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통해 그의 회중이 어떤 모습인지가 그려진다. 작지만 견실한, 세상의 고함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런 공동체가 아닐까. 아니 적어도 그런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물론 2천 년 전 골로새 교회 공동체와 오늘 대한민국의 교회의 상황은 다르다. 소수파로 핍박을 받고 있던 그 시절과, 이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수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는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치면 30%대다)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면도 있다. 정치와 일체가 된 일부 교회의 모습은, 2천 년 전 권력을 지탱하는 도구로서 작동했던 우상숭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약의 모든 책들이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골로새서는 좀 더 이 주제에 집중하는 편지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골로새서 속 바울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