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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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유래 없는 압축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 우리가 소멸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출생률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0.7명의 아이를 낳는 상황은 당연히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여기에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로 무역수지 흑자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고, 에너지 전환 이슈 역시 우리 경제에 무리를 준다. 내부적으로는 부동산 거품과 가계 부채, 그리고 내수 경기도 좀처럼 크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역사적인 저출생과 더불어 기록적인 자살률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빠른 산업화를 위해 분배나 복지는 뒤로 미뤄졌고, IMF 사태 이후로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하게 드라이브 걸면서 각자도생이, 정확히는 개인적인 무제한적 탐욕의 경쟁이 열렸다.





저자가 내놓는 해결책의 시작은 정치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할 때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한창일 때를 배경으로 쓰인 이 책은,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해 그리 희망을 걸지 않는다. 여야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른바 진보정당의 정통계보를 잇던 진보당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책이 쓰일 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국 친위 쿠데타로 자멸한 윤석열 정권은 말 그대로 최악의 이익 집단이었다. 아는 것이 없이 대통령까지 된 그가 할 수 있는 건, 수족인 검사들을 온 정부 기관에 보내서 감시하고 배후조종하는 방식뿐이었다. 앞서 말한 국가적 위기 상황 앞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내 놓은 것은 없었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었다.(그 와중에 알뜰살뜰 뇌물을 받아 챙기는 영부인까지..)


저자는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책이 쓰인 지 몇 년이 지난 오늘, 과연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정치가 복원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것 같다. 어차피 대통령이 하는 일을 막고 발목 잡는 게 지상목표인 야당(혐오가 높아질수록 지지자들도 결집한다는 학습효과가 강하게 있다)은 이제 대놓고 음모론과 선동으로 정국을 대하고 있다. 박수는 양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아마 나라가 망한다고 해도 상대가 몰락한다면 기꺼이 그런 선택을 할 것 같은 썩은 정치인들이 여기에 참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 결국 우리 앞에 남은 길은 소멸일까? 적어도 정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럴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는 혐오와 저주의 문화가 초등학생 레벨에까지 깊이 퍼져가고 있다.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는 수준을 넘어, 온갖 포털(예컨대 네이버 댓글창은 이미 일베에 거의 점령된 상태다.) 사이트에서도, 심지어 고등학교 야구 경기 중 일베 구호를 외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물론 언제나 시끄러운 쪽이 좀 더 크게 대표되는 면이 있긴 하다. 이 점에서 소망을 찾아야 할까.


압축 성장에 뒤따르는 압축 소멸 문제를 다룬 사회학 서적인 듯했으나, 책 중반 이후 주로 정치 상황에 관한 내용이 더 많이 다뤄진다. 다만 이런 종류의 책들이 언제나 당위는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할 수 있을 지에 관한 방법론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역시 현실이라는 무거운 족쇄 때문이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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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 - 미국 기독교는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되었는가?
마크 A. 놀, 박세혁 / IVP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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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 교회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난 세기 그리스도인의 표준적인(?) 모습은 서양 백인 남성이었지만, 이제 그 비율은 완전히 달라졌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의 수(물론 이 가운데는 다양한 유색인종들도 포함되지만)를 합쳐도, 나머지 대륙의 그리스도인들의 수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20세기 말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그리고 책에는 빠졌지만 아시아의) 여성이다.


이런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교회의 구성원 비율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그 내용의 변화도 수반하게 된다. 기독교적 개념이 새로운 문화 속으로 번역되어 들어갈 때,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생활은 북미나 유럽의 그들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저자는 이른바 복음주의 유형의 기독교가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이유를, “지금 여기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지도자를 따르겠다는 결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책의 중반부는 세계 기독교에 미국교회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를 다룬다. 이 역시 익숙한 설명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교회의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리더십을 장악하고, 일종의 영적 제국주의를 형성했다는 비판적 견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조금은 다른 그림을 그려준다.


