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이버릿 차일드 - 바람직한 자녀사랑을 위한 부모심리학
엘렌 웨버 리비 지음, 김정희 옮김 / 동아일보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총애라는 말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 있던 책이었다.
누군가를 편애하는 것과 총애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총애의 사전적 정의는 남달리 귀여워하고 사랑함.이라고 되어 있다.
귀여워하고 사랑해 하는 것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하는 것일까?
사랑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가 하는 행동을 받아 주기만 하는 것이 총애일까?
<페이버릿 차일드>를 읽으면서 과연 페이버릿 차일드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이들이 받은 사랑이 총애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믿어 줘야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럴 경우에도 페이버릿 차일드 컴플렉스가 생길까?
무한의 사랑을 베푼다고 해서 그 사랑이 단 한번도 "안돼"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점이 참 의문스러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총애를 받았던 이들이 받은 것은 결국 그릇되고 편협된 사랑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 부모님의 총애를 받고 자랐던 것 같다. 물론,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바로 밑의 남동생은 남자라는 이유로 총애를 받았고, 막내 여동생은 막내라는 이유로 총애를 받았다.
난 내 아이들도 총애를 한다. 큰아이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사려가 깊으며, 이해의 폭이 넓다.
작은 아이는 겁이 없고 도전적이며 활기차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특성에 맞게 아이들을 대한다. 물론, 두 아이들이 서로 총애의 대상에서 제외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특성에 맞게 아이를 받아 들이고 자기가 갖고 있는 기질대로 커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하는게 부모의 몫이란 생각을 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그릇된 엄마의 욕심에, 아빠의 욕심에 희생양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내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자라고 다짐을 해 본다.
우리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키우지는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