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구판절판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에 존경의 마음을 보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물음표를 던져야 할 것인가를.

물론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 한 직장에 오랫동안 근속한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라고, 그의 성실 근면함과 능력은 당연히 존경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오랫동안의 직장생활로 인한 주변의 돌아가는 어떤 행태들에 대해 느껴지는 생각들은 꼭 그렇다고만 느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순간순간 보여지는 행태들에 대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키는 것으로 그쳐지는 뛰어난 인내심?에 박수를 보낼지라도.

분명 느껴지는 건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편한 현실’을 굳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용히 배 깔고 엎드려 “나만 살면 돼” “나는 잘 몰라” 라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월급 꼬박꼬박 상여금 꼬박꼬박 날자 어김없이 챙겨주는 회사에 그저 감사의 마음으로 남아있고 싶을 뿐인 것이다. 오죽하면 선배들이 ‘자리보존 잘 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을까.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모 방송국 드라마를 보면 ‘불편한 현실’이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나고 그것들에 대해 목숨 걸고 싸우는 주인공들의 영웅 같은 행동은 “과연 저런 사람들이 실재로 존재했을 수도 있었을까?”라는 의구심도 품어보며 나 또한 꿀꺽 삼킨 의구심과 현실에 대한 나의 비겁한 타협에 불편한 마음을 드라마의 영웅들을 보며 대리 배설해 버린다.

오랜만에 조정래 선생님의 ‘허수아비춤’이 발간되었다.

첫 장부터 느껴지는 음산하고 축축한 산뜻하지 않은 분위기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권모술수와 음모, 음침한 분위기로 읽기에도 “뭐지?”라는 의구심으로 책장을 넘기게 했다.

축축한 눈길의 살모사 같은 소설 속의 인물들은 시종 그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읽는 내내 나의 생각들을 편하게 놓아주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이란 어디까지일까? 왜 그래야만 할까? 더러운 세상.”

“이것 또한 동물의 본능적인 것들이 인간으로 태어나 변질된 욕망으로 이어지는 걸까?”



작든 크든 우리네 인생은 끝없는 경쟁 속에 누군가를 밟고서라도 올라가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어쨌든 현실은 있는 자들에겐 웃음을, 없는 자들에겐 비웃음과 인간으로서의 존재감마저 무시되고 상실되어 버리니 말이다.

참 슬픈 현실이지만, 어디서는 ‘휴머니즘’을 외치고 긍정의 힘을 강조하며 건강한 사회를 추구한다고 사회적 공감을 형성하려 하지만 그것 또한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이기’가 또아리를 감고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1세기는 소셜미디어 시대라고 한다.

소셜미디어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의견, 생각, 경험, 관점들을 서로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커뮤니티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긍정적의미, 사전적의미의 소셜미디어이고 매체에 보도되는 불편한 현실들은 인간으로서 더 이상 이 땅에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까지 만들어 섬뜩하고 무서운 보이지 않는 형무소이자 칼날이지 않은가.



그 어디서도 정녕 진실한 인간의 삶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조정래 선생님의 서슬 푸른 카리스마가 더 돋보이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흥미거리의 재미와 호기심보다는 읽고 난 후의 허무함과 눈물겨운 깨달음이 가슴을 치니 말이다.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

- 허수아비 작가의 말 중에서(7p) -

진정 이 시대에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


과연 나 자신을 제대로 보고 깨닫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나 자신의 화두에 물음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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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깨달음 -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
혜민 (慧敏)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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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의깨달음(하버드에서의출가 10)
 
 

우리네 삶은 모두 바쁩니다.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도시에서도 한적한 시골에서도 우리들은 거의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음식의 맛을 음미하고 즐겨야 할 식사시간에도 “후다닥”, 편안히 쉬어야 할 휴일에도 우린 정체 모를 조바심에 늘 분주히 움직이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린 병을 얻습니다.
만병의 근원이라 할 스트레스 때문이죠.
그래서 병원에 가고, 처방해 준 약을 지어 먹고…
편안히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에도 불구하고 우린 ‘약’으로 그 처방의 의무를 다한양 또 다시 바쁘게 살아갑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일명에 말이죠.
 
