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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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 가서 신간 코너를 봤더니 유전자와 관련된 몇 권이 함께 꽂혀 있었다. 가장 먼저 뽑아 본 건 외국 저자의 책이었던 것 같은데, 철지난 유전자 결정론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내용으로 보여 바로 다시 집어넣었고, 그 옆에 있던 이 책을 펴봤다.


유전자와 관련된 어느 정도의 과학적인 정보와 함께, 역사적으로 이 주제와 관련해 오해되어 왔던 내용들도 아울러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훑어보던 중 읽게 된 몇 개의 문장들 가운데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을 까는 게 있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유전자와 관련해 가장 먼저 소개되는 건 인종과 관련된 내용이다. 오랜 시간 인류의 상당수는 흑인을 인간의 범주에 넣지 않았고, 인간에 포함된다고 인정하더라도 백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이런 착각은 여전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백인들에 의해 착취당해온 동양인들, 특히 우리나라의 몇몇 덜 떨어진 온라인 커뮤니티 중독자들에게서도 거의 그대로 발견된다.)


몇 년 전 악명 높은 인종차별 테러단체인 KKK단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백인”이, 알고보니 조상들 가운데 흑인이 섞여 있었다는 걸 알고 자괴감에 빠졌다는 해외뉴스를 본 적이 있다. 물론 현재 드러난 모습만 보면 완전한 백인처럼 보이지만, 유전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래도 나름의 논리로(중요한 건 백인의 “정신”이다!) 정신승리를 시도하던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자기의 오류를 인정할 최소한의 정직함과 용기가 없는 겁쟁이의 마지막 반항 비슷한 것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주류 과학계의 설명에 따르면, 인류는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출현해서 점차 세계 곳곳으로 퍼졌고, 다분히 환경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피부색이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애초에 피부색을 결정짓는 유전적 요인도 어느 한 가지가 아니었다. 피부색에 따라 인종을 결정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것이, 어떻게 인간의 피부색이 백인, 황인, 흑인으로 말끔하게 구별될 수 있을까? 그러데이션처럼 셀 수 없이 다양한 색깔을 고작 몇 개의 이름으로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참 오만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희귀병과 돌연변이(여기에서는 합스부르크가문의 특유의 주걱턱이 언급된다), 온순함과 사나움, 바보와 우생학, 범죄 유전자, 동성애, 암,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비판적 검토 등이 이어진다.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주제들이고,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지식들도 등장한다.


저자는 뭐만 있으면 죄다 유전자 탓(비만 유전자니, 범죄 유전자니, 천재 유전자니)을 하는 유전자 결정론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자주 지적하는데, 사람에게 발현되는 가장 단순한 형질인 키만 해도, 관련된 유전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어느 한 가지 유전자가 특정한 형질을 결정하는 경우는 멘델의 완두콩만 갖는 특별한 케이스였다고도 덧붙인다.


우생학과 관련해서는 당장 나치의 잔혹한 인종청소가 떠오르지만, 그보다 20년 먼저 이미 미국에서 관련 법률이 일찌감치 시행되어 왔고, 여기에는 당시 이례적으로 좌파와 우파 정치인들 모두가 지지를 보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물론, 진보적 여성 운동가인 마거릿 생어도 지지자 명단에 있었고, 심지어 듀 보이스 같은 흑인 인권운동가도 우생학을 반겼다고 한다. 다만 이 사태는, 그 당시에는 그것이 “과학”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 법률의 결과로 미국 정부가 저지른 만행은, 이른바 강제 단종법에 따라 저능아 출산이 3대에 걸쳐 이루어졌다면 강제로 불임시술을 해버리는 (심지어 법원에서도 이를 허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제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이 공식 통계로만 16,000명이었다는데, 그 시절 트럼프 같은 미치광이가 대통령이었다면 이 수치는 가볍게 열 배는 더 넘겼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도구를 어떻게든 사용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은 온갖 것을 때려박으려고 할 것이고, 가위를 들고 있는 아이는 집안 곳곳의 물건을 자르려고 한다. 과학자들이 과학이라는 도구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인간이 그렇게 과학으로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인가 하는 질문은, 과학을 뛰어 넘는 물음이다. 유전자라는 매력적인 도구를 알게 되고, 조작과 편집할 수 있는 기술까지 습득하게 된 인류이지만, 오직 유전자의 조합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단정적으로 말하려 했던 리처드 도킨스가 자기모순(무목적성을 띠는 유전자의 작동방식을 목적론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에 빠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전자의 발견은 많은 것들을 설명하게 만들지만, 다른 모든 과학적 발견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라는 나이브한 설명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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