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조금은 지혜로웠으면 싶은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그 지혜로움은 수시로 필요하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는 보림출판사의 신간으로 권정민이 지은 책이다.
이 책은 제 1 회 보림창작스튜디오 수상작이라고 한다.
제목을 보고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멧돼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 보고 있는 멧돼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제목을 듣고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품을 쓰게 된 의도는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 속의 멧돼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치고 난 후 멧돼지를 응원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어쩌면 그 뉴스는 도시 한복판에 나타난 멧돼지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멧돼지가 살고 있던 숲을 허무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멧돼지가 아니었을까?
멧돼지를 뉴스 속에서 보게 된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삶의 터전이 없어진 이유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용이 재미보다는 우울할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다.
앞표지를 넘기니 면지에, 멧돼지 앞까지 온 포클레인과 새끼를 품은 어미 멧돼지가 보인다.
화가 난 표정은 아닌데, 무엇인가 마땅치 않아 보이는 엄마 멧돼지의 표정은 심술궂게 보인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게 영 마땅치 않겠지.
그럼, 보금자리를 잃은 멧돼지는 어디로 가야 할까?
속제목도 재미있다.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듯한 멧돼지의 뒷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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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집이 없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새 집을 찾아 나설 것.
어떻게 하루 아침에 집이 없어졌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집을 잃은 엄마 멧돼지와 아기 멧돼지는 이제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 여정길에 오른다.
그림만 보면 공사장 근처에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제부터 그들의 여행은 시작된다.
힘들면 쉬어 갈 것.
힘들면 쉬어 가는 것은 누가에게나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데 그 문장과 함께 있는 그림이 재미있다.
지나가는 트럭에 올라탄 멧돼지의 모습이다.
자신의 다리로 뛰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트럭에 의존해 이동하는 지혜로움이 엿보인다고 해야할까?
삶의 터전을 잃어버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가는 멧돼지들의 이야기는 애처롭다.
그러나, 그 멧돼지의 모습을 그리고, 지침을 쓴 말들은 애처롭기보다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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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멧돼지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환영을 받을 수 없다.
도심 한 가운데서 벌어지는 경찰과의 추격전.
수상한 녀석들이 나타나면 일단 피할 것.
멧돼지를 쫓는 경찰들 그리고, 멧돼지를 피해 난간으로 오르는 사람..
사람 입장에서야 멧돼지의 폭주지만, 멧돼지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아이러니.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반드시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멧돼지가 살고자 하는 집은 어떤 집일까?
멧돼지는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마음에 드는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들이 마련한 집은 어떤 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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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의 그림이다.
여전히 포크레인이 있는 걸 보면, 공사 중인 듯 싶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많은 멧돼지들..
그리고, 그 앞에 비둘기는 편지 한 장을 입에 물고 있다.
과연, 이 편지의 내용은 무엇일까??
멧돼지의 입장에서, 사람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는 책인 것 같다.
자신들의 삶을 터전을 하루 아침에 빼앗겨 버린 멧돼지, 그런 멧돼지들에게 집을 빼앗겨 버린 사람...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 되어가는 것 같다.
과연, 삶의 터전을 잃은 다른 멧돼지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비둘기가 물고 있는 편지는 아무래도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