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일본의 S현에서 한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오자키 후미코는 어느 날 권고퇴직 요구를 받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 정부는(책의 배경은 1950년대) 곧 극심한 재정적 압박을 받게 되어 세금을 더 걷든지 지출을 줄이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자민당 정부는 표를 의식해 세금을 더 걷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저항이 적은 교육예산을 줄임으로써 문제를 피해가려는 꼼수를 쓰게 된다. 오자키 선생이 퇴직 권고를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방침에 그녀는 교원노조의 도움을 받아 권고를 거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동안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조합의 존재 이유와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전후 미국 군정이 실시한 신교육은 이전의 봉건적 체제를 유지, 강화시키기 위한 일본 전통 교육과는 달리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고,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해 가르치려 했지만, 이는 보수적 지지세력 위에 서 있는 자민당 정권에 위기감을 주었다. 때문에 정권은 그런 민주교육을 실시하는 교사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일교조(일본교원노동조합)과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늘어나는 데도 교사들의 수를 줄이고, 정기적인 승급도, 승진도, 호봉의 인상도 거부한 것. 결국 교육현장의 파행을 막기 위해 일교조와 오자키 선생은 승산이 적은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 단지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교사들의 투쟁 이야기만 실려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어디까지나 오자키는 교사였고, 쉰 명이 넘는 아이들을 담임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녀의 투쟁은 조합과 함께 하는 대외적인 싸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한 교실 안에서의 투쟁도 있었다. 작가는 그녀가 하고 있는 이 복잡하고 어려운 두 가지 투쟁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면서 참 교육을 막는 벽이 무엇인지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2. 감상평 。。。。。。。
그저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던 오자키를 막아선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장 눈앞의 어려움은 예산의 부족이었고, 이는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패전국이 된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이겼다면 제대로 된 교육은 더더욱 요원해졌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다른 민족들의 피와 땀을 짜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분별없는 군국주의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에 대해 어떤 비판도 없이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한 일본국민들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전쟁이 끝났지만 이 두 가지 근원적인 문제 요소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군국주의자들은 자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옷만 바꿔 입은 채 여전히 일본 정권을 틀어쥐고 있었고, (시민이 아닌) 신민 교육을 받아 천황에게 충성하던 이들은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다른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그런 교육을 실시하는 교사들을 향해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참 교육을 막는 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인간이라는 이름의 벽’이었다.
결국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반항하지 않는 국민, 비판력을 상실한 서민들이다. 비판력을 상실한 시민들은 공포에 질려 있는 양떼처럼 손쉽게 이리저리 원하는 대로 몰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개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마련이지만, 문제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어려워지면 그냥 이전에 하던 대로 하는 데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쉽게 보수적인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때문에 그들은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는 교육을 경계한다. 책 속에 이런 사정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미군이 점령 기간 동안 차례로 실시한 일본 사회의 민주화 방책을 자민당 정부는 아주 증오했다. 그래서 조금씩, 착실하게 일본 사회를 전쟁 전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벽이 나타났다. 그 벽은 초등학생 1천227만 명과 중학생 588만 명이었다. 이 어린 학생들이 날마다 교실에 앉아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 자민당의 보수주의자들은 그 같은 현실을 확인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보수당 정부는 곧바로 일교조에 전쟁을 선포한다. 이 싸움은 운명이었다.
1950년대에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 서글프다. 벌써부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교육감과 교육위원의 직선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고, 국가권력은 온갖 꼬투리를 잡아 교조를 탄압하기에 바쁘고, 이 나라의 정치공작에서 빠질 수 없는 빨갱이 타령은 진작 등장했다. 일본의 자민당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 땅의 보수정당은 영구집권을 꿈꾸며 일본에서 60년 전에 써먹었던 방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한 집단의 진로와 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관한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할 때, 교육문제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는 정치인들이 정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어디 교육문제 뿐인가. 오늘 시장에 나가 반찬거리고 사 온 배추 한 통도 사실 정책적 지원에 따라 생산량이 정해지고 가격이 형성된다.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교육도 교실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정치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에게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억압이라고 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도 보수적 정치 참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진보적 정치세력에 참여하는 것은 눈에 불을 켜고 막으려고 하는 행패는 뭐라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없는데도 용케 허용하는 걸 보면 답답할 뿐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좋은 작가다. 최근 들어 여러 권으로 구성된 책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은데, 세 권을 합쳐서 1,3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여느 책과는 달리 전혀 지루한 감이 없이 단숨에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좋은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