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오늘날 교회가 저차원적 방식으로만 판단하는 것 같다고 강하게 의심을 하고 있다. 사랑보다는 규칙을, 하나님의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더 본다는 것. 그런데 저자가 여기에서 초반에 가지고 나오는 주제는 ‘대속’이다. 저자는 이 신학적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해설을 상당히 불편하게 여기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무시무시한 응징자, 난폭한 폭군으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저자가 대신 가지고 나오는 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라는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성경의 율법을 비롯한 다양한 명령들에도 해석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문제는 그냥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성경의 ‘강한 메시지들’이다. 그리고 속죄에서 징계의 개념을 부정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과격한’ 방식이 왜 필요했는가 하는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름에도 별다른 대답을 하고 있지 않기도 하고.
또,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저차원적 기준을 가진 이들과 고차원적 기준을 가진 이들로 지나치게 선명하게 나누는 모습은, 자칫 영적 엘리트주의로 빠질 위험도 있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기독교를 윤리적 종교로 바꾸려는 느낌도 받는다.
저자는 극구 “죄”라는 문제를 “질병”이나 “장애” 정도로 치환하려고 하는 듯하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 그런 면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죄를 그렇게 보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이해일까? 저자가 애써 인용하지 않고 무시하는 상당한 분량에서 죄는 죽음, 사망, 심지어 사형선고와도 연결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대체로 저차원적 기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치부하지만, 그건 좋은 응답 방식은 아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