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권이 있었다 - 구약 율법에 나타난 인간 권리 선언
민경구 지음 / IVP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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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의 율법은 꽤 불편한 존재다. 무엇보다 ‘이신칭의’라는 멋들어진 사자성어(?)로 상징되는 믿음 우선의 신학은, 율법 중심의 신학과 배치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구약에 잔뜩 실려 있는 이 율법은 무슨 의미인가.”


또 다른 이유는 다분히 감정적인 것이다. 자유인인 우리는 누군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율법이야말로 그런 강요의 정점에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율법을 강요하지 말라.”


이런 반감에도 불구하고 또 한 편으로 보수적인 교단들에서는 이 율법의 중요성을 여전히 강조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십계명은 여전히 그리스도인들도 따라야 할 하나님의 명령쯤으로 여겨진다(물론 이들도 나머지 율법들에게도 동일한 수준의 순종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성경에 대한 그들의 특별한 애착 때문일 수도 있고, 십계명 정도는 오늘날의 윤리의식으로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는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효력을 미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견해를 받아들인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규정들을 문자적으로 준수해야 할 규정으로 여기지는 않지만(이 점은 십계명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기에 그것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를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또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고민하고 살펴 순종해야 한다고 믿는다.





크게 보면 이 책 역시 비슷한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구약의 여러 율법 규정들 속에 인권 개념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이게 비유적인 표현인지는 확실치 않다)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인권” 개념의 핵심에는 인간의 자유와 생명에 대한 존중, 적절한 휴식과 노동 사이의 조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신분에 따른 차별 배제 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물론 성경의 율법 속에서도 이런 개념들의 초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차피 인간을 오랜 진화의 산물로, 단순한 원소들 사이의 복잡한 결합 따위로 여기는 현대의 유물론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건 논리적인 모순이라고 생각한다(그러다보니 최근에는 동물에게도 정치적 권리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유물론에 따르면 이를 반박할 근거가 별로 없어 보인다). 인권 개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특별함을 지지해주는 근본적인 사상이 필요할 텐데, 이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피조물로 보는 관점 이상 가는 게 없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저자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근대의 발명품인 “인권 개념”을 별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건 혼동의 여지를 주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책의 구성 역시 근대적 인권 개념에서 언급하는 것들을 가져와 그 틀로 구약을 설명하는 식이다. 나중에 나온 개념으로 이전에 나온 문서를 해석하는 셈인데, 일단은 사건의 선후가 뒤집힌 방식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구약의 본문을 현대적 개념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기독교를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소개하기 위해서 그 개념을 당대의 틀에 맞춰 변형시키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오랜 작업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저자가 현대적 인권 개념이 담겨 있다고 보는 구약 율법 규정들은 정확히 일치되지 않는 면들이 있다. 예를 들면 고대에는 노예와 자유민 같은 분명한 신분제도가 있었고, 남녀 사이의 구분도 분명했다. 많은 장 말미에 저자는 이런 부분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코멘트를 덧붙이는데, 다른 말로 하면 현대에 받아들일 수 있는 구절과 그렇지 않은 구절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판단해 선택, 제거한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되면 우리가 따르는 게 구약의 말씀인지, 현대의 윤리인지부터가 좀 애매해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문서설을 적극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저자는 구약의 본문들을 자유자재로 재단하고 그 순서를 재배열해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매끄러운 역사 모델을 구축한다. 이렇게 보면 저자는 구약 전반을 임의적으로 선별하고, 편집해서, 주장을 이끌어 내고 있다. 물론 이런 관행이 신학계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알고 보면 ‘확실’한 건 아니다.





이런 관점이 우려스러운 건,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한 경우에도 현대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에 대한 순종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하우어워스와 윌리몬이 함께 쓴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에서 다루는 윤리적 태도와 크게 다르다. 책에서 두 저자들은 부족주의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좀 더 과감한 순종을 주장한다.


물론 이 책의 의도에 그런 부분까지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책의 내용은 구약의 율법에도 우리가 귀 기울일 만한 다양한 내용들(특히 인권이라는 영역에서)을 담고 있으며, 그러니 여전히 유용한 부분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세상이 또 다른 무엇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게 확인된다면, 성경 속에서 또 얼마든지 (지금은 알지 못하는) 그와 같은 주장을 이끌어 내지는 않을까.


요컨대 책의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다만 그런 주장에 이르는 과정에 관해서는 약간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책의 내용까지라면 모르겠지만, 같은 논리를 좀 더 확장시킬 경우 분명 당혹스러운 부분을 맞닥뜨리게 될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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