물론 미국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가 되어가면서 수많은 적응과 해당 지역의 자치적 리더십들, 새로운 신학적 강조점들이 나타났다. 서구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이런 인식은 큰 그림을 볼 때에 비로소 갖춰지는 것이고, 부분적으로, 지역적으로는 여전히 조금은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온다. 몸의 어느 지체가 다른 부분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미국 교회들 역시 나머지 지체들을 의존하지 않고서도 혼자 제구실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지적은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도, 나아가 그 지역 내의 공동체들 안에서도 귀담아 들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마크 놀의 글은 언제나 새로운 통찰이 있다. 여전히 미국 중심의 사고, 서구의 신학 중심의 신앙생활만을 유일한 길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런 신앙의 전통들(이른바 ‘신학들’)에 공헌과 유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신학은 (그것이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어느 정도 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학은 계속 발전해야 하는 무엇이고, 단순히 예전 것을 붙잡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보수적 신앙 공동체에서는 이런 생각 자체를 불온하게 여기는 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금과옥조로 붙잡고 있는 신학적 명제들과 예배의 방식들도 역사적 기독교라는 좀 더 큰 맥락에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라는 게 난센스다. 결국 우리의 눈이 좀 더 큰 맥락을 보지 못하면 계속해서 그냥 익숙한 것을 최고의 것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또 다른 책 제목처럼, 우리는 “세계기독교인”으로 살아야 한다. 겸손함으로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우리가 서 있는 곳에 맞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손질을 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성경에 대한 정직한 묵상과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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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는 단순히 “교회에 다닐 자유”일까요?
오스 기니스의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2장 “진정한 치료책”은 종교의 자유를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기초로 설명합니다. 저자는 종교의 자유가 종교인만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양심과 신념을 보호하는 “첫 번째 자유”라고 말합니다.
종교의 자유는 나의 신앙을 지키는 권리인 동시에, 타인의 양심을 지켜 주는 책임입니다. 기독교인은 공적 광장에서 신앙의 양심을 따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강요가 아니라 설득이어야 합니다. 
이번 영상은 종교의 자유가 왜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전체의 문제인지, 그리고 한국 교회가 이 자유를 어떻게 성숙하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해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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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에 집결한 주교들의 다수는

동방 정제 막시미누스와 리키니우스 시절에

눈이 뽑히거나 다리 힘줄이나 팔이 잘린 자들로 구성된 고백자들이었고,

6월 초 니케아에 나타나 이 “고백자들의 군대”를 이끈 총지휘관은

리키니우스를 제압한 ‘전승자’ 콘스탄티누스였다.

고백자들의 군대가 지켜보는 앞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이집트 테베에서 참석한 주교 파프누티오스를 맞아

막시미누스의 핍박 때 뽑힌 그의 오른쪽 눈 부위에 입맞춤하며

극진한 존경을 표했다.


곽계일, 『니케아 신경 형성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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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힘이 세다 -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자리 찾기
폴 바스덴.짐 존슨 지음, 정효진 옮김 / 성서유니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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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따분하고 케케묵은 율법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성경은 이야기책이다. 수천 년을 배경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기록한 책이 성경이다. 하지만 또 그 분량이 적지 않으니 (재미있는 책은 길수록 좋긴 하지만) 도전할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나 청소년이나 어린이라면.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쓰였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한 교회의 공동 창립자인 두 저자는, 성경 전체에서 여덟 개의 장면을 뽑아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창조와 축복(아브라함), 구출(출애굽), 선택(다윗), 경고(선지자들), 구원(예수 그리스도), 파송(사도행전), 승리(요한계시록)이라는 여덟 개의 주제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사항들이다.





번역자는 문장들을 마치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문제로 번역을 했다. 이게 영어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었을까 싶었는데, 중간 중간 나오는 유머나 예화 같은 걸 보면 뉘앙스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책은 어른이 청소년/어린이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으로 읽힌다. 내용이 또 가만 보면 기독교 세계관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면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성경 이야기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사실 성경을 이야기로 보고 여기에 집중하는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마이클 고힌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가 함께 쓴 두 권의 책(『성경은 드라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도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고, 성경을 거대 내러티브로 보는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에 따르면 이런 식의 소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장점이라면 역시 쉬운 문체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종종 청소년들(또는 넓게 잡으면 사회초년생 청년들까지)에게 맞는 적용과 질문들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권해 줄만한 책 자체가 적은 우리나라 기독교 책 상황을 생각해 보면 꽤 반가운 일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성경읽기 운동을 하는 성서유니온에서 냈으니 더욱 안심.





그렇다고 단지 청소년들을 위한 쉬운 버전의 성경 이야기의 소개 정도라고만 보면 안 된다. 콘셉트는 그게 맞지만, 어른들도 성경을 읽으며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만한 질문과 통찰이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차분하게, 성경의 맥을 잡아보는 독서로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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