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미켈 볼트 라스무센 지음, 김시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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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이라는 단어는 벌써 거의 한 세기 전에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이제는 사장된 언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새로운 파시즘”이 득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부적인 면에서 과거의 파시즘과 달라진 부분이 있지만, 그 핵심부에는 여전히 “외국인을 배제함으로써 상상의 유기체적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이 있다는 것.


과거의 파시즘의 중심에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새로운 파시즘의 중심인물은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르펜,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덴마크 피아 키에르스고르 같은 (그 중에서도 역시 트럼프) 인물들이다. 확실히 이즈음 극우정치인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이지만, 일부(예컨대 트럼프 같은 인물은)는 극우라는 이념 지향 보다는 오히려 탈이념적인 인물도 있다.





책 제목에도 나와 있듯, 저자는 이 새로운 파시즘에 ‘후기 자본주의’를 덧붙이고자 한다. 문제의 원인을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서만 찾으려 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문제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려는 시각이다.


정리하자면, 대규모 경제위기는 복지의 축소로 대표되는 긴축정책을 펴도록 만들었고, 이는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이는 다시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불신,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고, 이 공간을 파시스트들이 차지했다는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어떤 종류의 음모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의 표현”이다.


오랜 경제 위기로 인해 누적된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불만을 해소할 “복수의 대상”을 찾는다. 파시스트들은 그런 사람들 앞에 이민자, 무슬림, 공산주의자, 유대인 같은 타자를 희생양으로 던져주어 물어뜯도록 만든다. 또, 새로운 파시즘은 이전과는 달리 우리의 일상, 특히 온라인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소위 일베나 펨코 같은 파시스트들의 친목질 커뮤니티에서는 이민자나 특히 중국인이나 무슬림에 대한 강력한 혐오와 공격적 언사들이 일상적으로 발화되고 있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건, 이른바 진보적 의제를 제시한다는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


심지어 현재 우리나라엔 책에는 나오지 않는 현상도 있는데, 바로 종교적 배경을 지닌 집단이 부패한 정치세력과 굉장히 밀착해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 일각은 물론 통일교나 신천지 같은 이단 집단들이 책에서 말하는 새로운 파시즘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도, 그런 것들 주장하는 세력들에게 돈과 인력이라는 지원을 하는 상황은 종교와 정치의 오랜 (그리고 부적절한) 밀착의 반복이기도 하지만,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책의 분석이 아주 정교하지는 못하다. 사실 책 자체의 볼륨이 그리 크지 않은데도, 앞서 말한 주제가 별다른 발전 없이 계속 반복되기만 하는 느낌이다. 어떤 인상비평, 사건에 대한 스케치 정도에 가까워 보인다. 당연히 상황에 관한 설명 이외에, 대안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볼륨에 비해 책값이 꽤나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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