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거대한 지진이나 화재와 같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의 이론 이래로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런 경우 극심한 혼란과 그에 이어지는 파괴와 살육, 약탈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레베카 솔닛은 북미 대륙에서 발생한 다섯 개의 광범위한 재난 현장에 관한 기록들을 실제로 조사하면서, 이런 통념들이 사실은 편견일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오히려 저자는 그런 극심한 위기에 처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등 공식적인 ‘질서’가 없이도 자발적인 질서를 수립해왔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기존의 공식적인 힘들을 소유한 엘리트들이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

 

     이런 현상 연구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일종의 아나키즘적인 이상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살짝 내다본다.

 

 

2. 감상평 。。。。。。。   

 

     꽤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재난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일반 시민들이라는 이미지는 기존의 언론이나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들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으니까.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이런 이미지들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든 걸까?

 

     책 속에 언뜻 그 대답과 이유가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보다 재산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현재의 ‘질서’ 안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에 그런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그냥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힌 멍청이들이 돈을 위해, 권력을 위해, 또는 인습적으로 생각 없이 이런 이미지들을 조장하고 거짓을 더해 확산시키고 있었다.

 

 

     일반 대중의 전변에 깔린 선의(善意)를 믿어보자는 저자의 요청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자발적인 선의에 의해 작동하는 세계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 재난으로 인해 드러난 사람들의 선의는 일정 기간 동안만 폭발적으로 나타났을 뿐이고, 비상시에서 드러났던 선의는 평상시로 돌아오면서 점차 줄어들다가 결국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집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평가의 기준이 달라지는 등의 발전적인 성숙도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만이 아니라 외상 후 성숙이라는 현상도 있다는 설명은 특히나 관심을 끄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역시 같은 재난 상황 아래서 그런 시민들을 통제하고 결과적으로 괴롭히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재난이 사람들의 선한 본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책 자체가 결론적으로 말하려는 게 무엇일까 살짝 헷갈리는 부분도 있다. 한참 아나키즘의 당위성이나 우수성을 주장하는 서술들이 보이다가 급히 마무리되기도 하고,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려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저 사람들의 선의에만 의지할 뿐 딱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이라는 로드맵이 보이지는 않는다. 뭐 아나키스트들에겐 그런 로드맵조차 타파해야 할 무엇으로 보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재난에 관한 뉴스를 좀 다르게 보도록 만들어 주는 책.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과 같이 읽으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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