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빠진 교회
권수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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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정치종속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게 “심각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우선 이제 단순히 개인들, 혹은 일부 돌출인사들의 망나니짓을 넘어서 이미 한 교단(고신) 차원에서의 가세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한 편으로는 그렇게 만들어진 정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자칭 기독교인인)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가운데 혐오와 증오를 널리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내 개인 블로그에 와서 단두대 운운하며, 탄핵에 찬성한 사람들은 다 북한으로 가라는 악플을 남긴 사람이 있었다. 그 표현의 폭력성과 저열함, 선동당하기 딱 쉬운 역사적 무지(단두대는 프랑스 혁명기 만들어진, 그러니까 보수적 권력을 타파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만든 처형도구다. 당연히 거기에 가장 먼저 오른 사람들은 보수파 정치인과 판사들이었고.)도 문제지만, 그런 글을 쓰며 다니는 사람들의 정체가 더 큰 문제다.


누가 이런 글을 썼나 하고, 작성자의 블로그에 가보니 손자 영상을 올려두고 자랑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게시물들이 보인다. 더구나 블로그 소개에는 “감사”니 뭐니 하는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비슷한 일들은 유튜브 채널에서도 자주 경험할 수 있다. 악플을 남긴 사람의 채널을 따라가 보면, 찬양과 설교 영상 따위가 잔뜩 갈무리 되어있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한국교회의 정치화, 또는 정치종속은 이렇게 마치 곰팡이처럼 우리 삶 깊숙이 퍼져 있다.





이 책은 한국교회의 정치화에 관한 다양한 차원에서의 검토를 담은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교회와 정치의 관계 설정에 관한 내용부터, 교회의 정치화/정치종속의 역사를 분석한 글들, 설교자의 역할과 한계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중 여섯 번째 글인 “일가 김용기의 시대 인식과 신앙적 행동”은 조금 이질적인 내용인데, 이 책에 담긴 글들이 발표된 연찬회가 김용기가 세운 가나안농군학교의 수도원이었기 때문인지, 그 설립자의 일생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사실 교회와 정치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교회와 국가의 밀착이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일으켰는지는 이미 잘 알려진 바이고, 때문에 그 한계 또한 잘 정리되어 있다. 교회는 정치를 비롯한 세상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뜻을 선포할 책임이 있지만, 그 방식이 특정한 정치 세력과의 협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사실 이건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이야기부터 제시된 해답니다.


문제는 이런 역사적, 정통적 교훈을 무시한 채 날뛰는 극단주의자들이다. 법원을 습격하고, 내란을 옹호하고, 자기 정파의 이익을 복음과 동일시하는 신성모독적인 언행을 남발하면서도, 스스로 신앙인으로 자처하는 꼴이 우습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신, 십자가로 다른 이들을 공격하는 행태는 정확히 빌라도와 신약의 대제사장들의 모습과 겹쳐지지 않는가.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의 정치종속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어 왔는지, 그 경과를 다운 2장과 3장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못했던 것이, 3장의 경우 한경직 목사라는 개인의 역사를 중심으로 이 과정을 서술했고, 2장 역시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하기는 했으나, 그 사건들 사이의 연계를 충분히 학문적으로 풀어내거나 증명해 내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각 시대별로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는 도움이 된다.


한국 교회의 정치화에 반공주의(빨갱이 몰이)가 중요한 도구임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4장의 내용은 흥미로웠다. 북한과의 전쟁을 겪었던 우리나라로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갖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이 있긴 하지만, 반공주의는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반대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상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일 뿐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적 가치와 어울릴 수 없다.


전반적으로 문제를 분별하고 지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이건 꼭 이 책의 저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말을 알아먹을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종류의 모임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곳곳에서 이런 모임들이 더 많이, 자주 열리다 보면 조금씩 길이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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