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환자들은 담당 의사의 뻔뻔한 태도에 감히 불평조차 하지 못한다.

환자들은 불평을 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환자들은 정말 요구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지도,

정말 궁금한 것을 물어보지도 못한다.

 

 

 

1. 요약 。。。。。。。                    

 

     의학교육을 받고 실제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기도 했던 저자가, 병원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한 일들을 고발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의사들 자신이 너무나 ‘직업적으로’ 환자를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환자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어느 정도 애로사항이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되지만, 환자를 인간 대신 대상으로 바라보는 무신경함은 환자들을 육체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막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 지적은 오늘날의 ‘의료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관련되어 있다. 병원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회사로 전락해 더 많은 돈을 얻어낼 수 있는 환자를 위해 그렇지 못한 환자를 차별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또, 의사들은 더 많은 성공과 출세를 위해 환자를 더 잘 진료하고 치료하는 것보다는, (임상과 유리된) 더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영향력을 늘리기 위한 일들에 매진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만큼 환자를 더 잘 알고 치료할 수 있는지 와는 관계없이) 그런 이들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2. 감상평 。。。。。。。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스럽고 외경스러운 마음으로 보아 왔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후광을 빼앗아 버렸다.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그들이 고용하는 임금 노동자로 바꿔 버렸던 것이다.’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노동자 정부를 구성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던 그의 해답에는 동의하지 않지만(결국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당의 독재로 나아가는 건 시간문제), 이 문장은 아무튼 그가 살던 시대를 날카롭게 집어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보여준다. 결국 자본주의란 것이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시켜 볼 수밖에 없고, 그런 사회에서 직업이란 돈벌이 그 이상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이 책은 세계에서 최초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던 독일 의료계가 오늘날 자본주의 원리 앞에 어떻게 무너져버렸는지를 실감나게 보고하고 있다. 돈은 의사로부터 ‘후광’을 빼앗았는데, 정확히 표현하면 의사들 스스로가 후광 대신 돈을 택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의사들뿐이랴.

 

 

     공공보험과 사보험이 경쟁하는 독일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런 면도 있다. 당연히 병원과 의사들로서는 좀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보험 환자들을 ‘유치’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지금 우리나라 정부가 애써 눈에 띄지 않게 추진하는 민간의료보험제도나 영리의료법인 설립은 뻔히 답이 보이는 멍청한 짓이다.(물론 그 멍청한 짓으로 이득을 보는 작자들이 있으니 애써 욕먹으면서도 추진하는 것이겠지만)

 

     비단 구조의 문제만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그 구조 속에서도 또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구조의 문제와 더불어 개개인의 사명감 회복, 혹은 의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문제가 여기에 이르면 딱히 즉효약이 없다. 무슨 수로 그들에게 돈이 덜 벌리는 방식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당장에 법으로 규제를 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이상 사람들은 다시 빠져나갈 길을 찾기 마련이니까.

 

     다시 마르크스의 언명으로 돌아가 보면 문제는 ‘후광’이 사라진데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인간과 세상을 신비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되면서,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것이 하찮아지면서 당장의 즐거움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결국 마르크스가 후대에 끼친 가장 큰 영향력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유물론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전에도 유물론은 존재했지만, 그가 이 철학 위에 자신의 정치 사회 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유물론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자본주의 역시 그 뒤로는 그 철학을 받아들여 이제 최선봉을 달리고 있으니까.(그는 현상은 잘 관찰했지만 그 원인은 잘못 짚었다) 모든 것이 물질로 확인된 순간, 숭고함이라든지, 고매함이라든지, 외경심과 같은 단어들은 곧장 창고에 처박히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물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가치가 특정한 종류의 금속과 인쇄된 종이보다 딱히 더 나을 것도 없다는 이 끔찍한 사상을 버리지 않는 이상, 아마 변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노력들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이런 노력들은 일정부분 자정능력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은밀하게 행해지던 일들을 수면 위로 부각시켜서 사회 전체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의사들이 읽고 좀 반성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3년 여 동안 지속되었던 병원생활은 이 분야의 비전공자인 나까지도 ‘의료산업’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게 만들기도 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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