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 - 부지런함이 숨긴 게으름의 역사
이옥순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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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우리 사회의 게으름에 대한 시선이 다분히 문화적으로 조장된(혹은 조직된) 것이라고 말한다.(1) 2장과 3장에서는 게으름에 대한 서양의 관점(비난)과 동양의 관점(용인적 수용)은 의도적으로 대조시키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근면을 강조하던 서양이 여유를 중시하던 동양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게으름에 대한 비난이 강력해졌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4)

 

     사실 책은 여기서 내용상 완결되어야 했는데, 저자는 굳이 5장을 덧붙인다. 뭐 넓게 보면 게으름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니까. 이 장의 주제는 현대인들의 소비주의가 결국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쉼 없는 노동을 유발시킨다는 것. 결과적으로 게으름을 비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또 하나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2. 감상평 。。。。。。。

 

     내가 매기는 평점은 10점 만점에 6점에서 시작한다. 원래는 5점 부터여야 하지만 작가나 저자, 배우와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의 노력을 감안해 1점을 더 주고 본다. 그러니까 일단 6점이라면 딱 기본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중반을 넘길 때부터 2점이나 떨어졌다.(4) 이 정도면 문제의식이 생기는 경우다. (사실 1점을 더 깎을까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결론에 담긴 통찰에 나름 일리가 있기에 참았다.)

 

     책의 문제는 결론이 아니다. 사실 결론부만 가지고 본다면 나름 괜찮은 책이다. 게으름을 바라보는 시선에 일종에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음을 밝히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흥미로운 결론을 내 놓고 앞부분을 덧댄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애써서 모은 여러 정보의 조각들이 충분히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설명했듯, 이 책의 중심축은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서양과 이에 대해 관대한 입장에 서 있는 동양 사이의 갈등이고, 이 차이를 힘의 우위로 눌러버린 서구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문제는 저자가 열심히 모아 놓은 동서양의 문헌들이 서로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 서양의 문헌에도 게으름, 혹은 쉼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꽤나 자주 보이고, 반대로 동양에서도 근면과 부지런함에 대한 찬양이 비교적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저자의 핵심 주장의 근거가 흔들린다.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동양 사람들이 어느새 서양의 관점에 종속되어버렸다는 식이다. 예컨대 조선 말 밤마다 잔치를 벌이느라 하루일과를 오후부터 시작하던 고종과 대신들에 대한 한 유학자의 비판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근대 서구의 시간개념을 내면화한 일본의 영향이 이미 조선 사회에 퍼졌다는 것도 알 수 있(135)고 결론을 짓는다. 그리고 이젠 부지런 하라는 권면마다 일제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186, 191) 이쯤 되면 좀 무리다.

 

     게다가 저자는 첫 번째 문제는 아예 제대로 다루지도 않는다. 저자 자신도 언급하고 있듯이 서양 사상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라는 날을 따로 정해둘 중도로 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42). 물론 성경에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금언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과도한 탐욕으로 인해 인간생활의 터전이 망가지고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교훈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이런 점들을 앞에 써두었으면서 동양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그러나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지나친 게으름과 심한 노동을 함께 비난합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버린다(106).

 

 

     여기에 인도 현지에서 인도사를 전공했던 저자 자신의 이력 때문인지, 인도에 대한 서양의 비난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면서, 서양에 철학과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오류도 제법 보인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부채를 면제해주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날이 아니었고(아마도 50년 마다 돌아오는 희년과 혼동한 듯. 42), 성경에 나태하거나 게으른 사람을 염소에 비유하는 장면이 아예 없다(굳이 비슷한 부분은 마태복음 25장의 비유인데, 여기서 양과 염소의 나누는 기준은 게으름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다. 50).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강하지 않던 독일이라는 표현(55)도 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독일이야말로 종교개혁의 발상지이자, 종교전쟁의 핵심지역이었고, 그 결과로 가장 일찍 개신교(루터파 교회)가 공인되었던 곳이니까.

 

 

     큰 맥락은 새겨들을만한 책이지만, 세부사항들을 기억해뒀다가 다른 데서 써먹으려고 했다가는,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을 법하다. 일에 대한 과도한 몰입이 가져오는 폐해들을 한 번쯤 조금 떨어져 관찰하게 만드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긴 하다. 다만 지나친 옥시덴탈리즘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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