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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돌리드 논쟁
징 클로드 카이에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샘터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몇 세기 동안 유례가 없었던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도로 조직된 두 제국이 서로에 대한 풍문조차
듣지 못해 서로 생판 모르는 채로 만난 것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무수한 사람들이 지구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에 양쪽 모두 경악했다.
1. 줄거리 。。。。。。。
콜럼부스 이래로 유럽인들의 남아메리카 이주가 시작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하고 있었던 에스파냐의 칼 5세는 즉각 교황으로부터 새로운 대륙에 대한 에스파냐의 권리를 인정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금과 특산품으로 돈을 벌기 위해 식민지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정상적인 우월의식을 가지고 건너간 에스파냐인들은 원주민들을 그 땅의 원래 주민이었던 인디오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하거나 강탈하고, 노예화했다. 한편에서는 이런 일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현재의 상황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벌어진 논쟁. 시대가 시대인지라 논쟁은 신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교황청은 바야돌리드에서 인디오들이 과연 유럽인과 같은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가가 주제였다. 인디오들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라스카사스 수사와 그에 반대하는 철학자 세풀베다 교수는 추기경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교황청의 공식입장으로 채택하도록 하기 위해 토론을 시작한다.
5일간 이어지는 토론의 결론은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책을 손에 드시길..
2. 감상평 。。。。。。。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무엇을 갖추고 있기에 인간은 독특한가. 감정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인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구를 만들거나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인지, ‘인간다움’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느냐가 겉으로 드러난 토론의 주제이다.
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중요한 문제는 약간 다른 데 있다. 어떤 존재가 인간인지를 구분하는 판정을 ‘누가’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세풀베다 교수는 자신들을 포함한 유럽인들이 - 그러니까 인간이 - 그 판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라스카사스 수사는 그 기준은 다른 그 무엇 - 아마도 인간의 의식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모든 걸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 측정하고, 계산하고, 해답을 제시하려는 인간들의 시도는 종종 매우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토론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구조지만, 작가는 적당한 상상력을 발휘해 작품이 늘어지는 것을 막고 있다. 되레 긴박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비록 문헌들을 참고했다고는 하나, 각각의 인물들 편에 서서 그들의 세계관에 맞는 논리를 하나의 변론으로 재구성하는 저자의 작업은 매우 훌륭하다.
흥미도 있으면서 생각할 거리까지 던져주는 괜찮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