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든 예술은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추상예술조차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어떤 면을 포착해서 과장하거나 의도적인 왜곡, 축소를 통해 예술가가 경험한 감흥과 통찰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으로 교회는 예술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리를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해 왔다. 중세는 교회 예술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오용도 있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던 중세 교회 예술은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었고, 그런 것들을 관리하는 교회 또한 함께 부유하고 화려해져만 갔다. 화려함에 익숙한 교회는 자연스럽게 부패해버렸고, 가장 본질적인 말씀의 선포는 약해지다 못해 희미해졌다.
종교개혁자들이 예술을 의심스럽게 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시기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장식화 된 교회의 각종 부속들을 제거하고, 본질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시기였다. 마치 과식을 해서 체한 사람이 기름진 음식을 끊고 죽만 먹어야 하는 것처럼. 개혁자들은 미술과 음악, 건축 등 여러 부분에서 소박한 (때로는 금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양식을 선호했다.
아쉽게도 이 때문인지 개신교회 안에서 예술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물론 개혁파 화가라고 인정받는 얀 베르메르 같은 걸출한 작가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그 양과 질에서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이전 시대 이른바 “성화”라고 불렸던, 기독교적 주제를 담은 좀 더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작품들이 부족한 것은 퍽 아쉬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