에서 같이 겪고 생활하다 보니 그들도 나와 같은 심약한 인간인 남자였기에 이젠 조금은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또한 어떤 면으론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고 표현하는 것도 맞을 것이다.

 

이렇듯 남자에 대한 생각은 나이를 먹을 수록 달라져가게 되었는데 그래도 궁금한 건 여자와 남자는 왜 다른가였다.

 

남자, 그들의 이야기 를 보면 26편의 다양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난 이 책에서 정서적인 공감대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의 남자들과 정서적으로 좀 달라서일까?

남자들의 생각은 때론 직선적인 것 같으면서도 커다란 곡선을 지닌 그러나 그 곡선 안에 숨겨진 내면의 모습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아 참 궁금했었다. 너무 단순해서일까?

잡혀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너무 짧아서일까?

남자들의 수다는 여자보다 더하다는데... 이 책에선 그런 점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여성은 뾰족뾰족 굽이진 촘촘한 곡선의 생각들에서 섬세한 생각들이 여기저기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숨겨져있음에 들여다보고 찾는 재미가 있다.

난 이 차이점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것도 있었다.

그들도 따뜻한 감성을 가진 심장이 펄떡 거리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저 슬픔도 기쁨도 모두 억누르며 우는 것은 아이 때 졸업하고 커서는 절대 울거나 감정표현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감성이 묶여버려 허세만 남은 인간으로 지내는 것을 그들도 힘들어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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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나를 키워준 99%의 힘
임채영 엮음 / 예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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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5월은 무슨 날이 많았던 달이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모두 끈끈한 사랑을 나누는 달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주변에는 ...날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부담으로 인해 그들은 고심에 고심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도 금전적인 부담이 커서일 것이다.

그런 날을 만든 것은 사랑의 마음이 오고가는 날을 만들어 감사하는 마음을 주고받는 의미 있는 날이 되라는 좋은 취지이지만 마음의 크기보다 금전의 부담이 점점 더 커져가는 건 사랑의 마음을 점점 잃어가고 그 비워진 공간이 어느덧 돈으로 채워가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빚어진 결과가 아닐 까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도 많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가정을 일구고 살아가는 가정에서 그런 현상들이 더 심해져가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론 가진 것이 넉넉하니 남들 보다 조금 더 많이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것 또한 어느 새 여유가 있건 없건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마음으로 인한 속상한 마음도 남는 결과도 생기고 보니 그런 기쁜 날도 감사의 마음으로 주고받는 웃음과 행복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있다.




한 가족의 건강함은 그 가족원들이 신체적·심리적·사회적·도덕적으로 건강하여 하나의 집단 공동체로서 든든함을 말한다.

가족이 건강하다 함은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에도 긍정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고 서로 협동하고, 인내하고, 그리고 타협해서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잘 다져나간다.

건강한 가족에서 살아가는 개개인들은 외부 사회에서 억압당하거나 소외되는 일이 있어도 가족 내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용서받고 용기가 북돋아져서 심리적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된다. 건강한 가족은 건강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가족은 인간을 만들어내는 근원적 집단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자주적인 존재라는 주장이 끈질기게 이어져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가족, 자기주위의 사람, 그리고 현재의 자기 자신을 있게 한 여러 세대에 걸친 과거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증거도 점차 증가되고 있다. 즉 모든 인간의 정체성 확립이 인간의 준거집단 특히 그가 속한 가족, 준 가족집단의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증거들이 계속 연구되고 있다.




이것은 가족에 대한 어느 자료를 잠깐 인용한 것이다.




스틴네트와 드프레인(Stinnett & DeFrain, 1985)은 "건강한 가족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건강한 가족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말이 참 의미심장하다.

건강가족이란 가족의 형성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원들의 의식적인 노력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건강가족이란 대화가 있는 가족, 화목한 가족, 사랑이 있는 가족,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족, 가족관계가 원만한 가족, 부모 공경하고 우애 있는 가족, 친척관계가 원만한 가족 등으로 지적하고 있다.




가족은  MBC라디오 [여성 시대]에 방송된 청취자들의 사연 중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그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모 자식 간의 내리사랑을 모아서 엮어놓은 책이다. 우리네 주변의 가까운 이들의 지극히 평범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짧은 이야기는 코끝을 찡하게 시큰거리게 하는 가슴을 멍하게 울리는 울림이 있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끝없는 보살핌과 사랑을 받는 운명적인 빚쟁이이다.

