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 세계 최고의 과학자 11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유물론과 진화론에 근거해 인간의 가장 깊숙한 영역’(책 속에서는 영혼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의식이나 그와 비슷한 다른 용어로 지칭하기도 한다)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담은 책. 책은 인터뷰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저자인 슈테판 클라인이 직접, 혹은 전화(피터 싱어 같은 경우) 등으로 대담한 내용을 엮었다.

 

     책에는 총 열한 명의 학자들이 대담자로 나섰고, 여기에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이 있고, 철학자도 포함되어 있다.

 

 

2. 감상평 。。。。。。。

 

     일단 제목에 낚였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제목은 첫 번째 대답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분자생물학자와 진행한 그 대화는 섬모충으로 시작해 장수하는 어떤 종의 거북 이야기로 끝난다. 인간이 늙지 않는 것이 가능하냐는 스테판 클라인의 질문에, 대담자인 엘리자베스 블랙번은 원리적으로는 가능하나 우리의 세포 메커니즘이 그런 물질대사를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것은 알 수 없으며, “어쩌면 우리가 타고난 시스템이 어느 순간에 이르러 작동을 멈출지도모른다고 대답한다. 심지어 그녀의 불멸에 대한 믿음은 단지 요각류 동물을 언급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대담에 참여한 대다수가 과학 연구에 종사하고 있고,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 확인된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수준의 진술을 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전반적인 논지는 종종 이 전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인 구달은 지속적으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차이를 축소시키려고 애쓰고 있고(그 근거는 전적으로 그녀 자신의 경험과 그 해석이다), 철학자인 토마스 메칭거는 인간 영혼 존재를 애써 부정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운운하던 리처드 도킨스는 소위 초친절’, 이타적 행동을 적절하게 설명해 내는데 거의 실패하고 있고(그는 그저 슈테판 클라인의 질문들에도 쩔쩔매는 것처럼 보인다), 가난한 이들과 환경 대한 관심을 그토록 강력하게 피력하던 피터 싱어는 기꺼이 비즈니스석에 탑승하는 자신의 선택을 떳떳하게 해명하지 못한다.

 

     즉,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전제와 이론적 근거는 현실 세계를 적절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결과는 전제와 결론 사이의 충분히 일관되지 못한 논리들과, 위에서 보는 것 같은 이원론적으로 분리된 삶일 것이다. 예컨대 영혼을 부정하는 메칭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예술에서는 영혼이나 자아같은 개념이 앞으로도 쓰일것이며, 그 이유는 거기는 과학과는 다른 층들이기 때문(153)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보기에 이 문장은 이런 식으로 들린다. “아쉽게도 내 이론은 인간의 어떤 부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근본적으로 이들은 유물론이라는, 일종의 철학적 전제를 진리 영역의 한계로 설정해 두고, 그 틀에 맞는 그림들을 그려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설명들이 꽤나 자주 실제 현실을 온전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게 문제.

 

     책 속의 많은 저자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여전히 핵심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으며’, ‘앞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정도일 뿐인데도, 이미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설명하기를 즐긴다. 그 결과 계속해서 새로운 설명들이 앞서의 설명에 덧붙여져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괴상한 그림이 나온다. 이는 다시 실제와 어긋나는 측면이 늘어나고.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잘못 짠 스웨터를 아이에게 뒤집어 씌우려다보니 잘 맞지 않자 계속해서 새로운 팔과 깃을 만들어 내는 느낌이랄까.

 

     물론 책의 모든 부분에 불평을 하는 건 아니다. 제각각 다른 존재들을 정당하게 대접하려면 일화를 이야기하는 것 말로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제인 구달의 대답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나 구달의 지적과 달리 이 책의 나머지 사람들은, 개별적 인간 대신 추상적 인간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짜 인간다움은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 채, 그저 주류 세계관의 교조적 주장만 반복된다.

 

 

     문득, 어떻게 하면 인간을 별 것 아닌 존재로 더 잘 묘사할 수 있느냐가 이 시대에 인정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침팬지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묘사한 건 이제 옛날 일이고, 요즘은 저 심해의 갑각류나 거북이와 비교되거나 심지어 아무런 인격(, 물론 인격 자체를 환각이나 착각 정도로 평가절하 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도 없는 염기서열의 순서 정도로 전락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내가 왜 당신의 환각(인격)이나 염기서열에 내제된 본능에서 나온 주장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데, 이건 잘못된 질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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