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역사
게리 A. 앤더슨 지음, 김명희 옮김 / 비아토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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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에 머무는 동안, 성경 속 죄의 개념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전의 기록에서 죄는 주로 짐이나 오점 등으로 설명된다. 대표적인 것이 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지고 광야로 내보지는 염소다. 하지만 페르시아 통치기를 거치면서 죄가 ‘빚’이라는 개념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죄는 어떤 사람의 천상 장부에 마이너스로 기록되는 무엇(일종의 영적 채권)이 되었고, 그 수치를 제로로 만들어야만 구원이나 회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내용으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


이런 변화의 중요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페르시아는 아람어를 공용어로 사용했고, 아람어에서는 죄를 빚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있었고 이런 특성이 자연히 유대인들의 사상에서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다. 이는 자연히 신약의 유대인들의 표현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주기도 가운데 죄 용서에 관한 부분이다. 우리말 번역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구절은 원문으로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 준 것 같이~’이다.





책의 대부분은 구약 성경 속 죄의 개념을 연대순으로 훑어보면서, 저자의 주장을 입증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의 설명만 보면 정말로 구약 내에도 이미 이런 종류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처럼 보인다. 다만 저자는 이 작업에 본문비평을 끌어다 오는데, 본문비평이 가지고 있는 기준의 모호함이라는 부분은 짚어둘 만하다(솔직히 말하면 본문비평의 주장들 상당부분은 이렇게도 가능하고 저렇게도 설명이 가능한 것들이다).


예컨대 저자는 창세기에 있는 내용도 죄를 빚으로 묘사하는 구절은 상당히 후대에 편집된 부분으로 여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보면 그냥 죄를 빚으로 묘사하는 건 후대의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이전 시기의 것이라는, 임의적인 구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즉 같은 책이라도 일부는 앞선 시대, 또 일부는 후대의 것 하는 식으로 구약 성경 전체를 파편화해버린다.


한편 죄의 개념에 대한 이런 변화는 자연히 그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에도 영향을 끼친다. 죄가 빚이 된 이상, 그 빚은 채무자가 갚아야 할 무엇이 된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포로생활은 이 빚을 갚는 기간이라는 개념이 나오고(예레미야나 역대기, 다니엘), 또 한편으로는 선행을 통해 하나님의 장부에 기록된 자신의 죄의 값을 줄여나간다는 개념 또한 나오게 된다(이 개념은 중세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 시대에도, 예컨대 단4:27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건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선행(혹은 자선)이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유대인들은 재산 중 얼마만큼을 여기에서 사용하는 게 좋을 지에 관한 나름의 기준에 관한 전승도 존재했고(처음에는 재산의 1/5, 이후에는 나머지 재산의 이자수익의 1/5), 이건 하나님의 장부에서 빚을 지우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당연히 이런 개념은 기독교 안으로도 들어왔다. 중요한 건 이 때 선행으로 빚을 줄여가는 작업은, 자력구원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인간이 지은 죄는 너무나 커서 사람 차원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문제를 줄여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자선을 허락하셨다. 인간이 이를 통해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 갈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흥미로운 부분이다. 루터는 면벌부 판매 관행을(그리고 그 돈으로 호화로운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을) 비난했지, 선행을 비난하지 않았다.


저자는 죄를 빚으로 보는 이런 관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설명하는 데도 한 가지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 하나님을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만 분이 풀리는 잔인한 존재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죄가 가진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매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안셀무스의 논의가 주된 자료로 사용되는데, 이 부분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부분이다.


책의 논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다보면 하나님 백성의 삶에 있어서 선행, 혹은 자선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하게 된다. 혹자는 여기에서 자력구원의 자취를 느낄 지도 모르겠으나, 우선은 앞서 랍비들이 제안했던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보는 방법도 있고, 무엇보다 성경 자체에서 죄라는 빚을 갚는 방법에 관한 언급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한 부채증서의 폐기와 함께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면, 우린 이 또한 무시할 수많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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