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 풍요 도덕
피터 싱어 지음, 정환희 옮김 / 필로소픽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1년 동벵골(오늘날의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며 그들을 돕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그것도 단순히 국가적 원조와 같은 방식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더 많은 기부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눈길을 끌었던 짧은 기고문(‘기근, 풍요, 도덕’)과 그 이후 쓰인 비슷한 내용의 두 개의 글을 더해 엮은 책이다.


논지의 핵심은, 우리가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도와야 하는 의무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살리는 데 쓸 수 있는 돈을 사치나 덜 필수적인 것들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도덕적인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몇 가지 보조적인 논리들도 등장하는데,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는 거리와는 상관이 없다던가, 자선이라는 개념은 누군가를 돕는 일을 선택적인 문제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 같은 것들이 있다.(이건 선택이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다! 라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이 짧은 에세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 메시지에 반응해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고, 결과적으로(꼭 이 에세이의 결과는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 세계적인 빈곤을 줄여왔다는 것도 긍정적인 차원이다.


다만 예전부터 이 저자의 글을 읽으며 떠올랐던 의문은 이 정도의 강한 당위를 유물론과 진화론 따위의 얄팍한 철학적 근거 위에 세우는 게 가능한 것인가였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그것이 옳으니까(윤리적인 행동이니까, 도덕적인 일이니까)”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옳음, 도덕, 윤리 같은 개념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애초에 진화에서 무슨 ‘목적’을 찾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그래서 일부 유물론자들은 목적론적 윤리학을 주장하는 마이클 센델 같은 학자들을 심하게 깐다.) 하지만 그래서는 가장 초보적인 윤리적 개념에도 이를 수 없기에, ‘그냥 그런 것’이라고 퉁치고 넘어가곤 한다. 이 책의 저자인 피터 싱어 역시 마찬가지(“진화가 우리에게 물려준 도덕적 직관”, 31).


사실 책 전체에 걸쳐 저자는 “왜”라는 질문을 열심히 회피한다(그냥 인식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에게 인간의 도덕, 윤리의식은 그냥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라. 가진 재산을 낼 수 있는 데까지 내서. 저자는 우리의 생활수준이 우리가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준보다 더 떨어지기 전까지 도와야 한다는 강한 주장을 하는데, 그 주장의 현실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 어쩌면 저자의 전제가 애매한 생각 위에 세워졌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강한 관심, 그리고 적극적인 행동의 독려, 모두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책에는 저자의 논리 과정에는 동의하지만 그 결론이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말하지만, 내 경우엔 그 결론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논리적 과정이 허술하게 느껴질 뿐이다. 정말로 잔뜩 배웠다는 양반들이 이 정도의 허술한 토대 위에 윤리학을 세우려는 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