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방법.

요즘따라 내가 쓰는 글의 제목이 길어진다.

생각이 많아지는 건지,

글의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줄어드는 건지..

아무튼, 이번 글의 제목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방법'이다.




그동안 내가 몇 가지 책들을 통해

역사상 군주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지배해왔는가에 대해 몇 가지 지침(?)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얻은 자료들을 토대로 간단히 정리를 해 보려고 한다.





우선,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혹은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분열시켜야 한다.


민중, 대중이라는 사람들은 일단 모이기 시작하면

사회의 불안을 조장하게 된다.

대중의 힘이란 모이는데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사상 많은 지도자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신민들을 분열시키고자 했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이 '피지배자들을 다르게 대접하기'였다.

만약 A라는 사람이 100명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그 중 10명은 나머지 사람보다 더 높은자리에 올려두어야 한다.

또 그 중 1명 정도는 그 10명 보다 높은 자리를 주는 것도 괜찮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하위 90명의 사람들도

경우에 따라서 상위 10명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상위의 9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이

최상위 1명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능성만 존재하면 된다.

그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의 여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어차피 그 100명 모두 지배를 받는 위치에 있지만,

그런식으로 지배당하는 사람들 사이에

계층적 차이를 조장해 두는 것은 안전핀 구실을 한다.




우선, 피지배층에서 지배자에 대한 반감이 고조될 때,

한결같이 단합해서 지배자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이 낮아진다.

아무래도 가진 것이 더 많은 중간지배층은

최하위의 계층보다는 체제에 덜 반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칫 자신이 가진 것 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도 더 높은 계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그들로 하여금 하위계층의 불온한 움직임을

충직하게 보고하려는 마음을 품게 만들 수도 있다.




로마가 바로 그러했다.

역사상 많은 고대국가들이 노예제를 유지했지만,

로마만큼 노예반란이 적은 나라도 없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 이유를 위의 두 가지로 설명한다.

노예라고 하더라도 몇 가지 계층이 있어서

중간, 혹은 상위의 노예들은

최하위 노예들의 불만에 동조하지 않는 경우가 흔했고,

경우에 따라 자유민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또 공직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노예반란이 적었다는 설명이다.

사실 그런 가능성이란

채 한줌도 안되는 소수에게만 열려있었긴 하지만 말이다.




피지배자들을 분열시키는 두 번째 방법은,

피지배층 서로간의 신뢰를 깨뜨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서로 고발을 하도록 만드는 것' 보다 좋은 것은 없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쩌면 나의 말과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퍼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더이상 그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고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게 된다.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중지되면,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은 더해진다.




신뢰라는 것은 도미노 게임과 비슷해서,

한 번 깨지고 나면


연달아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신뢰를 하지 못하게 된다.

서로 고발을 하는 것은 이 신뢰 깨뜨리기라는 도미노 게임의

첫 번째 블럭을 넘어뜨리는 것과 같다.

지배자로서는, 고발자에게 주는 몇 푼 안되는 돈이나 지위 정도는,

자신의 지위를 위협당하는 위기상태에 처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고발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고대 중국의 시황제는 이런 방법을 잘 이용했던 사람이었다.

엄격한 법가의 사상을 신봉했던 그는,

백성들이 서로 고발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에 대한 위협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막았다.




피지배층을 분열시키는 세 번째 방법은 '여론조작'이다.

이 것은 피지배층의 판단에 혼란을 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지배를 용이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고래로부터 가장 자주 사용되는 방법은

'가상의 강대한 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대부분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고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는데,

바로 이런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외부의 적대세력만큼 내부를 단결시키는 것은 없다.




평소에는 외국의 유명메이커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젊은이들이,

단지 자국보다 실력이 좋은 축구팀과

자국의 팀이 경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값싼 티셔츠 한 장을 입고

거리에 뛰어나오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하물며 자신이 사는 국가에 외국이 침략을 해서

자신의 삶에 큰 위기가 닥칠 때는 어떻겠는가.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국민들에게 외부의 막강한 적이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갖도록 조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강대한 제국 페르시아가 침략을 해 온다는 소식을 듣자

대동단결하여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각 폴리스들이 평소에 보여주었던

반목과 질시, 적대감을 생각한다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외부의 강대한 적은 이렇게 내부의 불만세력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외부의 위협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내부의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백안시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일단 살아남는 것이

모두의 지상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이런 점을 잘 이용해 내부의 불만을 무마하곤 했다.




피지배자들을 분열시키는 네 번째 방법은 

통치자의 이익이 피지배자들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선전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국민을 위하는 일이며,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홍보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



 
광고 하나쯤이야 무슨 큰 효과가 있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이란 사실 그런 부분에 매우 약하다.

처음에는 무심코 듣고 보는 광고라고 하더라도,

계속 듣다보면 결국 광고가 하는 이야기를 믿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통치자는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더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피지배자들을 위한 일이라고 해야한다.

