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게임
나윤아 지음 / 한낮의단비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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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는 동화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동화(fairy tale) 같은 판타지가 섞인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었고, 좋은 이야기는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이 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그는 친구였던 톨킨과도 생각이 일치했는데, 이 덕분에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란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루이스는 이 작품에서 기독교적 교훈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진 판타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만나는 게 쉽지가 않다. 우선은 동화 같은 건 아이들이나 보는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 것 같고, 또 애초에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나마 그림책 쪽은 꽤 괜찮은 이야기들이 종종 보이는데, 아주 어린 아이들과 성인들 사이에 있는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는 더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난 번 서울 국제 도서전에 갔을 때, 이 책을 소개받았다. 매우 확신 있는 눈빛으로 책을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표지부터가 교복을 입은 귀여운 청소년들이 그려져 있고, “조각게임”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제목도, 라운딩 처리를 한 책 모서리도 다 조금은 특별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책장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흡입력이 있다.





이야기는 여중생 서예나의 관점으로 서술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특별히 예쁘거나 잘난 데가 없다고 여기는 예나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형편으로 몰렸다. 특별히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느 날 친구들과 대화 중 작은 거짓말을 했고,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 연습생 정원과 친해지려다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한 순간 자신의 거짓말이 밝혀지면서 궁지에 몰리게 된 예나에게 갑자기 이상한 문자 메시지가 온다. “조각게임”에 참여하면 자신이 했던 거짓말을 모두 지워줄 수 있다는 제안. 처음 몇 번은 무시하고 지웠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지라 결국 제안을 승낙하게 되고, 이제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은 이제 예나의 눈에만 보이는 친구들의 가슴에 생긴 흉측한 구멍을 메우라는 것.


구멍은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공허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인다. 예나의 친구들은 구멍을 보거나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중학생다운 방식으로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한다. 사람들의 인정이나 자신이 원하는 성공 같은 것들로. 게임에 참여하기로 동의하자 정말로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예나의 거짓말은 사라진 것 같았고, 이제 예나는 연습생인 정원의 성공을 돕기 위한 작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렇게 친구들의 가슴에 난 구멍을 어느 정도 메우는 데 성공한 예나. 하지만 구멍을 메우는 돌은 정확한 모양이 아니었고,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없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예나는 뭔가 중요한 걸 깨달은 듯하다.





사람의 마음에 빈자리가 있고, 그 자리는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이어지던 내용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그리고 살짝 판타지적 내용을 섞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야기에 흡입력이 있다. 중학생들이라면 이런 대화를 나누겠지 싶은, 귀여운 이야기들을 읽는 맛도 있다. 친구들에게 했던 거짓말이 들키는 장면에서는 나도 식겁했고, 의도치 않았던 거짓말들이 모여 주인공을 곤경에 처하는 모습은 참 잘 구성했다 싶다.

다만 인물들의 이야기 외의 배경에 관한 묘사가 약하다는 점은 문학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루이스도 문학 비평 가운데서 이런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뒤마의 “삼총사”에는 배경이 없어서, 이야기가 겨울인지, 여름인지, 궁전인지 어딘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의 작가 역시 인물 묘사에 치중하느라(그리고 아마 주제 전달에 집중하느라)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야 문학적 완성도에 관한 내용이고, 좋은 주제와 신선한 소재, 그리고 단순히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간만에 교회 청소년들에게 권해 줄 만한 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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