이젠 저 또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혔는지 누가 등 떠밀지도 않았는데 늘 ‘바쁨’을 입에 달고 살며 내 안의 ‘여유’를 점점 내 곁자리에서 밀쳐내곤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어느 새 무엇엔가 쫓기며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 같고 더 익숙해져 버려 편안히 쉴 곳을 찾아 깊은 산중에 가서도 몸은 산 속에 있지만 마음은 또 다른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끼며 혼자 자조의 웃음을 짓고 맙니다.


 
젊은날의깨달음(하버드에서의출가 10)의 저자 혜민스님은 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가 승려가 된 이유는 이렇게 한 생을 끝없이 분투만 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다.
무조건 성공만을 위해서 끝없는 경쟁만 하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스님의 인생 행로가 바뀌게 된 동기 중의 하나는 ‘20대의 젊은 나이인 지인의 뜻밖의 죽음’이었습니다.
지인의 죽음이라는 말 앞에 삶이 이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부서지기 쉽다는 생각과 죽음 앞에는 학위도, 돈도,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그 무엇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는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큰 깨달음을 얻은 거죠.
 
그는 말합니다.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성공 이후의 행복을 꿈꾸기보다는 지금 내 주변을 돌아보면서 다음 사람들과 함께 바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선택하자고 나는 이야기 하고 싶다.”
 
이렇게 혜민 스님의 54편의 짧은 에세이 모음들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게서, 때로는 지구촌의 사건들 속에서 그의 깨달음은 하나씩 모아져 한 권의 책으로 모아졌습니다.
 
사실 젊은 나이에 시공을 초월한 듯한 생각과 깨달음을 얻는다는 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창 열정으로 가득 차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어디로 분출될지 모를 나이에 삶의 우여곡절을 한참이나 겪고 나서야 겨우 깨달을까 말까 할 것들을 혜민스님은 젊은 나이에 깨닫고 실천한다는 것이 저에겐 참으로 존경스러웠으니까요.
만약 내가 이십 대, 삼십 대에 이 글들을 접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스님의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이나 했을까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네요.
“왜 그래야만 하는 거지?”
“젊은 나이에 세상을 초월한 듯한 생각을 하고 세상에게서 도망치는 거 아냐? 왜 도전하지 않는거지?”
“왜 그런 것(힘든 것들)들이 오고 왜 겪어야 하는 거지?”
라고 수없이 반문하고 질문만 할 뿐 그 뒷면의 들여야 보아야 할 그 어떤 것들은 들여다 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저 세상을 초월한 어느 수행자의 좋은 글로만 읽혀질 뿐!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서글픔 같은 외로움이 묻어나는 세월의 힘겨움이 때론 버거울 때도 있지만 때론 참 나를 알아가는 좋은 시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이렇게 고마울 때도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한 잔의 차 향기와 같은, 은은한 지혜와 마음의 훈훈함이 느껴지는 사람”으로 나도 변화하고 싶다는 소망도 품어보며 스님의 맑은 마음과 여유를 같이 느끼고 삶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을 이 책은 선물하고 있습니다.
 
 


삶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인연들 중에 어떤 인연이 과연 좋은 인연일까 생각해 보면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 참으로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연 따라 와서 인연 따라 가는 사람들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마는 그 인연의 끝을 어떻게 매듭짓는가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사미승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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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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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진저리치게 무료한 적이 있었다.

특히 오후 네다섯시쯤 되면 찾아오는 나른한 그 무료함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어 밖을 뛰쳐나가기 일쑤였던 적도 있었다.

그때 순간이나마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 것들은 코끝을 스쳐는 선선한 바람과 꿈틀꿈틀 움직이는 작은 벌레들의 가녀린 생명력. 

그리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색의 변화들과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

이 책은 그때의 기억들을 하나 둘씩 떠오르게 한다.

그 때의 아픔들과 왜 아파야만 했을까를 다시금 되새김질 하게 했다.

 

지나간 상처들의 아픔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다는 세상의 말들이 있지만 상처들은 그다지 순한 기억으로 되새김질 되진 않는다.

다시 떠올려 기억한다는 것은 나른함도 아니오 평안함도 아니다.

단지 그때의 비수같던 가시돋친 상처가 지금은 조금 무뎌졌을 뿐이다.

아니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도 상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다.

 

 

채민의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나에겐 오후 4시같은 책이었다. 시와 그 시를 표현한 그림과 글 속에 녹아있는 만화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과 생각들은 참기 힘든 무능력한 무료함과 삶을 짓누르는 커다란 바위덩어리같은 삶의 무거움으로 질식할 것만 같은 갑갑함이었다.

