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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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서울대학병원에서 종양내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교수다. 물론 다른 의사들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암을 주로 다루는 종양내과라는 특성상 죽음을 꽤나 자주 가까이에서 겪는 직업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식이니까, 그 과정에서의 감정적 변화라든지, 환자의 상태가 꽤 크게 와 닿지 않을까 싶다.



책은 저자가 의사로 살아가면서 만났던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결국에는 죽음으로 끝난 치료 과정이었던 이들도 있고, 몇몇은 다행히 완치가 되어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책으로 엮으면서 다양한 사례들을 모았겠지만, 확실히 죽음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모양은 아니구나 싶다.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환자나 가족)이 있는가 하면, 소위 “죽을 날짜”를 받아 놓고서도 가족과 함께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이들도 있다. 저자의 환자였던 한 택시기사는, 암에서 나은 후 덤으로 사는 인생에 감사하며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기대여명이 1년도 남지 않은 한 젊은 여성 환자에게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에피소드에서는 찡하기도 하다. 버킷 리스트 달성을 위해 서핑을 배우러 나갔다가, 서핑 강사와 결혼까지 이른 것이다. 물론 남편도 아내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쳤다고 묘사한다.






책 전반부가 환자들의 다양한 사연들이라면, 후반부는 의료계의 상황에 대한 조금은 안타까움을 담은 내용들이다. 한 명의 의사가 한 달간 6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에게 환자 한 명은 600명 중 하나이지만, 환자에게 의사는 어쩌면 유일한 한 명이라는 이야기는 저자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자신의 제자였던 젊은 의사에게 문진을 받으면서, 그 의사가 단 한 번도 눈을 환자에게 돌리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걸 보면서 씁쓸해 하는 저자지만,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한다. 어떻게든 환자의 숨을 붙여놓는 것이 절대적 사명인 상황에서,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젊은 인턴과, 그에게 ‘살살 하라’고 충고하는 주치의의 상황은 답답하기도 하다. 그걸 ‘쇼피알’이라고 부른단다. (쇼+CPR)


또, 치료로 인해 병세가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에 대한 완화의료가 여전히 대접을 받지 못하고, 어떻게든 항암치료로만 내몰리는 (보호자에 의해서, 또, 그래야 돈이 되니까) 상황에 대한 지적도 보이고. 이런 내용은 이미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다양한 책들에서도 지적되지만, 존엄함 죽음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먼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찬송가 중에서 특별히 마음을 울리는, 그래서 좋아하는 곡들은 대부분 흔히 “장례 찬송”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고(살다보면 이 당연한 진리를 잊고서 눈앞의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동시에 새로운 소망을 품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어쩌면 이 세상에서의 삶은 일종의 준비운동쯤일 수도 있다).


가끔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을 읽는 것도 좋다. 책 속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인식하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작은 불만들, 내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현실들, 불안과 염려를 잠시 잊을 수 있으니까. 이 책도 썩 괜찮다.


언뜻 드러나는 문장으로만 보면, 저자가 살뜰히 사람들을 챙기고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지만, 그리고 공치사를 굉장히 쑥스러워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의사로 살려는 고민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쓴 책은 확실히 읽으면서도 마음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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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도 12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제법 흥미로웠던 책들도 곳곳에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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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 패밀리라도 괜찮아 - 어느 조울증 가족이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법
고직한.김정희 지음, 이범진 정리 / 잉클링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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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라는 단어는 그냥 영어로 보면 “정신적인”이라는 뜻이다. 어원인 그리스어의 “프시케”는 “영혼”이라는 의미다. 물론 “정신병적”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데, 이건 그 자체보다는 “사이코패스”나, 각종 정신병적 질환을 가리키는 병명의 접두어로도 이 단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고.


이 책에 나오는 “싸이코 패밀리”는 그래서 조금은 무시무시(?)하고, 염려도 되고 그런 단어다. 이 가족 괜찮은 건가? 저자로 실린 두 명의 이름은 사실 인터뷰이이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두 사람은 부부로, 학창시절 모두 조울증 증세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역시 심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일가족 모두가 정신병력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싸이코 패밀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들 스스로 붙인 이름이자, 이 단어에 실려 있는 혐오를 바꿔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단어라고 한다.





