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와 포용 IVP 모던 클래식스 11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박세혁 옮김, 강영안 해설 / IVP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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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사실 작년 말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이런 저런 일들도 있었고, 책 자체도 쉽게 읽히지 않는 편이라 시간이 꽤 걸렸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2년 전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테러로 시작된 분쟁 역시 끝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에는 우리나라 제1당 대표를 살해하려가 목 부위에 큰 상처를 입히고 끝난 사건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사방이 분쟁과 다툼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고 있다. 물론 이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아마도 인류의 역사 내내 경험했던 상황이긴 하다. 대충 역사를 써놓은 대부분의 페이지가 전쟁사를 기술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걸까? 그리고 여기에 기독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까?




책의 첫 세 장은 배제와 포용이라는 핵심적인 내용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거리두기와 소속되기”라는 제목의 첫 장에서는 우리는 결코 우리가 소속된 어떤 정체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이 정체성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인정해야만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임을 지적한다.


이런 전제를 인정한다면 누군가를 완전히 배제하려고 시도하는 건 곧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볼프는 누군가를 우리의 생각 속에서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의 문제점을 다양한 관점에서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실제적으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가해자를 용서하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과연 쉬울 리가 없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조금 복잡한 설명을 더하지만, 결국 진정한 포용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1부 마지막 장은 성 정체성과 관련된 주제를 다룬다.(사실 앞선 세 개의 장과 성격은 살짝 다르지만, 그렇다고 2부에 넣기에는 또 애매한 주제다) 정확히는 남녀 간의 극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신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부분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남녀의 역할이나 지위를 성경에서 찾아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이 속한 문화, 나아가 성경의 저자들이 속한 문화에 짙게 배어있는 관습을 따온 것에 불과하다는 게 볼프의 생각이다. 그는 대신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관계에서 남녀 간의 관계에 관한 바람직한 모델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2부에서는 좀 더 거시적인 주제를 다룬다. “억압과 정의”, “기만과 진실”, “폭력과 평화”라는 제목만 봐도 대략 내용이 짐작된다. 오늘날 다양한 적대감과 갈등을 일으키는 관점들의 편향성을 지적하면서, 이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기독교적 기여가 가능할지를 살펴본다. 전반적인 논지는 책의 첫 세 장에서 펼쳤던 그대로다.




과연 우리는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국제질서에서의 근본적인 평화를 위해 국제연합이 창설된 지도 8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 동안에도 단 한 순간 전 세계에 평화가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전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서로를 물어뜯었던 냉전이 끝난 지도 고작 30년 밖에 안 지났고, 20여 년 전 일어났던 9.11 테러의 기억은 여전히 전 세계에 생생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실은 저자 역시도 이런 문제가 (기독교인들의 바른 신학과 실천을 통해서라도) 온전히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다만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갈등을 조금 늦추고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현재로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소망인가 싶기도 하고.


사실 어떤 이들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이런 분쟁의 현장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현실일 것이다. 저자는 피치 못해 가해자들에 저항해 폭력을 가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그걸 신학적으로 지지하려는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지한다. 이 또한 복잡한 심경이 담긴 문장이 아니었나 싶다.


여전히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새해에는 조금은 더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물론 연말엔 이 기대를 했다는 것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살짝 두렵긴 하지만. 우리는 원수를 포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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