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 Breathl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세상 무서운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용역 깡패 상훈. 15년 만에 출소한 아버지를 보며 그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행패를 부리다가 하나뿐인 여동생을 칼로 찔러 죽게 만들었고, 그런 여동생을 병원으로 옮기려다 어머니마저 차에 치여 돌아가신 과거가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훈과 만나는 연희는 겉보기에는 여느 여고생과 다름없지만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는 치매가 들어 날마다 행패를 부린다.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한 남동생은 날마다 삐뚤어져가기만 한다.

     상훈은 어느 날 길에서 시비가 붙자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달려드는 여고생 연희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연희와의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차 나이와 경험을 초월한 우정을 느끼게 된다. 조금씩 삶을 정돈하기 시작하는 상훈. 하지만 삶의 비극은 그가 편안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2. 감상평 。。。。。。。

 

     시작할 때부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상훈. 그는 시종일관 분노하고 있다. 그는 그의 그런 분노를 돈을 빌려간 사람들에게 폭발시키고, 분노를 터뜨릴수록 그는 더욱 더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는 생각하고 주저하는 대신 분노하고 폭력을 가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분노의 원인은 조금씩 밝혀지지만, 그래서 감독은 그것이 그의 폭력성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영화 속의 그 설명은 그의 폭력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똑같은 불행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감독의 지나친 환경 결정론적 설명은 (감독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주인공의 행동에 어떤 면죄부도 부여할 수 없다.

     영화는 과도한 폭력의 노출을 감행하고 있고,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내가 욕을 듣고 맞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절제되지 않은 폭력의 단순한 배출은 영화 속에서 어떤 미적 가치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보는 내내 영혼에 생채기만을 내는 듯했다. 어떤 이는 주인공이 내뱉는 욕설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를 발견하는 것처럼 감동을 받았다는데,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포장된 감상인 것 같다.
 

 

     영화 속 깨어진 가정은 깨어진 인격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진 인격을 회복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가족(상훈과 연희, 그리고 상훈의 조카 형인이 이루는)이었다. 사회의 최소단위는 역시나 가족이었고, 건강한 가족은 건강한 사회분위기를 이루어내는 시발점이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과 과도한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가정 구성원의 분열과 고립을 초래하고 있지 않은가.

     몇 해 전 대선 때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구호를 가지고 선거에 나왔지만, 결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에 밀려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물론 단순화시켜 말할 수는 없겠지만, 경제가 가정을 누른 시대, 이것이 현 시대의 중요한 단면이 아닐까. 이런 경향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가정의 회복이라는 목표는 요원해지기만 할 것이다. 온갖 감성에 호소하는 아이 낳기 캠페인을 벌여도 물질에 대한 집단적 환각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주제를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면 ‘그래도 가정이다’ 정도? 하지만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지나치게 날카로운 도구들은 관객의 손에 상처를 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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