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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
쑨수윈 지음, 이순주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팝송도 즐겨듣곤 하지만 제3세계 음악을 더 좋아하고 즐겨 듣곤 한다.
잘 모르는 나라라도 그 나라의 음악을 듣다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한 나라는 주변국들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화되어 그 나라의 전통음악을 온전히 듣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듣다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영혼이 느껴져 흥미롭고 호기심이 생기곤 한다.
티베트의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티베트 음악들은 불교와 밀접한 불교행사 음악과 명상음악이 많지만 현대에 들어와선 그들의 전통음악과는 느낌은 다르나 중국과 다른 나라의 영향을 조금씩 받아 발랄하면서 독특한 그들의 문화와 어우러진 리듬도 있다. 그들의 음악은 갈링, 둥, 둥드카르, 캉링, 드릴부, 다마루, 룰모, 실녠, 그나 등 악기이름은 생소하지만 우리나라의 관악기, 타악기와 비슷한 것들도 있고 명상음악같아 우리 귀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불경을 읊듯 웅얼거리는 노래는 사뭇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롭고 듣다보면 하염없이 듣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들의 맑은 음색과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음악은 마음을 맑게 정화시켜주어 듣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음악은 이젠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티베트인들은 음악부터도 그들의 맑은 기운이 저절로 전달되듯 그들을 중심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도, 여행기에서 본 그들은 순박하고 따뜻하며 우리네와도 어떤 부분은 사뭇 비슷한 부분도 조금 엿보여 순박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그들에게선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아 편안하지만, 그들은 쉬이 볼 수 없게 만드는 그들만의 독특하면서 조용한 맑은 경건함이 있다.
현재는 중국의 자치령으로 있는 되어있는 은둔의 나라, 티베트!
티베트족은 티베트어로 "蕃巴"(Boba)라고 한다. "보"라는 곳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티베트족은 대부분 밀교와 토속신앙이 결합된 라마불교를 믿기 때문에 자치구 곳곳에 오래된 사원이 있고 집집마다 불상을 모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몸에 불합(佛盒)을 간직하고 손에는 전경통(轉經筒)과 염주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참 많은 멸시를 받는 나라 티베트.
야만의 땅. 티베트인들은 피를 마시고, 라마승들이 사람 가죽으로 북을 만들고, 처녀의 넓적다리뼈로 뿔피리를 만들고, 농노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형제, 심지어는 부자가 아내를 공유하거나 반대로 자매가 남편을 공유할 정도로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미개한 곳. 중국 공산당의 선전으로.
하지만 그들은 티베트를 한없이 멸시함과 동시에 티베트에서 온갖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었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의 저자이자 중국인인 쑨수윈 또한 그랬다. 온갖 티베트에 대한 안 좋은 소리와 반대로 티베트를 찾지 못했다가 1991년 티베트가 과연 지상낙원인지 지옥인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티베트를 찾아간다.
'공허하고 장엄한 땅, 하늘과 좀 더 가까운 땅.'
저자가 느낀 티베트에 대한 느낌이었다.
저자는 결국 티베트의 자연과 인간, 신앙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티베트에 매료되고 말았고 그의 여행기간은 회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길어지고 그는 티베트인들의 삶을 일 년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연출을 맡아 아름다운 전통의 도시 갼체에서 1년간 머물게 되어 무당 체텐, 마을 의사, 청년 당원, 호텔 사장, 인력거꾼, 건축업자, 승려 두 명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인생 역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티베트의 시골 생활의 세밀한 부분, 신앙의 힘, 의식의 중요성, 일상생활에서 찾는 즐거움, 교육받기 위한 투쟁, 열악한 의료환경, 가난과 결핍 속에서 이루어 낸 소수의 성공, 정치적 긴장, 중국인에 대한 티베트인의 적대감 등 그는 티베트의 많은 것들을 때론 미안해 하면서 그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 노력하며 예를 지켜 그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고 책에 담았다.
저자는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신앙이 살아 있고, 문화가 보존되고, 전통이 지속되는 것은 이런 사람들 틈에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티베트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는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과 잔잔한 웃음 짓게 한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밑줄과 낙서들로 책표지가 너덜거렸지만 한 나라를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서글프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과 인간의 삶의 모습들, 생활 곳곳에 숨어있는 그토록 많은 신들. 나무신, 만물의 신, 싸움의 신, 남신, 여신, 집신, 저장신, 아궁이 신 등... 어찌보면 샤머니즘이 더 강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습들 등이 왠지 어릴 때 할머니가 늘 말씀하셨던 잔소리 같은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고 할까? 어쩌면 같은 불교권나라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우리 집안의 불교적 뿌리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무시했던 불교적 관습이 참 싫어 일부러 외면하고 부정하고 살기도 했지만 나이를 한 두살 더 먹어가면서 오랜 세월 동안 집안과 함께 한 불교적 뿌리는 걷혀지지 않은 모양이다.
곱씹어서 계속 되뇌이면서 그 뜻을 깊게 되새김질해야 했던 문구들과
'깨달음을 얻으면 생로병사의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자의 서]는 환생하는 것은 의식이며, 의식은 빛과 에너지라고 말한다. 이 의식이 사람보다 더 효율적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달리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몸"을 획득한다. 그래도 나는 아직 혼란스럽다. 의식이 사실은 빛과 에너지라는 말도 이해할 수 없고, 이 모든 속성을 지닌 '마음의 몸'이라는 말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본문51)
승려들의 음주문제에 대한 웃지못할 일화들.
승려들의 음주벽을 막기 위해 기이한 규칙이 생겼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승려들은 모두 사원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 앞에 가서 입 냄새를 맡아보게 해야 했고, 술을 마신 게 발각된 승려는 즉각 처벌되었다. 일부 뻔뻔한 승려들은 마늘을 많이 먹어 처벌을 피해보려 했다. 마늘 냄새가 술 냄새보다 독해 술 마신 걸 들키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이 책을 읽다가 한 지구에 사는 같은 인간이면서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고 우리는 너무나 다르기도 하고 또 한편 같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이기에 느끼는 공통적인 생각들은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의 살아온 관습과 생활모습의 차이는 참 달라 때론 섬뜩하기도 하고 때론 마냥 손을 같이 잡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나 또한 조용히 읊조려 본다.
그들이 지금처럼 척박하고 멸시당하며 긴장과 통제 속에 시달리며 힘들게 사는 것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진정 원하는 바램이지만 그들의 독특하고 맑은 영적정신은 온전히 지속되고 존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