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 다원주의 사회와 시민교양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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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대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고 거의 전 세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난투극이다. 어쩌면 이미 제3차세계대전은 시작되었는데 우리가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세 번째 대전쟁은 앞서의 두 전쟁과 양상이 다르다. 이전의 전쟁은 국가들 사이의 연합끼리 맞부딪혔다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전쟁은 국가들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실 국가 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맹렬하게 대립하는 일은 역사상 수없이 되풀이 되어 온 일이긴 하다. 일부의 투쟁은 종종 내전이라고 불리며 피를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런 무력을 사용한 대립은 일종의 대화이기도 했다. 대화가 끝나면 어쨌든 상황은 수습되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쟁은 도무지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전 시대의 큰 진영들 사이의 대립은 조금 누그러진 듯하지만, 이제는 수도 없이 세분화된 수많은 정체성들이 각각의 참호를 파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리한 참호전을 벌이고 있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서로에 대한 증오의 깊이도 함께 깊이 패인 상황이다. 정치적 견해와 인종과 성별을 비롯한 수많은 차이가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소명”으로 유명한 저자 오스 기니스는 40여 년 간 살아온 미국 사회를 갈라지게 한 다양한 요소들을 바라보며 수많은 갈등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유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 책의 논지의 중심에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 설정이 놓여있다.


중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지만, 저자는 미국의 헌법 정신을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 특히나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관해서 프랑스와 영국의 해결책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혁명으로 교회의 문에 못을 박아 매장하려 했고, 영국은 국가교회의 형태로 종교를 남겨두었으나 매우 제한된 형태의 의식으로만 유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에서 교회는 정치에 종속되고 말았다. 반면 미국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도리어 종교의 부흥을 이루었다는 것.


문제는 오늘날 이런 미국 헌법의 정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는 양편의 공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 편에서는 세속주의에 기반해 국가와 교회를 엄격하게 분리해야 한다고(내지는 아예 종교의 영역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다시 한 번 교회와 국가(권력)의 일체화를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오늘날 문화전쟁을 통해 서로를 맹렬하게 비난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분열시키는 중이다.


저자는 양측의 주장의 연원과 현실을 충분히 살핀 후, 현재 양 진영에서 주장하고 있는 ‘신성한 공적 광장(국가와 종교의 밀착)’과 ‘벌거벗은 공적 광장(국가와 종교의 극단적 분리)’은 모두 문제를 해결하기에 합당치 않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양심의 자유와 밀접하게 연결된 종교의 자유(차이)를 인정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시민교양에 기초한 공적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양면 전쟁은 가장 어려운 전쟁 유형 중 하나다. 어지간한 강대국도 양면에서 강한 적과 마주하는 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신앙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 힘든 전장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C. S. 루이스도 그의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딜레마다. 한 쪽을 상대하는 것도 벅찬 데, 이 쪽에 대응하다 보면 저쪽 편이냐는 공격을 받기 일쑤라 치열한 진영논리 속에서 고립되기 십상이다.


문제는 이런 입장이 언제나 두루뭉술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꼭 혼란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극단적인 주장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끄는 법이니까. 그러나 극단은 필연적으로 충돌을 낳는다. 트럼프로 노골화된 미국의 문화전쟁이 민간인을 향한 총질도 마다하지 않는 무장 사병집단(ICE)으로 확장되는 모습은, 지난 친위쿠데타 사건을 겪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 다 단순히 똘아이 같은 대통령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광장을,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는 자리가 아니라, 귀를 막은 채 끊임없이 자기주장만 되뇌는 집회장으로만 인식하는 강력한 집단적(이 쪽이나, 저 쪽이나) 사고가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결국 돈과 권력이 있다.


확실한 건 우리의 광장에 필요한 건 거대한 돌덩이로 총 든 형상을 세우는 게 아니라, 대화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지방 선거를 며칠 앞두고 있는 이 즈음, 우리나라의 상황은 결코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온라인에 가득한 혐오는, 이제 누구도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나와 다른 진영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향해 퍼부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대화의 광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의 배후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상황을 분석하고 풀어낸다. 훌륭한 솜씨다. 몇 번은 다시 읽으며 책 속의 논리를 깊히 익히고 싶은 책. 상반기 읽은 책 중에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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