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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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볍게 생각해고 손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읽기가 어려웠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번역 투의 문체가 참 힘들다. 당장 책의 부제가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이다. 무슨 말인지 뉘앙스는 이해가 되지만, 이게 우리말이 맞긴 한가? 보니 전문번역자가 아니라 박사학위까지 받은 관련 분야 전공자이다. 물론 모든 문장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좀처럼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 문장들이 자주 보인다.


또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집필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점이다. 앞서의 부제를 보면서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종의 대안자본주의를 제시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물론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예컨대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미국 오리건주의 한 산지의 버섯채집인들로 구성된 캠프는 조금은 임금노동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러 사람들로 채워져 있긴 했지만, 그게 이 책의 저자가 찬양하는 어떤 목적이나 목표 같지는 않다. 애초에 이 송이버섯 채집 경제는 너무나 규모가 작아서 무슨 구조를 논할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럼 또 송이버섯의 생태와 관련된 다양한 과정들을 추적하는 식물학적 접근이냐, 이 또한 책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게 또 중심인가 싶으면 그건 아니다. 환경보호나 생태학적 관점도 담겨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메인은 아니고.




책 말미에 붙어있는 해제를 보면, 저자는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어떤 지역에 사는 특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송이버섯을 중심에 두고, 그걸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인 듯하다. 연구 주제가 독특하긴 하다. 여기에 포스트인문주의 같은 조금은 어려운 말을 사용해 설명을 하긴 하지만, 뭔가를 그려내고 있다는 정도만 와 닿는다. 애초에 이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은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다큐 클립을 보는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경우엔 그런 걸 또 한참 들여다보며 재미를 느끼긴 한다.


우선은 일본에서 송이버섯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자세한 서술이 눈에 들어온다. 송이버섯은 대규모로 재배할 수 없고 그저 채집할 수 있을 뿐이기에, 어떤 산업적인 구조라는 게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또 송이의 가치를 높여주는지라, 일본에서 (좋은) 송이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과는 다른 차원의 선물로 여겨진다는 것.


한편으로 미국의 송이채집자들의 세계도 흥미롭다.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온 소수민족들이 대거 포진한 이들의 무리는, 저마다의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버섯채집허가증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종종 사유지에도 들어간다)에서 송이를 채집하는 삶을 꾸려간다. 그러면서 이들은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난 일종의 자유를 누리는데 그들이 채집한 송이를 판매해서 생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판매 과정이 일종의 경매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또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송이버섯의 생태 부분과 관련해서, 우리가 흔히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즉 인간이 개입을 덜 하고 알아서 각 생물들이 자라도록 하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 또한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송이는 교란된 숲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벌목이 이루어지고, 인디언들이 일부러 불을 내 화전을 일구고 떠난 자리, 겉으로만 보면 삼림이 훼손된 것 같은 그런 자리에서만 송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저 잘 ‘보존’된 숲은 ‘방치’된 숲일 수도 있다는, 그래서 오히려 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지적은 꽤 새롭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결과적으로 이 책은 송이버섯을 둘러싼 수많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같다는 느낌이다. 다양한 주제들과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 또 그들의 고향을 비롯한 다양한 지리적 내용들이 이리저리 섞여 풀려나온다.(알라딘에서 이 책의 분류는 인류학, 식물학, 생태학, 환경학까지 망라한다 ㅋ)


다만 버섯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경제가 뭔가의 대안이 될 수 있다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엄청난 찬사(대개 책의 추천사라는 게 그렇지만)가 오히려 살짝 부담스럽달까. 다만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어떤 변화를 주는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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