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 로마 세계의 그리스도교화에 관하여 비아 제안들 시리즈
피터 브라운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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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화된 4세기와 5세기 제국 내 기독교의 위치와 영향력에 관한 짧은 세 개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분야의 걸출한 학자이다 보니, 그 간략한 글들에도 뛰어난 통찰들이 잔뜩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통찰은 이 시기 기독교에 관한 대중적 인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는 게 흥미롭다.



1부에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갑작스러운 개종으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한다. 우리는 황제가 그렇게 기독교인이 되면서, 제국 역시 단번에(최소한 매우 빠른 시기에) 기독교화 되었다고 추정한다. 황제가 그렇게 되었다는데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최소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다면 서둘러 기독교로 갈아타는 게 좋지 않겠는가.


저자는 4-5세기의 다양한 ‘보통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서 이런 통설이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심을 던져준다. 4세기 브리타니아(잉글랜드)에 살던 한 사람이 자신의 돈을 도둑맞은 후, 한 여신과 관련된 우물에 가서 저주를 새긴 판을 세워두었다. 그 판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는데, 자신의 돈을 훔친 사람이 ‘이교도든 그리스도인이든” 저주를 받게 해 달라는 문구를 삽입한다. 그는 최소한 그 여신이 그리스도인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저주를 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앙이란 (신앙과 거리가 먼) 학자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손바닥 뒤집듯 같단히 바꿀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위에서 누군가 강요를 한다고 해도, 인간의 심층까지 바뀌는 일은 쉽지 않다. 그건 하나의 세계관이고, 우주를 이해하는 틀이기도 하다. 남아있는 좀 더 많은 (그리고 일반적인) 자료들을 취합하면, 이 시기는 기독교적인 것들과 이교적인 것들이 중첩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2장에서 다루는 문제는 관용이다. 많은 수의 학자들과 작가들이 기독교는 배타적이었지만, 고대 다신교는 관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문을 반복해서 외우고 있다. 그러나 고대 사회는 관용적이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에서 시민은 개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공동체의 법과 관습을 준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시오노 나나미 같은 작가들이 주구장창 물고 빠는 로마의 관용은 실은 그저 ‘적당한 무관심에 입각한 통치’였을 뿐이다.(64)


후기 로마 제국 시기에도 이런 ‘적당한 무관심’이라는 통치 기조는 계속 이어졌다. 비록 여러 문헌들에 다른 종교와 신앙을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어쩌면 그 빈도야 말로, 이런 탄압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저자는 여기에 실제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행정력이 떨어졌던 당시 제국의 통치는 지역민들, 특히 지역의 상류층들의 광범위한 협조가 필요했는데, 그건 강압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79) 대다수 지역에서 제국의 행정은 세금을 거두는 데 집중되어 있었지, 종교문제를 강요하는데 쓸 여유가 없었다는 것.(82)


3장은 ‘성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성자’는 가톨릭을 비롯한 몇몇 기독교 교파에서 말하는 ‘성인’과는 다른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지역의 유명한 그리스도인들, 대개는 수도사들이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경건한 농부가 그 역할을 맡을 수도 있었다. 저자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지금 여기에 계시는 분으로 실감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한다.(109)


이런 인물들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여전히 기독교가 제국의 국교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일반인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고 보는 게 맞다. 다만 그런 ‘성자들’의 신학적 견해는 전문가들(신학자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134)는 걸 보면, 이들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요약하면 책의 내용은 이렇다. 4~5세기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의 우위는 아직 결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황제를 비롯한 지배층들은 강압적으로 기독교를 믿도록 하지 않았고(아니, 그럴 능력이 충분하지 못했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저술가들과(주로 문헌 작성을 통해) 비공식적인 성자들(주로 일반인들과의 접촉과 감화를 통해)이 나서야만 했다. 그럼에도 곳곳에 여전히 이교적 영향력은 남아있었고, 전체적으로 보면 기독교와 이교가 중첩되어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


이는 기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독단적이고, 배타적이어서 박해를 통해 강제로 이교도들을 개종시켰다는)이 (비록 그게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해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애초에 관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대 세계에는 희미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갖지 않았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태도이다.


또 한 편으로 기독교인들이 영향력을 확장하는 방식은, 단순히 황제가 명령을 내리는 식이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물론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수많은 (이름이 알려지거나 그렇지 못한) 이들의 오랜 “설득”과 감화가 필요했다. 따지고 보면 이건 오늘날도 마찬가지고.


분량도 많지 않으면서도 지적으로 흥미로운 자극을 주었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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