책에 드라마틱한 사건을 나오지는 않는다. 그저 이 부부가, 그리고 이 가족이 어떻게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내 왔는지 차분하게 묘사한다. 그래도 저자인 두 부부는 학창 시절 정신 병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기적적으로 지금은 특별히 재발걱정을 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두 아들 역시 완전히 치료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을 잘 이해해 주는 아내와 결혼도 하고(두 며느리가 자매라고 한다. 겹사돈인 셈)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다니 나보다 낫다.


사실 이 가족이 알려진 건 책보다 유튜브 채널이 먼저라고 한다. 세상은 물론, 심지어 교회에서도 이런저런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이 채널에 와서 위로를 받고, 서로를 격려하고, 나아가 현재 자신이나 가족이 앓고 있는 질병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일종의 대안 공동체,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도 같다.





책 속에는 쉴 새 없이 정신질환에 관한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그 중 적지 않은 건 교회 사람들, 목회자이기도 하다)가 등장한다. 참 안타까운 일. 몸에 생긴 온갖 질병과 달리 정신(뇌)에 생긴 질병은 왜 그렇게 특별대우(?)를 하는지 말이다.


결국은 잘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무지는 오해를 낳고, 오해가 쌓이면 혐오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면 더 배우고 공부하면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의 폭을 깊게 하는 공부대신, 그냥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대개는 불분명한 출처에서 그저 들은) 지식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게 자기 혼자 사는 데만 적용된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바꾸고, 변해야 한다. 고집 부릴 일이 아니다.


가장 먼저는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일로 시작해 보자. 이 책은 그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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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영상에서도 아가페 김재준 차장님과 출판계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갑니다. 마침 제가 공부했던 용인 양지 인근을 지나가느라 자연스럽게 신학생들 이야기로 시작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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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의 7가지 디테일 - 새들백에서 배운 성장 원리
케빈 리 지음 / 두란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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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새들백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한인 목회자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를 일곱 가지 항목으로 정리한 책이다. 여기 좋은 문화가 있으니 한 번 읽고 적용해 보는 게 어떠냐는 의도인데, 굳이 분류하면 (교회)실용서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런 책은 빙빙 돌리지 말고 핵심만 간명하게 전하면 좋겠다 싶은데, 이 책이 딱 그렇다.


목차에 나온 일곱 가지 원칙만 읽어봐도 핵심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1 무슨 사역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2 성장하는 교회는 전도의 끈을 느슨히 하지 않는다

3 소그룹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4 영적 건강만큼 정신 건강을 돌봐야 한다

5 건강한 교회는 사모가 행복하다

6 교회가 성장하려면 내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7 사역자에게 쉼은 사역보다 더 중요하다






저자는 문화의 힘을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교회 프로그램, 시스템을 가져다 도입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스템은 문화 위에 구현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새들백 교회가 갖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도 그 교회가 일찍부터 세우고 길러온 문화 때문이리라. 사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문화가 시스템을 만들기도 하고, 프로그램이 문화를 지탱하고 유지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사모 수련회 같은.


하나하나가 꽤 인상적인 원칙들이다. 특히 한 가지 사역을 더하면 기존에 진행되던 한 가지 사역은 뺀다는 원칙이라든지, 매년 사모들을 위한 수련회를 진행한다든지, 전도를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이를 위해 교회의 모든 부분을 여기에 맞춰가는 의지 등은 이런 것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흥미롭다.


여기에 책에 소개된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강하게 남는데, 교회의 최선임 목사가 데려온 신입 사역자를 두고, 이 사람이 훗날에는 나보다 높이 올라 내가 그의 지시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연공서열을 사역적 능력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교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 비단 교회만이 아니라, 자기보다 아래 기수가 조직의 최고수장이 되면 줄줄이 사직을 하고 퇴임하는 법조계를 비롯해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체면 문화이기도 하다.






저자의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내용을 설명하면서 굳이 빙빙 돌리거나 미사여구를 잔뜩 붙이는 것 없이, 핵심적인 내용을 담백하게 서술해 나가는 게 참 좋다. 무엇인가 배울 때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글쓰기 방식이다.


다만 여기 나온 요령들은 새들백 교회 같은 대형교회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작은 교회에서 여기 나온 원칙들을 얼마나 시도해 볼 수 있을까? 물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변용과 적응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고.


또 한 가지 질문은 반대로 이미 이런 문화 없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게 된 교회들의 경우 과연 문화를 바꿔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문화라는 게 초기부터 만들지 않으면,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기도 하니까.


교회에 관한 건강한 고민들과 나름의 제언들이 많이 담겨 있다. 사역자들, 중직자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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