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김호동 지음 / 까치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대진국으로 대표되는 서방세계는 고대 중국인들에게

각종 진기한 보화가 넘치고,

군주와 백성이 모두 법과 질서를 존중하며 평안무강을 누리는

낙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사제왕 요한이 사는 동방세계를 동경했던 중세 유럽인의 심상과 짝을 이루는

이와 같은 관념의 뿌리는 매우 깊다.

 

 

 감상평 。。。。。。。 

 

     제목을 보면 꼭 그리스 정교를 다룬 책 같지만, 그리스 정교가 아니라 네스토리우스교를 다룬 책이다. 일반적으로 이단으로 알려져 있는 네스토리우스교. 물론 초대교회사 강의를 통해, 네스토리우스가 파문을 당한 이유가 키릴과의 정치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란 것을 배웠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감은 상당히 준 상태였지만, 이 책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네스토리우스교 역시 기독교라고 전제한다.

 

     책의 시작은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였다. 저자는 중세에 퍼져있던 사제왕 요한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비교하고, 그것이 실제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조화가 될 수 있는지를 맞춰보려고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사제왕 요한에 관한 이야기는 통일적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서로 다른 인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교적 초기의 요한은 거란족인 야율대석이라는 인물이라는 주장이 흥미로웠다.) 그 후 나온 다윗 왕 이야기는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주장하면서 저자의 초점은 네스토리우스교도들로 옮겨간다.

     늦어도 5C 말에는 네스토리우스교가 중앙아시아에 진출했다는 것의 저자의 설명이다. 그들은 서방의 기독교도들이 제국으로부터 받았던 박해에 결코 뒤지지 않는 박해를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받았다. 한편 그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동방으로 전도를 해 나갔고, 결국 원이 지배하는 중국에까지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모습은 상당히 중국화되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본래의 모습이 변질되었다.

 

     네스토리우스교가 동방에 영향력을 끼친 것은 1000년이 넘는 기간이었는데, 그들이 갑자기 멸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고 있지만, 저자의 결론은 그들이 대중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선교의 용이성을 추구하기 위해 지배층과 가까워진 것이 지나쳐서 대중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왕조가 교체되면서 그들의 입지는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오늘날 그들의 모습(신파와 구파로 갈라져서, 신파는 미국으로 이주해 ‘동방 아시리아 교회’를 세웠고, 구파는 바그다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은, 찬란했던 네스토리우스교의 선교활동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신기했던 것은 서양식 이름의 한자 표기였다. 요한, 누가, 마가, 마태 등의 이름은 한자로 바뀌면서 누가는 노가(蘆伽)로, 마태는 명태(明泰)로 변한다. 모세는 그대로 음을 따 모세(牟世)라고 불린다. 심지어 성경까지도 그 뜻을 따서 한자로 바꿨는데, 「시편」은 「다혜성왕경」으로, 복음서는 「아은구리용경」으로, 사도행전은 「사리해경」, 사도바울의 서한은 「보로법왕경」으로 변한다. 카톨릭 교회의 미사찬송인 「대영광송」은 중국으로 건너가면 「삼위몽도찬」으로 그 이름이 바뀐다. 네스토리우스교 사제들은 모두 ‘승려’라고 불리며, 높은 직위를 맡은 사제는 ‘고승’으로 불린다. 교회의 이름이 모두 ~사(寺)로 끝나 절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생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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