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초반 저자는 이 세상의 문제들이 흑과 백으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으며, 오히려 그라데이션처럼 너른 회색지대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어느 정도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동시에 이때에도 흑과 백의 영역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극우”와 나머지 사이의 선을 어디다 그어야 할까? 책은 처음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정의하지 않고 들어간다. 그냥 다들 알지 않느냐는 느낌이다. 물론 책에서는 저자가 그 선을 긋는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그 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나는 성소수자에 관한 저자의 관점에 일부만 동의한다. 그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발기한 상태로 여성 탈의실을 활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호르몬제를 맞고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남성과 유사한 체형을 가진 선수가 여성 스포츠 대회의 근력이 중요한 부문에 출전해 경기에서 우승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다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도대체 성을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권위를 누가 독단적으로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차별의 반대말이 내키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일까.
그리고 저자가 어느 정도 순화시켰을지는 모르겠으나, 책에서 저자의 아들이 제기했던 주장들은 유럽에서도 전향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여성 징병제라든지. 이 구분과 관련해서 저자가 오히려 조금은 나이브한 이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사람의 성별을 그가 요구하는 대로 불러주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식의, 정체성 정치 이론에 기반한 교육이 과연 극우적 사고와 얼마나 다른 건지는 추가적인 논의도 필요할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집필 목적이 이 부분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어린 자녀들이 당장의 나쁜 물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것도 맞고. 결국 이 부분도 우리에겐 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