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 기도의 길 - 다시 깨어나는 거룩한 상상력 사회 속의 교회, 교회 속의 사회
에스더 드발 지음, 이민희 옮김 / 비아토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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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어 본 사람이라면 켈트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주로 아일랜드 일대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 외에도 켈트족이라는 고대 민족이 떠오른다면 역사덕후일 가능성이 높고, 셀틱 FC라는 축구팀을 떠올린다면 해외축구빠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스코틀랜드에 있는 이 축구팀에 셀틱(Celtic)이라는 명칭이 붙은 건,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팀이라서 그렇다. 비슷한 케이스로 NBA에 있는 보스턴 셀틱스라는 농구팀도,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그 동네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두 팀 모두 메인 색상은 녹색이다.


신학 쪽에서는 켈트 교회라는 명칭이 익숙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이 바로 그 켈트 교회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켈트, 즉 아일랜드 지역은 유럽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다. 지리적으로도 가장 멀고, 로마나 파리, 마드리드 같은 오래된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들로부터도 멀다.


중세 초 기독교가 전래되었으니, 그 시기도 다른 데에 비하면 꽤 늦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더해지면서 켈트 교회 특유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다른 지역과 왕래가 많지 않으니 외부의 영향을 적게 받고, 반대로 자체적인 문화가 깊게 발달했다. 물론 그 때문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도 제법 잘 알려진 켈트 십자가나 클로버 모양의 상징, 그리고 녹색이라는 상징색 정도를 빼면 사실 나도 아는 게 많지 않다.




이 책은 바로 그 켈트 교회의 여러 전통들을 다룬다. 분명 내용상으로는 신학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신학책으로 분류하기엔 또 내용이 좀 말랑말랑하다. 책 제목에 “기도”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저자는 켈트 교회 전통 안에서 작성된 여러 기도문과 시(기도의 성격이 강한)들을 통해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신앙의 모습에 대한 스케치를 제시한다.


저자가 켈트 신앙 전통을 소개하기 위해 시나 시처럼 읽히는 기도를 선택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초기 켈트 사회는 하나님에 관해 말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장르를 산문이 아니라 운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71). 심지어 그들은 수도원 규칙조차 시의 형태로 작성했다. 여기서부터 신학대전이라는 거대한 논문에 닻을 내리고자 했던 중세의 주류 신학과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책에는 켈트 교회 신앙의 다양한 양상들이 설명된다. 삶을 여행으로 보는 독특한 관점부터, 일상 속에서 삼위일체를 가까이 경험하는 방식, 시간의 흐름을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시켜 인식하는 방법,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세상의 악을 피하고 십자가를 의지하는 삶 등등. 다분히 소박하고 목가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경험하며, 동행하는 법을 전수해 왔다.




서방의 주류 신학이 앞서 말했던 대로 이지적인 차원에 집중해왔다면, 켈트 교회의 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점인 듯하다. 그리고 이건 대체로 서방신학 전통을 이어받은 오늘날의 개신교인들에게 그들의 신앙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앞서 이 책이 신학책이라기엔 내용이 좀 말랑말랑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저자가 켈트 신학을 담담하게 분석하고 서술하기 보다는 경탄의 자세로 바라보며 계속 닮고자, 그리고 닮아야 한다는 요청과 함께 길을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좀 과한 건 아닌가, 그들에게는 수만 명씩 모이는 복잡한 도시라는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삶이 가능했던 건 아닌가 하는 식의 반문이 가끔 떠오르는 것도 사실.


하지만 기독교 전통 안의 풍성한 다양성을 인식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지나치게 지적인 영역만 강조하는 건 신앙의 다른 부분을 파괴하기도 한다. 믿음은 머리로만 갖는 게 아니니까. 특히 일상의 삶과 믿음을 강력하게 결합시키는 켈트 교회의 신앙은, 삶과 신앙이 유리되기 일쑤인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분명 좋은 자극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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