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소명 - 영원으로 이어지는 이 땅의 삶
존 레녹스 지음, 정효진 옮김 / 아바서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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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충분히 알았다 싶은 주제가 있다. 책도 어지간히 읽고, 관련된 논의들도 많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주제다. 그런데 이쯤해서 착각하기 쉬운 게 하나 있다. 내가 그렇게 잘 아니, 다른 사람들도 다 알 거라는 생각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근 20년 넘게 신학과 신앙 관련 책들을 읽어오다 보니, 종종 하는 실수다. 정작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 이 부분이 설명이 필요한 주제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적지 않다. 실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이 책의 주제도 그런 내용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이른바 소명에 관한 내용이다.(바로 얼마 전에도 관련 책 하나를 리뷰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일”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이 책은, 익숙한 주제들을 반복한다. 일과 쉼(안식), 성속 이원론의 부정,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일 같은.


어떻게 보면 이 주제에 관해 더 말할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미 다 아는 것 아닌가도 싶다. 하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책상머리에서 아는 것과 실제 그 현장에서 아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최근 여러 크리스천 사업가들과 만나 교제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이 주제가 정말 실존적인 문제다. 그리고 여전히 이 주제에 관한 설명과 간증과 격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작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저 이론만 건조하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좋은 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선배들과의 만남도 중요하다. 물론 그런 만남이 늘 쉽게 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책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지만. 대신 좋은 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일단 저자의 이름부터가 어느 정도 신뢰감을 주는데, 이론과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예들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면서 주제를 전개해 가는 방식이 참 매력적이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6장 “부의 관리자” 부분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부라는 것이 “어떤 과정에서 부패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저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 아니다. 고의가 아니었지만 우리가 받고 쓰는 돈은 어떤 악과 관련되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소위 패스트 패션의 유행 가운데 가볍게 입고 버려지는 옷은 동남아시다 어느 빈곤층 가정의 아동이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며 생산해 낸 것일 수 있고, 우리의 휴대폰 속 희토류 광물은 아프리카 어느 지역의 반군이 장악한 곳에서 노예 노동으로 생산된 것일 수도 있다. 또, 내가 일하는 부서와는 거리가 멀지만, 내 일의 사슬 중 어느 단계에서 부정이 개입되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우리(그리스도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다른 예시도 가능하다. 여전히 세계 어느 지역에서는 지역 관리에게 소정의 뇌물을 주지 않고서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있다. 그런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는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 더구나 그가 그 지역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자는 이런 상황들까지 두루 고려하면서 어떻게 신앙과 일을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논의를 풀어놓는다. 어느 것 하나 교조주의로 풀어갈 수는 없는 문제와 질문들이고, 저자 역시 단순한 지침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고려해야 할 신학적, 신앙적 조언이 필요하고, 이 책은 여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책 내용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상황과 고민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책은 혼자 읽기 보다는 함께 읽으면서 대화를 하는 데 더 알맞은 책이다(마침 각 장 말미에 질문이 몇 개씩 붙어 있다). 역시 믿고 보는 존 레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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