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라는 단어가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는 너무나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그게 우리만의 상황은 아닌가 보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이 보수주의라는 것이 그 정확한 함의를 잃고, 막연한 인상에 의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주된 원인은 이른바 진보주의에 있다.
애초에 보수주의는 자생적인 사상이 아니라 진보주의에 반대하는 맥락에서 튀어나온 (의존적) 사상이다. 그런데 최근 이 진보주의가 길을 잃고 태생적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념 중심의 사상답게, 현실 세계에 긍정적인 변혁을 일으키는데 실패했다. 또한 그런 변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게 된 것들(그 중에는 좋은 전통도 포함된다)도 많고. 그렇게 진보주의가 사상적으로 약화되자 보수주의 역시 함께 그 성격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사실 보수주의라고 해도 그 형태가 고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에게서 시작된 “보수주의”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반혁명(프랑스혁명), 반사회주의, 반큰정부라는 형태로 그 내용이 끊임없이 변화해 왔음을 역사적 과정에 대한 추적을 통해 보여준다. 이 흐름 속에서 일관되게 남아있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조다. 그리고 이건 오늘날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주류가 된 네오콘의 이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분화와 분석은 역시나 앞에서 말한 진보주의의 몰락과 함께 점차 투명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따라가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상대적으로 가치의 중심점을 어느 쪽에 두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양측 모두 결국 비슷한 것들을 주장하고 있으니까. 결론부에서 저자는, 이런 상황의 변화 속에서 보수주의가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방성과 유동성을 아울러 갖춰야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