부모 또한 자식에게서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함께 하며 생의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기쁨과 슬픔, 그 안에서의 무한한 사랑과 희망을 맛보게 되는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에만 느끼는 삶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특혜를 자식에게서 받는 빚쟁이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이 책을 읽으며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하는 '마음의 빚쟁이'로서 살아야 하는 운명적인 관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적어 본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나니 누가 누구에게 소원해지고 서운해지는 그런 것 보다 자신의 빚을 갚아도 끝없이 부족한 그런 안쓰러움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든다.

단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제 마지막 한 주 남은 계절의 여왕 5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달이지만 가족이 책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 그들의 사랑을 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을, 부모의 마음으로 거꾸로 생각해 보는 그런 시간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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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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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 바디스 한국경제

이 책을 읽고 다시금 깨달은 것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설피 아는 것이 아닌 확실한 앎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열정적인 지식에 대한 갈망이 더 크고 명확해야 한다는 것과 편협하고 편식적인 사고방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조차도 어떤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그 현상들과 문제들에 대해서 정확한 데이터에 의한 근거와 내용 등을 꼼꼼히 따지고 알려하기 보다 막연한 생각으로 감정에 치우쳐 생각하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어떤 정책들이 쏟아질 때마다 불안하고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휙휙 돌아가는 세상에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각종 매체에 올라와 있는 기사마저도 정말 정확하고 정직한 기사일까? 라는 의구심까지 드는 마당엔 나 같은 소시민들에게는 사방 앞뒤가 꽉 막힌 듯 갑갑함이 더해진다.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어디서 해결하라고.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님이 쓴 쿠오 바디스 한국경제는 그런 점에서 속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제대로 된 쓴 소리임에는 틀림없지만.

제대로 명확히 알지 못했던 지금의 당면 문제를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에둘러 말하지 않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펼쳐냈기 때문이다. 사실 학자들의 논리는 딱딱하고 어렵기만 해서 무슨 말인지 처음부터 이해하기는 어려운데 이준구 교수의 글은 그런 점에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은 무엇보다 감사하기만 하다.

이준구 교수의 문체는 좀 무덤덤하다. 그래서 긴 시간동안 책을 읽기엔 좀 지루한 점이 없지 않다. 아마도 이준구 교수의 홈페이지에 실은 글들과 신문칼럼에 올려진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그렇지 싶다. 또한 이준구교수의 화려한 미사어구를 배재하는 그 분만의 특징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그동안 다른 책들의 화려한 미사어구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 좀 독특함이 더하다. 큰 소리로 주장하기 보다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우면서 명쾌한 문체가 다음 페이지엔 또 무슨 말을 할지 무척 궁금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해 '1일 트레픽 용량 초과'로 홈페이지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어 수많은 네티즌들의 주목과 거의 모든 일간지가 그 글에 대한 기사를 실는 등 세인의 관심을 확 불러일으킨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는 지난 2004년 새만금 농지사업을 두고 당시 "농림부의 '환경영향 공동조사 보고서'는 왜곡됐고, 새만금 농지사업은 경제성이 전혀 없다"는 감정 결과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었고, 경부고속철도 건설 타당성 평가에도 참가하기도 한 서울대에서도 명 강의 교수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교수의 <미시경제학> <경제학원론> 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꼭 읽어야 할 필독서 책이라 들었을 만큼 이준구 교수의 명성은 참 높았다.


 

경제학자로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학생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구와 교육에만 몰두했던 이준구 교수는 갑자기 보수의 물결이 우리 사회를 휩쓸게 되면서 "시장은 좋고 정부는 나쁘다. 환경규제든 부동산 규제든 모두 풀어버려야 한다. 기업의 기를 살려줘야 우리 경제가 살아난다. 부자를 못살게 굴면 안 된다." 등 천편일률 적인 목소리만 들리고 여론이 무작정 한쪽으로만 쏠려 합리적인 보수가 아닌 도그마에 가까운 보수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걱정스러운 사회적 현상이 나타남으로인해 보수 일변도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주고자 사회비평의 붓을 들게 되었다고 한다.

 

쿠오 바디스 한국경제에 실린 이준구 교수의 현 정권에 대한 글은 참 신랄하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비판과 종합부동산세와 부동산, 우리의 심각한 교육 현실에 대한 현 정부의 정책의 비판 등 현 정권의 개혁을 한다는 것이 개악이 되고 말지 모를 위험한 실험과 같은 개혁에 강력한 비판의 글 등이 그것이다.




