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번역자가 번역을 하면서, 강연들 사이의 통일성을 살릴 수 있었다는 서문 내용이지만, 사실 내용이 쉽지는 않다. 신학뿐 아니라 철학, 그리고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없다면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려울 듯하다. 확실히 “신학책”이라는 느낌.
이런 어려움을 한 발 넘어설 수 있다면, 비로소 카이퍼가 말하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지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이 일련의 강연에서 강조하는 바는, 칼뱅주의가 가지고 있는 포괄성 성격이다. 물론 당시에도 칼뱅주의가 하나의 교단이나 교파를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저자가 말하는 칼뱅주의는 그보다 큰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다시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이라는 의미.
카이퍼는 칼뱅주의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져왔고, 종교의 참된 의미와 기능을 되살렸으며, 정치적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자유를 회복시켰다고 말한다. 그건 단순히 종교적 신조를 모아놓은 일련의 교리들이 아니었다.
물론 살짝 무리한 해석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예술과 관련된 부분인데, 저자는 칼뱅주의가 교회권력과 지원에 종속되어 있던 예술을 해방시켜, 본래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가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사용한 신학적 해석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을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칼뱅주의의 전제들에서 이끌어낸 해석이지, 칼뱅주의 자체가 예술을 어떤 식으로 부흥시키거나 장려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한다. 틀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조금은 무리해 보이는 것도 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