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글재주의 소유자답게, 체스터턴은 수많은 사회적 주제들 사이를 종횡무진 활보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조금은 시니컬하게 쏟아낸다. 그리고 이 시니컬함이 종내 좀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중 한 명이 이 책의 번역자가 아니었나 싶은데.... 책 곳곳에 쓸 데 없는 역주를 너무 많이 달아 놨다. 저자에 대한 평가는 그의 글을 통해 독자가 직접 하면 그만인데, 이건 역자가 무슨 해제를 하듯 여기저기 이건 체스터턴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각주가 수두룩하다.
특히 페미니즘에 관한 저자의 의견에 대해 이런 시도가 잦은데, 예를 들면 170쪽의 19번 각주를 보면 여성주의에 대한 오용과 남용이 만연한 상황을 지적하면서 체스터턴도 그 중 하나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바람직해 보이는 정의를 하나 끌어다 대는데, 역자가 제시하고 있는 정의는 정작 페니미스트들 사이에서도 합의되지 않고 있는 부분이고, 그 중 한 파의 입장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개입이 꽤 잦아서 ‘마음에 안 들면 굳이 번역은 왜 하겠다고 했는지’ 싶은 생각도 들 정도.
139쪽의 9번 역주도 가관이다. 여기서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니므롯에 관해 설명하면서 “유대인의 부족신 야훼가 인정한 뛰어난 사냥꾼”이라고 덧붙인다. 역자의 무신론적 전제를 굉장히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으로, 본인은 꽤나 학술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우쭐함까지 엿보인다. 가톨릭신자였던 체스터턴은 이런 각주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 이건 좋게 봐도 그에 대한 몰이해, 내지는 디스로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물론 모든 각주가 이런 식은 아니다. 많은 경우 본문에서 언급된 어휘나 인물들에 관한 좋은 설명이 붙어있지만, 결국 음식에 들어간 머리카락 하나가 그 음식에 대한 평가를 좌우하게 되는 법이니까. 못내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를 덧붙이지 않으면 독자가 체스터턴의 의견을 따라가 버릴 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던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