뉴딜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현 정부가 싫어할 만한 것들로 꽉 채워져 있다. 연방 정부의 개입 범위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보장하며,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새로 도입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퇴보라고 평가할 만한 프로그램들로 가득 차 있다. 정부가 이 사정을 잘 알면서도 뉴딜이라는 말을 썼는지 알 길이 없다. 짐작컨대 그런 사정을 잘 모르고 그저 멋진 말이라고 해서 빌려 썼을 가능성이 크다.




토목공사로 경기부양? 고비용 고효율 시대착오일 뿐이다.

뉴딜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표적 진보정책이다.

많이 벌면 많이 낸다는 조세원칙은 재정학의 정설 중 정설이다.

종부세 폐지는 상위 2%의 부담을 나머지 98%로 떠넘기자는 것이다.




등 MB정권에 대한 신랄한 그의 비판의 글은 대운하에 대해서는 "적어도 국민의 반수 이상이 반대하는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이라면서 "설사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첫 삽을 뜨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틀림없이 나타날 극심한 국론 분열과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정부가 감당하기 힘든 정치적 부담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념이 아니라 합리성이 우선해야 하고 구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에서 현 정부가 빨리 벗어나기를 거듭 강조하는 이준구 교수의 말은 MB정권의 눈과 귀, 가슴을 열고 그들의 의견에 어떤 구체적인 정보 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맞장구만 치는 이들보다는 반대하는 이들의 타당성 있는 강한 호소에 눈과 귀를 바짝 세우고 왜? 라는 생각과 함께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그 증거데이타와 앞으로 미래에 벌어질 후유증까지 다시 한번 더 검토하고 반영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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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베 난징의 굿맨
존 라베 지음, 에르빈 비커르트 엮음, 장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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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살아있는 부처 '존 라베'

나치당원이었던 존 라베.

또한 신앙심이 깊어 정기적으로 예배를 보러 다녔던 존 라베.

 

정말 매치되기 모호한 것 들의 결합인데 존 라베의 삶은 그랬다.

 

히틀러 치세 동안 독일인을 세 종류로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첫째 나치, 둘째 지식인, 셋째 신뢰할 만한 독일인.

한사람이 세 그룹에 동시에 속할 수는 없고, 보통 두 그룹까지만 속할 수 있었는데 이유는 지적이고 신뢰할 만하면 나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적이면서 나치인 자는 신뢰할 수가 없었고 신뢰할 만하면서도 나치인 자는 지적일 수가 없었다.

그는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를 꿰뚫어보지 못했다. 마지막 그룹에 존 라베가 속했다.

 

존 라베는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민족사회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오해했다. 그는 중국에서 신문 등을 통해 히틀러에 관해 읽은 것을 토대로 실제 히틀러와 비슷하지도 않은 성자상을 머릿속에 그려넣고 히틀러를 숭배했고 기적을 기대했다. 그는 어떻게든 그의 난징 시절에는 스스로 나치라고 믿었으며 그것을 일본의 점령기 동안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편견 없이 검토하면 오히려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그 점에서 라베는 잘못 생각했다.'

그의 눈을 처음으로 뜨게 해준 것은, 그에게서 일기장을 압수하고 침묵 명령을 내린 비밀경찰 게슈타포였다. 그 후 그도 곧 스스로 이를 깨달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후 라베가 히틀러와 히틀러의 정책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그에게서 들을 수가 없다. 그는 그의 새 일기장을 소련군이 지멘스슈타트에 진입한 날에 시작했다.(434p)

 

'존 라베'

그는 수십 년전부터 일기를 썼으며 일기 쓰기에 남다른 열정을 바친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겪고 관찰한 것을 기록하여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이야기를 잘 풀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1937년 9월부터 1938년 4월 동안 나온 것이 그리 두껍지는 않지만 책 일곱 권이 되었다. 그 책 안에는 그의 아내를 위한 것이 많아 가족과 집안일에 대한 언급이 많이 덧붙어져 있었고 텍스트 사이에 신문 기사, 편지, 초대장, 기록물 등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 일기책들의 제목은 '난징 상공의 적폭격기'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그후 그는 이 모두를 다시 총 8백 쪽에 이르는 두 권의 책으로 요약하여 책 제목을 '난징 폭격-한 生佛의 일기로부터'라고 하였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그의 아내를 위해 쓴 일곱 권의 '가족일기'에 쓰인 것과 일치하지만 신문기사, 편지, 전보문,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회의 기록, 4백 건이 넘는 일본군의 전쟁만행 목록을 담고 있다. 이 두 권의 일기는 난징 폭격, 국제위언회의 결성과 활동 그리고 위원회가 알게 된 사실들에 있어 전쟁 범죄에 대한 빈틈없는 기록들로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은 라베의 저작에서 중요한 기입 내용을 모두 가려 뽑아 만들었다.