과거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나,

김일성 김정일 식의 공산주의는

모두 적어도 겉으로는 자민족,

인민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홍보해왔다.

뿐만 아니다.

현대의 많은 국가들에도 정부의 일을 홍보하는 기구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군에서도 이를 이용한다.




물론 소수의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반항하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또 각각 방법이 있다.

바로 다음에 살펴볼 것이

통치에 반기를 드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다.




가장 고전적인 수법으로는

통치자의 통치행위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에 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것
이다.

고래로부터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방법이다.

어느 나라나 자국과 전쟁을 치루는 상대국은 '악'으로 규정한다.

훈족을 비롯한 여러 유목민족의 침입으로 곤경에 빠진

유럽인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유목민족의 모습을 그려보라.

생고기를 먹으며, 말과 몸이 하나로 붙어있고,

닥치는대로 죽이고 불태우는 것밖에 모르는 야만인의 모습이다.

과연 그러한가.




이런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해방 후 한창 반공교육이 이루어졌을 때

북한 사람들을 그리라고 하면

온통 빨간색에 머리에는 뿔이 난 괴물을 그렸다는 일화를

누구나 알 것이다.




통치자는 자신의 적대자들을 이런식으로 공격해왔다.

특히 도덕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적대자의 도덕적 결함을 밝히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연관되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바로 거짓 증인과 증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상대방에 관한 악의적인 소문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짓 증거가 필수적이다.

거짓증거를 만들었을 경우에는 일단 되도록 크게 퍼뜨려야 한다.

나중에 그 증거가 거짓으로 드러나더라도

그다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국민들이란 그런 것들은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깜짝홍보성 시혜를 내려준다면 더욱 쉽게 무마를 시킬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상처를 입은 상대방의 세력은 훨씬 약해지고 만다.




재미있는 것은,

거짓말의 크기가 크면 클 수록


그것이 들통날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큰 거짓말을 해야한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영웅으로 대접받았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거짓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중적 기준이 필수이다.

상대의 잘못은 크게 부풀리고,

자신의 잘못은 덮어버리는 것이다.

상대의 잘못은 뼛 속 깊이 스며든 악 때문이고,

자신의 잘못은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의 실수라고 강조하라.

국민들은 결국 큰 목소리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여론조작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통치자가 가장 멀리해야할 사람들은

'분배'를 강조하는 사람들이다.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통치자의 권위까지도 나눌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는 통치자의 권위도

결국 백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력을 그 주인인 백성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의에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통치자에게 이것보다 큰 위협은 없다.

때문에 통치자를 비롯한 기득권자들은

정의, 특히 분배의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위험인물로 인식한다.

그리고 내가 위에서 서술한 많은 방법을 사용해

이런 사람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이런 분배론자들은 국가나 공동체의 기틀을 흔드는

이적행위자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방법이 크게 힘을 얻어왔으며,

실제로 자주 사용되곤 했다.

조광조가 그러했고, 율곡이 그러했다.

근대사에 들어서서 얼마나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반민족행위자라는 오명을 쓰고 죽어갔는가.




때문에 통치자나 기득권자들은

'정의'라는 개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통치에 별로 큰 이익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통치자는 이런 사람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많은 방법을 사용해왔다.

특별히, '천박하고 근시안적인 지식인들'

주위에 두는 것은 유효한 효과를 나타낸다.

어느 국가이고, 체제에 무조건적인 맹종을 보이는

값싼 지식인들은 널려있기 마련이다.

통치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적당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값싼 지식인들의 장기는,

반대를 위한 반대, 무조건적인 반대, 우기기 등이다.

이들이 말하는 궤변을 듣고 있노라면 식자들은 한숨만 나오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이들의 궤변을 진리로 듣는 경우가 많다.




이상의 생각들은

내가 그동안 읽어온 몇 권 안되는 책을 통해 얻은 내용들이다.

과연 그럴듯 하지 않은가?

인류가 남긴 수많은 역사서들의 극히 일부만 살펴보더라도,

내가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했던 내용의 실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종 고대의 정치학과 관련된 책들도

결국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국민들을 지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화는 비단 정치, 군주와 관련된 책 뿐만 아니라

문화나 정신적인 영역에도 비슷하게 적용이 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와 현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심지어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한 자료 중에는

수 천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쿠르드족의 신화와 관련된 책에서 나온 것도 있다.



 



규모가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고,

보다 노골적인지, 덜 노골적인지의 다름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시도는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아주 먼 곳에서 바로 우리 주변에서도

그 실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이상하게도,

이런 식의 남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통제하고, 길들이는 방법을 다룬 책은 많지만,

남을 섬기고, 봉사하고, 남을 위해 희생을하는 방법을 다룬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역시 인간이란,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자신의 편안함을 누리는데에는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남을 섬기는데는 그다지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증거가 아닐까.




괜히 씁쓸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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