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사의 서막 -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1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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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다룬 10권짜리 대작의 시작이다. 책은 학자 특유의 조금은 느릿한(혹은 학문적인 예비적 고찰) 템포로 시작된다. 뭐 이 정도 책을 계획한다면,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도 책 한 권 정도는 써야 할 것 같긴 하지만.


1권에서 다루는 건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 이른바 앙시엥레짐(구체제)의 모습이다. 고대 말 프랑크족의 침입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역사는, 샤를마뉴와 그 후계자들 중 한 명을 따라 이어진다. 초기에는 그리 왕권이 강하지 않았지만, 여러 명의 왕들이 노력한 결과 서서히 왕령을 넓혀가고, 권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책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의 구체제에 관해 차근차근 분석한다.


왕실과 왕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2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흔히 삼부회라고 불리는 전국신분회 소집까지의 사건들을 설명한다. 잘 아는 것처럼 그 시기 프랑스는 소수의 성직자와 귀족들이 절대 다수의 평민들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평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경제문제(밀가루 파동)까지 더해지면서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타오르게 된다. 역시 먹고 사는 문제는 큰일을 부른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되곤 한다. 이미 지난 세기 급속한 성장으로 선진국이 된 서구를 중심으로 극심한 성장률 저하가 일어나고 있고(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그 결과 혁명까지는 아니라도 이전 시대라면 결코 선출되지 않을 것 같은 충격적인 지도자들이 여기저기 뽑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트럼프다.


날마다 최악을 갱신하고 있는 이 새로운 지도자는 강력한 포퓰리즘 구호로 집권을 했지만, 정작 당선 후에는 지지자들 보다 자기 계좌를 채우는 데 열성적이다.(프랑스혁명 때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벌써 수 조 원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는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이 역시 혁명 때도 일어났던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혁명의 전조를 보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포퓰리즘 혁명.(좀 더 익숙한 용어로는 극우의 난동)





앙시엥레짐에서 단지 왕의 무능력만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재정지출을 건전화해야 한다는 신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등 국가 운영에 나름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기도 했다.(물론 그 정책이 실패가 결과적으로 밀가루 파동을 일으켰지만) 그리고 여기서 저자는 고등법원의 법관들에 관한 언급을 한참 이어간다.


이들은 이른바 법복귀족이라고도 불리는 문신들로, 왕에 대한 다양한 봉사의 대가로 귀족 신분을 얻게 된 이들이다.(판사의 역할을 함께 맡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오늘날과 달리 법관의 지위는 상속이 가능했고, 그 덕분에 귀족 신분을 대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왕의 충실한 신하이기만 한 것 같지만, 또 이들은 다양한 수단으로(예를 들면 왕의 결정이 법에 어긋난다는 내용을 담은 상소 등으로) 왕을 압박하고 견제할 수 있었다.(물론 이게 늘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비유하자면 조선 시대 중신들과 국왕의 관계와 비슷했는데, 분명 신하들은 왕이 임명하지만, 왕이라고 해서 신하들의 의견을 그냥 다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로서 왕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그 아래서 왕의 실정에 저항하지 않고 특권만 누려온 귀족들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것.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장관인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느냐는 한심한 이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이유다. 임면권자라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면, 단두대로 향할 수밖에.


시간이 나는 대로 차근차근 한 권씩 손에 들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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