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때라면 이런 책을 보면서, 판사들의 인간적인 면을 살짝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고 간단하게 평을 하고 말 것 같은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렇게 우호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최고재판소라고 하는 대법원의 대법관들이 이전에 선고해 왔던 얼토당토않은 판결들이 드러나면서 사실 한가하게 그들을 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국회에도 자주 나와 입장을 표명하는 법원행정처장은 CCTV에 뻔히 보이는 접대 받고 있던 법무부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또 다른 대법관은 버스 기사가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의 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는 대법원이 판결을 내릴 때는 사건 기록을 다 살펴볼 필요까지는 없다고 스스로 입장까지 발표했으니 뭐.
물론 판사집단이라는 것도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거대한 키메라의 형태로 되어 있는 건 아니니까, 판사 각자의 생각이 있고 여기 인용되어 있는 것 같은 판결문을 쓴 독특한 판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조직에는 그 조직만의 문화라는 게 있는 것도 사실인지라, 일련의 막장 판결들이 드러나는데도 그저 입 꾹 닫고 모른 척 하는 모습들만 보여주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권력은 엄청나게 큰데, 그들에게는 선거라는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지도 못한 존재다. 민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되지 않은 직위에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지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언젠가 대법관을 역임하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청탁금지법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존재 의의는, 선거에서 다수를 점할 수 없어 대표를 내세울 수 없는 소수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사법부가 이런 통찰에 귀를 기울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저자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재판정의 모습과 우리가 뉴스로 마주하는 실제 재판정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