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귀향 - 기독교, 이성, 낭만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적 옹호서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줄거리 。。。。。。。

 

     이야기는 한 사람의 꿈으로 시작한다. ‘는 꿈속에서 한 소년을 본다. 그의 이름은 이고 퓨리타니아라는 이름의 땅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이 세상이 지주의 소유이며, 그의 위임을 받은 집사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어느 날 부모와 함께 집사의 성을 방문한 존은, 들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인자하고 친절한 집사를 만나지만, 대화 도중 무섭게 생긴 가면을 쓴 집사는 지주에 대해 그가 얼마나 친절하고 무서운분인지를 설명한 뒤, 존이 앞으로 지켜야 할 수많은 규칙들의 목록이 적힌 카드를 준다. 만약 그 규칙들을 어긴다면, 지주가 그를 온갖 전갈과 뱀이 가득한 검은 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규칙들과 지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로워하던 존은, 어느 날 숲 속에서 무한한 달콤함을 경험하게 해 주는 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그 환상은 존의 온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았고, 존은 다시 한 번 그것을 경험하고자 지주의 규칙 따위는 내버린 채 세상의 서쪽에 있다는 섬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루이스가 쓴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작품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중세에는 단테의 신곡이 있었고, 근대에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있다면, 현대에는 단연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 있다는 제목을 붙였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잠시 이 책이야말로 천로역정과 좀 더 유사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했다. 실제로 내용의 구성과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은 이쪽이 훨씬 비슷하니까.

 

     그러나 전에 썼던 서평을 수정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주제 자체를 두고 보면 확실히 천국과 지옥의 이혼신곡이나 천로역정의 뒤를 잇는다고 보는 게 맞다. 일단 이 책 순례자의 귀향은 어린 시절 받았던 엄격한 청교도식 신앙교육을 떠나 유물론자에서 불가지론자로, 다시 유신론자로 되돌아온 저자의 신앙적 귀향을 토대로 쓰인 자전적 소설이다. 실제로 루이스는 작품 속 존처럼 당대의 매력적인 사상에 심취해 끝까지 밀어붙여 본 뒤, 그 한계를 깨닫고 다시 길을 떠난다. (물론 루이스는 이후 덧붙인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이 완전히 개인적인 경험만을 쓴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내용들 쓰려고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책이 다양한 철학과 사조들의 주장과 한계를 설명하는, 일종의 교과서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천로역정은 구원, 혹은 천국에 이르기 위한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행 중 존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은 다양한 사상들을 의인화 한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은 문학의 탈을 쓴(?) (기독교적) 철학개론서 같다는 느낌을 준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결말부다. 섬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장애물은 거대한 협곡을 통과한 존은, 의미심장하게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쪽으로의 여정을(이제까지 서쪽으로만 걸어왔었다) 시작하는데, 이 때 그의 눈에 보였던 풍경들은 얼마 전 그가 지나왔던 곳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온전한 것을 마주한 후 사람의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오래된 진리를 참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물론 그에 앞서 등장하는 이야기도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가기엔 아깝다.

 

     루이스의 작품들 중 상당히 초기에 쓰인 이 책은, 그래서 그런지 이제까지 읽었던 루이스의 작품들에 비해 세련된 맛이 좀 덜하다.(저자의 말을 보니 루이스 자신도 살짝 불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역자도 후기에 언급했듯 밀당 대신 시종일관 강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이랄까. 그 때문인지 굳이 페이지 상단에 면주(面註)를 넣지 않았어도 각 사건들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충분히 보일 정도니까. 내용의 분명한 이해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확실히 루이스 자신도 인정했듯 알레고리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

 

 

     이 책은 갈망의 이야기다. 예고 없이, 어느 순간 루이스의 인생에 찾아온 갈망에 대한 오랜 추적과 연구가 이 우화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건 단지 루이스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갈망의 근원을 찾기 위해 서쪽의 섬으로 가는 길의 어딘가에서 그냥 머무르곤 하지만.) 이후 나오는 루이스의 다양한 책들에 담겨 있는 개념들의 프로토타입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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