 

누군가가 삶의 캄캄한 깊은 수렁으로 내 발목을 움켜쥐고 깊고 깊은 물 속으로 끌어내리는 물귀신 같아 버둥거리고 빠져나오고 싶은 본능적인 간절한 몸부림(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도 삶의 희미한 희망 한줄기 조차 보이지 않아 단지 살아 있기 위해 사는 동안 끊임없이 버둥거리는 삶을 살기보다 '끝없는 비참함보다 비참한 끝을 보는 편이 낫다'(Perfect day)를 택했지만...그러나 그들의 마지막 간절한 절규 "도와줘"

그리고 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를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가진 것이 없는 그 때가 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다'

라는 신현림작가의 싯구절은

그래도 아무데도 떠나지 못하는 회색벽에 갇혀 핑퐁게임 같은 삶을 사는 우리네 현실에 각자에게 던져진 숙제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시와 만화!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다른 장르가 채민작가 특유의 시를 녹인 스토리와 만화로 우리의 삶을 다시금 곱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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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그리고 인생은 다시 지나간다 -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 2009 오디세이
고명근 외 지음, 김민성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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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나라의 작가세계는 참 험난하다.

작가 그 자체의 감성과 창의성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작품을 평가하기보다는 유명한 어느 누군가의 평가로, 어느 부호의 주목을 받는 작품이라든지 외국에서의 인정을 받았던 프로필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순수창작도 그랬지만 사진작품은 더 했다.

그냥 카메라만 들이대면 찍히는 거 아니야? 라며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가 그들만의 독특한 감성은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카메라 뷰파인더로 들여다 본 세상과 막상 찍어서 인화지로 나온 사진은 어떤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건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고 노력이라도 했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지금은 디지털카메라이어서 현상비, 인화비의 비용은 덜 들어가지만... 예전엔 어땠나..

막연히 감상에만 젖어서 마구 찍다가 현상비와 인화비만 엄청 날린 나름 쓰라렸던 기억은... 비난 나 뿐만은 아니리라.

굳이 비유하자면...

 

정지 그리고 인생은 다시 지나간다

이 책은 현존하는 한국사진가 중 현대사진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작가 10인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이갑철, 민병헌, 이정진, 오형근, 고명근, 김아타, 강운구의 작품 120여점의 사진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진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하는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전 : 2009 오디세이」(2009년 7월14일~8월18일)에 맞춰 전시에 참가하는 현존작가중 9인(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이갑철, 민병헌, 최광호, 이정진, 오형근, 고명근)의 작품들을 담았다.

 

 




 


http://www.gallerywa.co.kr

 



1.신문로, 2008. 100.5 x 72.5cm, 콜로타이프. 주명덕 2Thing 03-04, 2004, 195 x 140cm, 한지에 사진 유제 인화. 이정진 3.스노우랜드 시리즈, SL049 BHM 2006, 2006, 105 x 125cm, 젤라틴 실버 프린트 © 민병헌 민병헌

 



 In the Beginning 13, 1998, 95 x 135cm, 젤라틴 실버 프린트, 실, 구본창

 

http://www.2009odyssey.co.kr/asp/bbs/press_view.asp?idx=36&board_idx=3&gotopage=1

 

 

정지 그리고 인생은 다시 지나간다」 이 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작가별 작품들을 작가 각자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도톰하고 따뜻한 색감의 수입지에 인쇄된 엽서 형식의 디자인으로 한 장씩 느껴볼 수 있다는 것과 소설가 이청준과 시인 김용택, 이문재, 윤제림, 미술평론가 이주헌 등의 다양한 글들을 통해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감성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시각적인 감동과 더불어 텍스트의 감성까지 같이 덤으로 얻어가는 큰 감동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작가들이 직접 쓴 자신의 이야기와 개개인의 약력을 통해 그들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보다 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다.

사진이 주는 감성을 굳이 텍스트로 느끼는 것이 꼭 더 큰 감동을 받는 건 아니지만 작가들이어서 그런지 글 또한 톡톡한 감성을 자아낸다.

 

사진은 대중과의 소통이다.

특히 개인적으론 최광호씨의 작품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있는데 그 분의 작품은 예전에도 느꼈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그 분만의 독특한 쿵쿵 가슴을 울리는 아픔과 아련한 슬픔이 깃들여져 있다.

