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부심 - 상실감, 수치심 그리고 새로운 우파의 탄생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종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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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극우라는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과격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표 주자는 역시 미국의 이른바 MAGA족들이다. 진실의 틈바구니에서 발견되는 작은 모호함을 음모론으로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마치 광신도처럼 교주의 지시에 따라 우루루 몰려다니며 파괴적인 행동으로 주변을 위협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선거에서 패배하자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폭도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음모론 추종자들이 내란 우두머리의 구속을 계기로 법원을 습격하는 난동을 벌이기도 했으니 남의 일만은 아니다.


이 책은 어떻게 이 극우적 사고에 물든 집단이 미국의 새로운 주류(트럼프가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걸 보면, 이들 MAGA족은 어엿한 주류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가 되었는지 그 연유를 파악해 나가는 책이다. 저자는 KY-5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켄터키주 제5 연방하원선거구를 중심으로, 쇠락한 공업지대에 남아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하나의 큰 모자이크를 만들어 간다.





저자가 분석한 핵심적인 요인은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들이었다. 지금은 산업구조의 변화로 퇴락한 광산 지역인 KY-5에는, 한때 석탄산업이 호황이었을 시기에는 좋은 보수를 받으며 가족을 부양하며 자랑스럽게 생활하던 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 경제가 쇠퇴하면서 어느새 그들은 ‘가난한 시골에 사는 백인 무지렁이’ 같은 외부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그들이 갖고 있는 수치심이다.


트럼프를 내세운 MAGA족은 바로 이런 수치심을 자극한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이민자 때문이고, 흑인들과 성소수자들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민주당의 엘리트 정치인 때문이라는 선동은 생각보다 쉽게 먹혀 들어갔다(민주당의 주류 정치인들이 실제로 정체성 정치에 함몰되어서 시야가 좁아진 것도 사실이긴 했다). 여기에 특유의 “남성다움”을 자랑하는 허세 비슷한 것까지 더해지며, 심지어 나치를 자처하는 머저리들도 나타났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식의 극단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들 역시 트럼프와 같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강력한 지도자’(물론 실제로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외부의 나쁜 놈을 패주기 위해서라면, 덜 윤리적이고, 때로 나쁜 짓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나쁜 놈(트럼프?)이 나서주기를 응원한다는 심리다. 물론 그 배경에도 수치심이 작용하는 것은 같았고.





물론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정에 좌우된 결정을 할 때도 의외로 많다. 하지만 이런 면이 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이기도 한 ‘선거’와 결합되면 종종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트럼프 같은 인사가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되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자멸, 혹은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후쿠야마 이후로 민주주의가 마치 역사의 최종적인 결론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단지 민주주의의 유통기한이 아직 남아있을 뿐이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수치심이라는 단어로 범주화를 했지만, 결국 문제의 핵심에는 경제가 있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 하면서 현재의 경제적 몰락에 절망하는 이들이 MAGA족의 핵심이었으니까. 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이즈음 곳곳에서 극우적 움직임이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위기다.


한 편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수치심을 감춰줄 독재자를 선택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수치심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온갖 음모론을 만들어 확산시키고, 최소한의 상식조차 없는 막무가내 주장을 (종종 폭력을 동원해 가며)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도덕과 윤리라는 건(심지어 합리적 판단도) 모든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책은 미국의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분명 있다. 미국은 실패한 이 문제를, 우리는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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