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리 뉴비긴,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 - 계몽주의와 현대 문화, 과학주의 세계관을 넘어서
레슬리 뉴비긴 지음, 신국원 옮김 / IVP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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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뉴비긴이라는 저자를 처음 만난 게 벌써 20년 전이다. 선물 받았던 책은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라는 제목의 그리 두껍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사안을 탁월하게 분석해 내는 문장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무엇보다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남달랐다. 아마도 여기에는 40여 년 간 인도에서 선교사로 살았고, 선교를 위한 교회협력 기구에서 활동했던 이력도 분명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서도 레슬리 뉴비긴의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교회가 세속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또 어떤 식으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사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전에 쓰였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여전히 지금도 통하는 이야기를 느낌을 준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고,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못한 채, 중구난방식의 대응을 하다 자멸하는 중이다.





1장과 2장은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은 채 살고 있으며, 그 근원에는 계몽주의라는, 다분히 자아도취적 철학/이념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의심을 통해 객관적인 진리에 도달하겠다는 계몽주의적 이상은 그 자신의 타당성조차 의심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로 빠져버렸다는 것.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기독교적 비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이 비전은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 실패한 모델인 기독교 왕국(크리스텐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세상 전체를 하나님께 돌리는 성경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이 과정에서 현대의 중요한 발견, 특히 과학과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건 과학으로 재구성한 성경읽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증인의 증언으로서의 성경이라는 성격을 강조하면서, 더욱 충실한 성경읽기를 통해 현대 문화를 구성하는 틀에 도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세속사회 속에서 한국교회는 길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는 다시 기독교 왕국의 비전을 꺼내들며 시대착오적인 언설을 내뱉고 있고, 이를 위해 교회의 이름으로 정치에 깊숙이 끼어들더니 결과적으로 그들이 이단으로 정죄했던 이들과 한 배에 올라타고 말았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이미 우세를 점한 세속사상에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대가로 그들이 심심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책들의 목록에 성경을 넣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많은 교회들은 세속과 신앙 사이에 담을 쌓은 채 애써 (되지도 않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뉴비긴의 대답이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세상과의 대화에 충실하게, 그리고 겸손한 모습으로 나서면서도, 우리의 것을 자신 있게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중요한 표지를 보여준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이 작업을 해 낼지에 대해서는 이 작은 책 한 권으로는 다 담을 수 없지만, 그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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