오래 전 작품 집을 통해 최광호작가의 가족들을 들여다 본 기회가 있었는데 흑백으로 만난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나신과 요강 등 인간의 삶과 시간들, 죽음을 표현한 사진들로 삶에 대해 쿵 가슴을 치는 아픔과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눈가에 핑 눈물이 맺히고 목이 따끔거려 목이 메였던 목구멍에 턱걸린 아련한 슬픔이 작가의 작품엔 베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장인장모의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은 그때의 기억과 더불어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작품의 테크닉 또한 독특해서 한 평생의 희노애락이 얼룩진 삶이 그대로 녹아났다고 할까.

그는 정말 그야말로 '태어나고 밥먹고 공부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애낳고 일하고 죽어가는 삶의 신산한 모습들'을 30년 동안 찍고 표현했다. 정말 못말릴정도의 고집스런 통제불능 작가이기에 그 또한 멋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늙고, 죽어가면서 스스로 존재 증명을 한다.

시들지 않는 것과 죽지 않는 것은 생명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쯤이면 난 이렇게 삶을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시리즈는 언제나 그렇듯 신비로움과 더불어 꼭 그리스 작곡가 Vangelis(본명 Evangelos Odyssey Papathanassiou)의 음악과 같이 매치된다. 늘 언제봐도 싫증나지 않는 소나무 시리즈.

꿈 속에서까지 나타났을 정도의 배병우 작가의 사진은 언제봐도 신선하고 베일에 싸여있다.

 

정지 그리고 인생은 다시 지나간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와 작품들은 어디선가,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훨씬 오래 전부터 그들은 이미 작가로서의 왕성한 활동과 늘 변화하고 성장하는 작가들이었다. 나이와 세월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늘 작업에 몰입했고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세계와 철학을 사진에 담고 개척해 나갔던 9인의 작가들.

정지 그리고 인생은 다시 지나간다」는 그들의 사진철학을 그들의 솔직 담백한 고백이 담긴 작가노트를 통해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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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
쑨수윈 지음, 이순주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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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팝송도 즐겨듣곤 하지만 제3세계 음악을 더 좋아하고 즐겨 듣곤 한다.

잘 모르는 나라라도 그 나라의 음악을 듣다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한 나라는 주변국들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화되어 그 나라의 전통음악을 온전히 듣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듣다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영혼이 느껴져 흥미롭고 호기심이 생기곤 한다.

티베트의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티베트 음악들은 불교와 밀접한 불교행사 음악과 명상음악이 많지만 현대에 들어와선 그들의 전통음악과는 느낌은 다르나 중국과 다른 나라의 영향을 조금씩 받아 발랄하면서 독특한 그들의 문화와 어우러진 리듬도 있다. 그들의 음악은 갈링, 둥, 둥드카르, 캉링, 드릴부, 다마루, 룰모, 실녠, 그나 등 악기이름은 생소하지만 우리나라의 관악기, 타악기와 비슷한 것들도 있고 명상음악같아 우리 귀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불경을 읊듯 웅얼거리는 노래는 사뭇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롭고 듣다보면 하염없이 듣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들의 맑은 음색과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음악은 마음을 맑게 정화시켜주어 듣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음악은 이젠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티베트인들은 음악부터도 그들의 맑은 기운이 저절로 전달되듯 그들을 중심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도, 여행기에서 본 그들은 순박하고 따뜻하며 우리네와도 어떤 부분은 사뭇 비슷한 부분도 조금 엿보여 순박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그들에게선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아 편안하지만, 그들은 쉬이 볼 수 없게 만드는 그들만의 독특하면서 조용한 맑은 경건함이 있다.

 

현재는 중국의 자치령으로 있는 되어있는 은둔의 나라, 티베트! 

티베트족은 티베트어로 "蕃巴"(Boba)라고 한다. "보"라는 곳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티베트족은 대부분 밀교와 토속신앙이 결합된 라마불교를 믿기 때문에 자치구 곳곳에 오래된 사원이 있고 집집마다 불상을 모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몸에 불합(佛盒)을 간직하고 손에는 전경통(轉經筒)과 염주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참 많은 멸시를 받는 나라 티베트.