 

'존 라베'

그는 자주 아팠다.

심장 장애와 과도한 긴장, 숙환인 당뇨병과 같은 질병에 자주 시달렸다. 그러나 의사들은 영양실조라고만 진단했다.

'지멘스'

라베는 지멘스 차이나의 중요 사업장 중 하나인 난징 지점을 수년 동안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는 하위 인사관리 업무만을 맡겼을 뿐이다.

 

"한 번 용감하고 착했더니, 이제 보니 그건 회사가 못마땅하게 여기던 것이었다! 통탄할 일이다! 나는 정말이지 '후케바인'이다."

"난징에서는 수십만을 위한 '살아 있는 부처', 여기서는 '불가촉천민', '추방된 자'라니!"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은 비서를 통해 난징에서 그의 큰 업적을 생각해 궁핍한 생활로 힘들게 사는 존 라베에게 식료품을 제공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그에게 집과 연금을 제공하겠다며 중국으로 이주할 것을 제안하였고 도쿄의 주요전범재판에서 원고 측 증인으로 출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존 라베는 거절했다.

"나는 일본인들이 교수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그런 죄 값을 받을 짓을 했을지라도....... 속죄, 정의로운 처벌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판결은 자기 나라 국민이 내려야 한다."

 

존 라베는 그렇게 지멘스에서 계속 임시직으로 일하다가 1950년 1월 5일 회사에서 뇌일혈을 일으켰고 그날 저녁 그는 가족들과 몇몇 친구 앞에서 쓸쓸히 죽었다. 그리고 그는 잊혀졌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은 책이면서도 한 편의 긴 다큐멘터리영화를 본 느낌이다. 그것도 똑 떨어진 디지털 영상이 아니라 까만 방 안에서 영사기 빛을 통해 보이는 뽀얀 먼지와 함께 오래된 필름의 쭉쭉 비내리듯 흰 줄 그어진 음성 또한 뚝뚝 끊기며 필름 감기는 소리를 들으며 한 없이 빠져드는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말이다.

그리고 때때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그 어떤 것 때문에 목이 메어 가슴은 뜨거워지고 그리고 눈물이 저절로 눈에 맺혀지는 그런 다큐.

눈물을 흘리게끔 동정심을 유발한 과장된 표현이란 어느 곳 한 군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은 「존 라베, 난징의 선한 독일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난징 대학살을 미국인들과 함꼐 힘을 합쳐 난징에 안전구를 설치하고 수십만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해낸 독일 출신 지멘스 차이나 난징 지사장 존 라베.

목까지 내려오는 철모를 쓰고 손님이 사진기를 갖고 방문하기라도 하면 책상에 앉아 전화를 받으면서도 무언가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 준 다소 우스꽝스럽고 괴짜처럼 보여지는 미국식 조크를 즐기는 남자, 그를 만났다 하면 한바탕 웃음이 터지거나 재미있는 말들이 오갔을 정도로 유머러스한 남자, 난징 타이판계 숙녀들 사이에서 춤 잘 추는 남자로 명성 높은 남자, 성공적인 비즈니스맨, 잠깐이었지만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중국의 수도 시장.

라베는 비록 안타깝게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는 평생토록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정직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라베는 인간에 대한 큰 사랑과 너그러움, 책임감을 가진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렇게 그는 남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카리스마있는 사람이었다.

 

난징대학살. 이것은 우리에게 인간의 속성과 현대 전쟁에 대해서 무거운 질문을 안겨준다.

"현대전은 지상의 지옥이다"라고 라베는 기록했다.

이 책은 현대전의 의미와 평화의 기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또 다른 화두를 던져 준다고 이 책의 말미에 기록한 옮긴이의 말처럼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

 

독일인들 사이에 무엇이 성실하며 올곧은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발걸음이 신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인지에 대한 올곧은 생각을 하게 한 성실한 함부르크 상인 존 라베에게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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