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
부동산 사업으로 떼돈을 번 데미안(벤
킹슬리). 그러나
불치병에 걸려 이제 남은 생이 채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어느
날 그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기억을 건강한 새 육체에 이식시켜 두 번째 인생을 살게 해 주겠다는 것. 살면서
거의 모든 것을 이룬 데미안으로서는, 이제
남은 욕심은 불멸에 대한 욕망 뿐 아니겠는가. 결국
그는 시술에 참여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또 다른 데미안(회춘한
데미안은 라이언 레니놀즈)으로
신나게 살고 있을 무렵, 두통과
함께 자꾸 이상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갔던 장소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곧
숨겨졌던 거대한 규모의 음모가 전모를 드러낸다. 알고
보니 실험실에서 배양을 통해 만들었다던 새 육체는 멀쩡하게 살던 다른 사람의 육체였던 것이고, 문득문득
떠오르던 기억은 그의 새 몸의 원래 인격이 가지고 있는 것.
진실을 감추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들과, 일단
살인은 막고 보자는 주인공 사이의 추격전.

이 양반이 죽어가고 있는
주인공.
2.
감상평 。。。。。。。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걸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면 별 고민이 없겠지만, 사람
마음이란 것이 또 그런 게 아닌가보다. 중국의
수많은 황제들이 불로장생할 수 있는 약을 찾아다녔고, 서양에서도
이와 관련된 설화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대중문화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 영화로도 제작되어 왔다.
이 영화 역시 그런 꿈을 담고 있는데, 앞서
나왔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이 과정이 마냥 행복하게 그려지지만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원히
사는 게 인류 최후의 소망이라면, 막상
영원히 사는 모습이 이렇게 불행하게 묘사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아마도
이제까지 영화 속에서의 영생은 늘 상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인류지만, 아직
다행이도 그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 영화는 그런 디스토피아를 아주 제대로 정면에 내세우고 있다. 돈
많은 부자의 영생을 위해 건강하고 젊은 (하지만
가난한!) 누군가의
몸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설정은 매우 충격적이지만, 슬프게도
꽤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소재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부자들의 나라가 되어가는 건 이즈음 거의 전 세계적인 공통적인 현상이니까.

영화 속 영생이 가능한 희대의 치료법을 발명한 교수는 이 작업에 매우 거창한 이유를 덧붙인다. 세계사
속에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인류는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이
과정에서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이 예로 등장한다.
이 말만 들으면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계획이란 게 언제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던가. 필연적으로
어느 순간 온갖 종류의 실천적 이유(그렇게
조성된 연구기금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식의)를
가져다 대면서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혜택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처음부터 높았다. 심지어
영화 속 주인공도 그저 부동산개발업자였을 뿐이 아니던가. (물론
부동산개발이라는 사업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무슨 거창한 이유도 결국 삼켜버리고 자기 뜻대로 끌고 가는 걸 보면, 돈이라는
녀석의 힘이 엄청나긴 한가보다. 결국
무슨 기술이 발명되고, 발전하더라도
이 세상에 유토피아가 세워질 일은 절대로 없다는 거. 훨씬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말이다.

영화적인 면만 보면 겨우 나쁘지 않은 수준을 벗어난 정도. 이
설정을 가지고, 감독은
겨우 추격전을 만들어낼 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까가 궁금했는데, 그
궁금함이 허망해질 정도. 이건
뭐 예산 문제라기보다는 상상력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왜 주인공이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박사를 죽이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지도 확실치 않다. 마지막
장면은 어느 정도 예상까지 됐고.. 생각할
거리는 던져주었지만, 딱
거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