야만의 땅. 티베트인들은 피를 마시고, 라마승들이 사람 가죽으로 북을 만들고, 처녀의 넓적다리뼈로 뿔피리를 만들고, 농노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형제, 심지어는 부자가 아내를 공유하거나 반대로 자매가 남편을 공유할 정도로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미개한 곳. 중국 공산당의 선전으로. 

하지만 그들은 티베트를 한없이 멸시함과 동시에 티베트에서 온갖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었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의 저자이자 중국인인 쑨수윈 또한 그랬다. 온갖 티베트에 대한 안 좋은 소리와 반대로 티베트를 찾지 못했다가 1991년 티베트가 과연 지상낙원인지 지옥인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티베트를 찾아간다.

 

'공허하고 장엄한 땅, 하늘과 좀 더 가까운 땅.'

저자가 느낀 티베트에 대한 느낌이었다.

저자는 결국 티베트의 자연과 인간, 신앙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티베트에 매료되고 말았고 그의 여행기간은 회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길어지고 그는 티베트인들의 삶을 일 년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연출을 맡아 아름다운 전통의 도시 갼체에서 1년간 머물게 되어 무당 체텐, 마을 의사, 청년 당원, 호텔 사장, 인력거꾼, 건축업자, 승려 두 명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인생 역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티베트의 시골 생활의 세밀한 부분, 신앙의 힘, 의식의 중요성, 일상생활에서 찾는 즐거움, 교육받기 위한 투쟁, 열악한 의료환경, 가난과 결핍 속에서 이루어 낸 소수의 성공, 정치적 긴장, 중국인에 대한 티베트인의 적대감 등 그는 티베트의 많은 것들을 때론 미안해 하면서 그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 노력하며 예를 지켜 그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고 책에 담았다.

 

저자는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신앙이 살아 있고, 문화가 보존되고, 전통이 지속되는 것은 이런 사람들 틈에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티베트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는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과 잔잔한 웃음 짓게 한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밑줄과 낙서들로 책표지가 너덜거렸지만 한 나라를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서글프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과 인간의 삶의 모습들, 생활 곳곳에 숨어있는 그토록 많은 신들. 나무신, 만물의 신, 싸움의 신, 남신, 여신, 집신, 저장신, 아궁이 신 등... 어찌보면 샤머니즘이 더 강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습들 등이 왠지 어릴 때 할머니가 늘 말씀하셨던 잔소리 같은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고 할까? 어쩌면 같은 불교권나라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우리 집안의 불교적 뿌리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무시했던 불교적 관습이 참 싫어 일부러 외면하고 부정하고 살기도 했지만 나이를 한 두살 더 먹어가면서 오랜 세월 동안 집안과 함께 한 불교적 뿌리는 걷혀지지 않은 모양이다.

 

곱씹어서 계속 되뇌이면서 그 뜻을 깊게 되새김질해야 했던 문구들과

 

'깨달음을 얻으면 생로병사의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자의 서]는 환생하는 것은 의식이며, 의식은 빛과 에너지라고 말한다. 이 의식이 사람보다 더 효율적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달리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몸"을 획득한다. 그래도 나는 아직 혼란스럽다. 의식이 사실은 빛과 에너지라는 말도 이해할 수 없고, 이 모든 속성을 지닌 '마음의 몸'이라는 말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본문51)

 

승려들의 음주문제에 대한 웃지못할 일화들.

 

승려들의 음주벽을 막기 위해 기이한 규칙이 생겼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승려들은 모두 사원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 앞에 가서 입 냄새를 맡아보게 해야 했고, 술을 마신 게 발각된 승려는 즉각 처벌되었다. 일부 뻔뻔한 승려들은 마늘을 많이 먹어 처벌을 피해보려 했다. 마늘 냄새가 술 냄새보다 독해 술 마신 걸 들키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이 책을 읽다가 한 지구에 사는 같은 인간이면서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고 우리는 너무나 다르기도 하고 또 한편 같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이기에 느끼는 공통적인 생각들은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의 살아온 관습과 생활모습의 차이는 참 달라 때론 섬뜩하기도 하고 때론 마냥 손을 같이 잡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나 또한 조용히 읊조려 본다.

그들이 지금처럼 척박하고 멸시당하며 긴장과 통제 속에 시달리며 힘들게 사는 것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진정 원하는 바램이지만 그들의 독특하고 맑은 영적정신은 온전히 지속되고 존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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